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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과기부 장관 부총리 승격 과학기술 도약대 되길 기원

과기부 장관 부총리 승격 과학기술 도약대 되길 기원

과학기술부 장관이 9월이면 부총리가 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평생을 한국의 과학기술에 주목하며 살아온 필자 같은 과학인들에게는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과학기술부라는 정부기관이 설립될 때부터 지켜봐왔기에 느끼는 애정과 옛추억 때문에 더욱 그러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과학기술부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원래 이 부처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이름이 과학기술처였다. 부(部)보다 격이 하나 낮아서 처(處)라 했음은 물론이다. 과학기술처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67년 4월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4월21일로, 훗날 이를 기념하여 지금까지 ‘과학의 날’을

4월21일로 정해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처가 이때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필자가 쓴 기사가 신문에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필자는 당시 6년째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만약 1966년 연말에 써낸 기사가 실제로 활자화됐더라면 아마도 과학기술처의 발족이 조금은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기술처 발족 배경에 대한 의혹을 다룬 기사는 끝내 지면에 반영돼지 못했다. 당시 편집국장은 그 기사에 대해 “곧 내야지요”를 반복했지만 끝내 버티기로 일관했고, 마침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필자는 67년

1월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결국 과학기술처는 아무런 훼방 없이 4월에 발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닌가 보다. 당시 과학기술 담당관서를 준비하던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의 전상근 국장은 자신의 회고록 ‘한국의 과학기술정책-한 정책 입안자의 증언’(1982)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시 장관급의 과학기술 담당부처를 제2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1971년에 만들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설명을 듣던 공화당 정책위원들이 갑자기 그 계획을 가속화했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 공약인 근대화의 상징으로 독립된 과학기술 행정부처를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앞당겨 67년 5월3일의 대통령선거일 이전에 설치하기로 방침을 굳힌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밖에서 아무리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여봐야 과학기술처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대통령선거 이전에 출범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추진되던 과학기술 부처는 ‘경제기획원’과 같은 부총리급의 ‘과학기술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발족된 것은 일반 부보다 오히려 낮은 처였던 것이다. 1998년 부로 격상되었다가 이번에 부총리급으로 다시 격상될 경우 원래의 계획대로 부총리급의 과학기술부가 거의 40년 만에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원래 과학기술부에 대한 요구는 해방 직후 과학계에서 시작됐다. 비록 구호에 그치기는 했지만 당시 과학기술자들이 모임을 열고 그런 요구사항을 정부에 제시했던 것이다. 또 그 연원을 따지자면 일제시기 과학화 운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 부총리급이란 그야말로 오랜 염원이 이뤄진 셈이니 이번에는 한국의 과학기술이 도약의 기틀을 찾을 수 있었으면…. 혹시나 정치적 제스처에서 비롯된 이벤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주간동아 449호 (p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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