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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검증소’ 공안硏 베일 벗다

경찰대 산하 1988년 설립 음지서 활동 … 출판물 8만여건 이적 감정 시국사건 방향키 구실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사상 검증소’ 공안硏 베일 벗다

‘사상 검증소’ 공안硏 베일 벗다

용공성의 근거가 매우 간략하게 서술된 공안문제 연구소의 통상적인 감정서 사본.

많은 논란 속에서도 설립 후 무려 17년간을 완벽하게 ‘음지’에서 활동해온 연구소가 있다. 경찰 고위간부들조차 처음 들어본다고 하는 연구소지만,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이 벌어지면 어김없이 등장해 재판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기관이기도 하다. 바로 경찰대 산하 ‘공안문제연구소’(소장 전병룡·이하 연구소)가 그 주인공이다.

이 연구소가 ‘타의에 의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당론으로 확정되면서 공세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선봉에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최규식 의원(우리당)과 법제사법위원회 임종인 의원(우리당)이 나섰다. 최의원은 9월22일 사상 최초로 ‘공안문제연구소를 아십니까?’란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연구소 관계자들을 양지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임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전병룡 연구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현재 3급 비밀로 된 ‘감정서 목록’을 포함한 관련 자료가 국정감사를 위해 속속 공개되기 시작했다.

5만여건 이적성 평가

보안법 해석 이론적 토대 제공


공안문제연구소는 1988년 설립됐다.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등 직제에 관한 법률 제24조에 따르면 경찰대에 공안문제연구소를 부설한다고 돼 있다. 공산주의를 비롯한 좌익사상에 대한 연구 및 대응 이론의 개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증거물의 감정, 기타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된 정치이념 및 대책 연구에 관한 사항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78년 설립된 치안본부 산하 내외정책연구소가 전신이다.



‘사상 검증소’ 공안硏 베일 벗다

공안문제연구소의 이적성 감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이장희 외국어대 교수, 장상환 경상대 교수(왼쪽부터).

연구소는 설립 이후 8만여건에 이르는 출판물에 대해 이적 감정을 해왔다. 이 때문에 국가보안법 등 시국사건과 연루된 피해자들은 공안문제연구소를 빨갱이를 양산해내는 ‘사상검증소’라고 비난해왔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우리는 단지 의뢰가 들어온 간행물에 대해 감정을 내릴 뿐이며 최종적인 결론은 재판부에서 내린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연구소라기보다 경찰의 실질적인 공안기관이라는 평가다. 그동안 공안문제연구소에 의해 수많은 책과 그림들이 이적표현물로 감정됐고, 지금도 다수의 표현물에 대해 이적 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연구소가 감정해 ‘좌익·용공·반국가’란 딱지를 붙이면 이는 검찰과 경찰에 의해 기소 근거가 됐고, 이는 그대로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 심지어는 검찰의 공소장과 재판부의 판결문이 토씨 하나까지 일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정국을 가늠하는 중요 사건마다 소견서를 제출하면서 ‘공안기관’에 힘을 실어줬다.

연구소 설립 이후 감정한 8만여건 가운데 이적성을 가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 표현물은 약 5만건에 이른다. 연구소 연구 인력이 줄곧 10명 내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대로 감정 작업을 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연구소의 운영방식. 94년 연구소에 의해 자신의 저서 ‘한국사회의 이해’가 이적표현물로 감정된 경상대 정진상 교수는 “먼저 공안기관에 의해 ‘문제인물’로 찍힌 사람들의 저작을 감정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 이적표현물 감정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른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식 보안법 해석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왔다는 것이다. 건국대 한상희 교수는 “연구소 자체가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및 대검찰청 등 ‘공안기관’을 주 고객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의해 감정서를 주문 생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사실 공안권력의 한 축으로 구실을 해왔다는 지적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조직

연구소가 그간 비공개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전신인 내외정책연구소 시절부터 ‘철통보안’으로 70~80년대를 풍미한 경찰청 ‘대공국(현 보안국)’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업무는 경무·방범·수사 등 일곱 가지로 나뉘는데, 이중 가장 비밀스러운 업무가 보안분야다. 아직까지도 서울 미근동에 위치한 경찰청 10층 정보국과 11층 보안국은 일반인의 접근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도 제한된다. 대공분야를 널리 알린 인물이 고문경찰 ‘이근안’이란 점도 의미심장하다.

간첩과 좌익사범을 담당하는 핵심기관은 잘 알려진 대로 국정원 안보수사국(옛 대공수사국·5국)과 기무사 방첩처(3처), 그리고 경찰청 보안국이다. 경찰청 대공국이 90년 보안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계기는 87년 발생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연구소는 순수하게 이념문제 연구에 몰입합니다. 5공화국 이전부터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던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안에 있던 ‘내외정책연구소’가 그 전신으로 88년 10월 대통령령으로 공안문제연구소로 바뀌었고 91년까지 대공분실 건물을 함께 사용해왔습니다.”(경찰 보안국 관계자)

아버지와 아들 대물림

폐쇄적 구조


87년 민주화 열기로 인해 변화가 시작된 경찰은 보안국 인력의 내부 순혈 원칙을 차츰 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소에서는 아직도 이 전통이 살아 있다. 이를 상징하는 사람이 바로 유장환 전 경정이다. 유씨는 70년대 내외정책연구소에 들어온 이후 90년대 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면서 대공분야에서는 ‘살아 있는 전설’로 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씨의 아들이 바로 경상대 정진상 교수의 ‘한국사회의 이해’를 이적표현물로 감정해 파문을 일으켰던 유동렬 현 연구관이라는 점. 정치학을 전공한 유연구관은 2대에 걸쳐 우리나라 공안문제를 책임지는 흔치 않은‘중책’을 맡은 셈이다. 이들 부자는 한때 한 건물에서 근무했다. 폐쇄적으로 움직이는 경찰 보안국 시스템을 입증해주는 단적인 사례인 셈이다.

‘사상 검증소’ 공안硏 베일 벗다
연구소 소장은 별정2급 공무원이며, 1·2부 2개조 6명씩으로 나뉘어 있는 연구위원들은 별정3급∼6급, 서무과 책임자는 경정으로 되어 있다. 30, 40대의 석사급 이상 학력을 소유한 이들 연구원의 전공 분야는 행정·정치·윤리 등 다양하지만 사상 문제에 대해 그리 전문적이지 못하며 학문적 수준도 미심쩍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들은 대개 사립대학의 이념연구소나 정신문화연구원, 국방대학원 등 우익성향의 연구소 출신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6년 전남 거문도로 남파됐다가 귀순한 김건씨(현 제3세계연구소 소장)가 근무했다는 점에서 연구원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소 측은 “연구원들에 대한 항의 및 위협 증가 등으로 인해 공정한 감정을 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연구소 직원들의 인적사항 공개를 자제해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감정서 목록은 3급 비밀로 분류해 외부인의 열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러나 국가연구소 연구원 명단은 비밀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한다(표2 참조).

인건비 이외 공식적 1년 예산은

약 6000만원 그러나…


사실 예산 문제는 가장 민감한 사항이다. 94년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으로 연구소가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을 때 야당 의원들은 연구소가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후 경찰은 이를 경찰대 산하 연구소로 바꾸며 생명을 유지시켰다.

‘사상 검증소’ 공안硏 베일 벗다
“문제는, 국정원은 93년 안기부법 개정 이후 국회 정보위원회 통제를 받고 있지만 공안문제연구소는 행자위가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문성호 한국자치연구소 소장)

연구소는 한때 진보적 인사까지도 외부 자문교수로 영입해 적극적인 세력 확장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연구소의 한 해 예산은 62억원(98년 기준)으로 대부분 급여로 쓰여지고, 사업비는 5000만~6000만원 정도다. 또 연구소는 비밀리에 추진하는 일의 예산을 100억원에 달하는 경찰의 특별활동비에서 일부 끌어다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세한 것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최규식 의원은 “양지로 나왔다는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지만, 지난 정권까지만 해도 국회 행자위 예결산 심사조차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국회의 방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주간동아 455호 (p44~46)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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