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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ㅣ 성매매 특별법 시행 그 후

‘거리의 性戰’ 소나기냐 태풍이냐

경찰 집요한 단속 업주들 바짝 엎드려 … 더 은밀해진 性매매 속 남성들도 잔뜩 긴장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거리의 性戰’ 소나기냐 태풍이냐

# 불 꺼진 텍사스

‘거리의 性戰’ 소나기냐 태풍이냐

9월23일 자정 무렵 서울 강북구 미아리 텍사스촌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관들.

모든 업주들은 불을 끄고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했다.

서울 강북구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 일대. 좁은 골목을 밝히는 불빛이라고는 희미한 가로등 램프밖에 없다. 나란히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업소들마다 검은색 커튼을 내린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세 집 건너 한 집씩 붙여놓은 ‘점포 세 좋습니다’란 종이도 어둑한 탓에 잘 보이지 않는다. 2년째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해온 정순임씨는 “10시경 아가씨들 모두 영화 보러 간다고 했다”며 “화재가 난 것도 아닌데 하루 만에 어쩜 이렇게 적막해지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업소에서 두꺼운 커튼 사이로 형광등 빛 한줄기가 새어나왔다. 순찰을 돌던 경찰관들이 그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유리문을 두드리자, 과일 깎아 먹으며 TV를 보고 있던 ‘마담’과 ‘언니’ 두세 명이 “손님이 있어야 장사할 것 아니냐”며 성질을 냈다. 순찰반이 내심 기대한, 새로운 법에 의해 강력 처벌받을 ‘제1호’ 성 구매자는 없었다.

살벌한 싸움이 시작됐다. 총성만 없다뿐이지 전쟁이나 다름없다. 이른바 ‘성매매(性賣買)와의 전쟁’. 3월 국회를 통과한 성매매특별법(이하 특별법)이 9월23일부터 시행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23일 이전에야 성을 알선하거나, 팔거나, 사거나 해서 걸려들면 벌금을 내거나 훈방되곤 했으나 이젠 다르다. 성 구매자까지도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특별법이 ‘봐주는’ 건 강요에 의해 성매매에 나선 여성뿐이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게 이쪽 사람들의 태도다. 23일을 전후해 전국 유흥가, 집창촌 등은 ‘바짝’ 엎드렸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남성전용 휴게텔’이 밀집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 장안로변 1km에 걸쳐 40여개 휴게텔이 밀집해 있어 ‘휴게텔 골목’이라 불리는 거리다. 이곳은 밤마다 휴게텔, 유흥주점, 노래방, 안마시술소 등이 뿜어내는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대낮처럼 환해지곤 했다.

그러나 ‘강력 단속’을 30분 앞둔 22일 오후 11시30분경, ‘휴게텔 골목’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절반 정도의 휴게텔은 아예 간판 조명을 꺼버리고 문까지 걸어 잠갔다. 호객꾼들이 행인들을 붙잡고 흥정을 벌이는 흔한 풍경도 사라졌다.

A휴게텔 출입문에는 아예 ‘공사 관계로 영업 안 합니다’라고 적은 종이를 붙여놓았다. 그러나 출입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 호객꾼으로 보이는 한 사내는, 넥타이를 맨 2명의 남성을 출입문 안으로 황급하게 들여보냈다. 사내에게 “영업하냐”고 물었더니 재빠르게 대답한다.

“오늘은 자정까지만 영업해요. 30분밖에 남지 않아서 ‘코스’는 안 되고요. 얼른 들어가서 ‘연애’만 하고 나오실래요?”

‘거리의 性戰’ 소나기냐 태풍이냐

서울 강남경찰서 정문 앞에서 안마시술소 단속에 항의하는 대한안마사협회 회원들.

# 은밀해진 룸살롱

“사장님, 걱정도 많으십니다. 걱정 말고 즐기시되, 대신 바지만 완전히 내리지 마세요. 하하하.”

성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뤄져온 룸살롱 등 유흥주점도 이번 ‘특별법’ 시행에 따른 단속의 주요 표적이다. 그러나 23일 자정을 넘겨 찾은 강남 한 룸살롱은 별 걱정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질펀한 ‘북창동 스타일의 쇼’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2차를 나가는 ‘아가씨’들을 충분하게 준비시켜두고 있었다.

그러나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노골적으로 ‘성적인’ 업소 이름을 지양하고 품격 있는 이름으로 바꿔 달았다. 내부공사를 통해 외부인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길을 봉쇄했으며, 업소 안에서 음주와 성행위를 동시에 해결하는 ‘원 스톱 서비스’ 도입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경찰의 집요한 단속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거리의 性戰’ 소나기냐 태풍이냐

경찰 단속에 대비한 룸살롱 내부의 경고등.

영업이사는 룸 벽 위에 매달린 빨간 경고등을 가리키며 자랑스레 말했다.

“저 불이 들어오면 천천히 옷 입으시고 노래방에서 노는 것처럼 노시면 됩니다. 문 앞에서부터 실랑이가 벌어지니까 한 5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유사 성행위까지 단속한다지만 사실 그것은 위협에 지나지 않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이 분야 전문가인 아가씨들의 지시만 잘 따르라’고 한다. 오히려 업주보다 손님들이 더욱 위축된 모습이다. 아가씨들이 애써 분위기를 다잡는다.

“열심히 교육받았다니깐요. 2차 나가서는 애인 행세하면 되니까 이름이랑 휴대전화 번호 정도만 알고 있으면 돼요. 경찰이 통화내역 조회한다고 협박하면, 나이트클럽에서 부킹했다고 하면 되고요.”

특별법에 의해 원천적인 불법행위로 취급되는 ‘선불금’이 유흥업소에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강남의 룸살롱에서는 이를 달리 해석했다.

“10%(최고급 룸살롱을 의미) 언니들은 5000만∼1억원까지 주고 데려와요. 사창가 선불금하고 비교하면 기분 나쁘죠. 거기가 동네야구라면 우린 메이저리그인데. 그건 스카우트 비용이라 해야 맞는 거예요. 인기 많은 언니들 다른 업소에 빼앗길까 걱정인데.”(서울 역삼동 소재 룸살롱 K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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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3일 새벽 시위에 나선 서울 미아리 텍사스촌 업주들과 윤락 여성들.

# 거세진 ‘반역’의 기운

23일 새벽, ‘직장 폐쇄’한 미아리 텍사스촌 업주들과 단골손님들은 도로변 쪽 거리로 몰려나와 강력한 단속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저기서 소주 냄새가 피어올랐다.

“세금, 벌금 다 내고 선불금은 떼였다. 빚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다. 어쩌란 말이냐!”

“이혼남, 노총각은 어디서 해소하라는 거냐! 우린 미아리 단골들이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이런 데 출입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결혼도 못하고 돈도 없지만 성생활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건데 왜 못하게 하느냐.”

이번엔 40대 남성이 “우리도 국민이다. 국민 없는 정부 없다. 국민을 이토록 무시하는 노무현 정부 각성하라!”고 소리 질렀다. 여기저기서 “옳소!”라며 박수가 터져나왔다. 방금 목소리를 높였던 젊은이들 중 한 명은 “사실 우리는 텍사스촌에 가스를 팔고 있는 가스배달부”라며 “매춘 영업을 못하게 하면 이번 겨울 장사는 공치게 된다”고 털어놨다.

성난 미아리 텍사스촌 사람들은 현장에 나와 계도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 여성운동가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다. 경찰이 여성운동가를 ‘구출’해내려고 하자 이들은 아예 도로까지 점거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나섰다. 몇몇은 도로에 드러누워 버렸다. 성신여대 방면으로 향하던 차량들은 짜증 섞인 듯 빵빵거렸다.

강남경찰서는 이날 새벽 4시쯤 지팡이를 마구 휘둘러대는 시각장애인들의 거친 항의를 받았다. 0시7분, 20여명의 경찰관이 역삼동 C안마시술소에 들이닥쳐 손님 1명과 아가씨 1명을 붙들어오자 대한안마사협회 회원들이 대거 나선 것. 회원 업소가 단속될 때마다 벌이는 ‘정례행사’이지만 이날은 분위기가 더욱 험악했다. 김주인 지도위원장은 “불법마사지는 휴게텔에서나 하는 거지 우리 회원들은 안 한다. 안마 아니면 먹고살 길 없는 맹인들인데, 이렇게 무작위 단속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며 분개했다.

경찰서 안에서는 붙들려온 남자와 아가씨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단속반이 안마시술소에 들이닥쳤을 때, 벌거벗은 아가씨가 벌거벗은 손님을 애무하고 있었고 콘돔이 발견됐다고 했다. 아가씨는 앳돼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성이었고, 30대 초반의 남자 손님은 말끔한 양복에 무테안경을 쓴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허가증을 가진 업주 차모씨의 행방은 오리무중. 게다가 경찰은 “이들의 행위를 유사 성행위로 봐야 하는지 판단이 잘 안 선다”고 했다. 결국 ‘범죄 1번지’ 강남서는 첫 번째 단속 실적으로 구속까지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 어디서 해결하라고…

이번 특별법 시행으로 가장 겁을 집어먹은 건 남성들이다. 23일을 전후해 ‘성 구매자도 강력 처벌된다’는 언론 보도가 마구 쏟아지면서 한 번의 성 구매로 ‘징역까지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 것. 그러나 룸살롱을 드나드는 한 남성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국가가 집창촌, 안마시술소, 룸살롱 등에서 벌어지는 성매매를 묵인해주다가 갑자기 단속하면 성매매에 이미 ‘중독’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항변이다. 10월 초 서울 강남 유흥가에서 만난 한 엘리트 직장인은 다음과 같은 ‘궤변’을 늘어놓았다.

“지금 한국사회는 성매매와 성범죄, 성착취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미쳐가고 있어. 안 그렇소, 기자양반?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강간죄가 성매매보다 훨씬 가벼운 것처럼 느껴지니 원. 성매매로 걸려들면 합의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안해서 마음놓고 놀 수가 없잖아. 앞으로 동남아 여행이나 즐겨야겠어.”

10월 초 단속 항의 시위에 나선 한 집창촌 업자는 “돈 많은 사람들은 숨어서 여자 사고, 돈 없는 놈들은 강간하란 말이냐”며 독한 말을 내뱉었다. 성매매 여성 구조 및 자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여성운동가는 “열심히 노력하면 이 땅에서 매춘을 근절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9월23일 이후, 대한민국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보수-진보의 대결이 아닌, ‘성매매 불가피론’과 ‘성매매 근절론’의 날카로운 대립이다. 이 ‘난해한’ 실험은 어떤 결말로 치달을 것인가.







주간동아 455호 (p54~57)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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