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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화完

바람의 신 ‘영등할미’는 변덕쟁이

매년 음력 2월 인간세상 살피고 귀환 … 사람들, 기후 변화 보며 한 해 농·어업 수확 점쳐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바람의 신 ‘영등할미’는 변덕쟁이

바람의 신 ‘영등할미’는 변덕쟁이

바람을 몰고 있는 영등 여신.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영등(바람의 신)을 모시는 큰 굿인 영등굿을 촬영하기 위해 지난 3월 제주도를 찾았을 때, 필자는 바람신의 조화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3월은 음력으로 2월, 우리 조상들은 이 달을 영등맞이를 하는 ‘바람달’ 또는 ‘영등달’이라고 불렀다. 2월 초하루 오전 1시경에 바람의 여신인 영등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살피고 다니다가 보름(15일)이나 20일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영등이 내려오는 2월 초하루를 ‘영등날’, ‘바람님날’이라고 부른다. 보통 이때부터 꽃샘바람이 분다.

물영등 바람영등

바람이여, 정말 짓궂은 바람이여! 하루에 날씨가 여섯 번도 더 변한다는 탐라. 꽃을 시샘하는 바람, 즉 꽃샘바람이라 그런지 정말 시샘이 많다. 그래서 변덕도 심하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정도로 짓궂다. 바람은 짓궂고도 사납다. ‘이월 바람에 쇠뿔도 오그라든다’는 탐라의 속담처럼.

와흘로 가는 길목에서 검은 구름이 한라산 언저리에 낮게 깔린 동네를 지나가니, 비바람이 불고 회오리가 몰아친다. 그뿐이랴! 돌아오는 길에는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더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겨울 날씨로 변한다. 시야에서 한라산도 없어지고 수평선도 사라진다. 이것이 봄이냐 겨울이냐! 이 눈보라 속을 어떻게 헤쳐나가나 걱정하고 있는데, 어느덧 길은 제주시로 접어든다.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이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바람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해하며, 택시 운전을 하는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바람의 여신 영등할망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날이라서 날씨가 이리도 매섭구먼!”

“지금처럼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발이 몰려오면 옷 자랑 하려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오는 부자영등이 온다 하고, 날씨가 따뜻하면 옷을 별로 걸치지 못하고 오니까 거지영등이 온다고 하지요.”

“아! 부자영등, 거지영등도 있었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재미있네요.”

전국적으로는 영등할망 또는 영등할머니를 ‘물영등’과 ‘바람영등’으로 나눈다. 영남에서는 2월 초하루에 비가 오면 ‘비영등 드린다’고 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영등 드린다’고 한다. 2월 초하룻날 비가 오면 올라갈 때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올라갈 때마다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은 전국적이다. ‘영등할망’이 옷을 입고 우장을 쓰고 오면 비가 오고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여수 돌산에서는 비가 오면 보리농사에 좋고, 바람이 불면 고기잡이를 못하기 때문에 비영등이 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신안 방월리에서는 물영등이 내리면 농사가 잘된다고 하고, 영등이 올라간 날 장닭의 꼬리가 팔랑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면 시절이 좋다고 전한다. 진도 굴포에서는 12일에 바람이 불고, 영등할미가 하늘로 올라가는 20일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영덕에서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영둥떡’을 해서 ‘영둥할매’에게 바친 뒤, 1년 내내 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바람의 여신 영등은 혼자서 다니지 않고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다니는데, 이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오고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며느리가 물영등이고 딸이 바람영등이다.

경기 가평에서는 ‘영등할머니’가 딸을 데리고 오면 다홍치마를 휘날리게 하느라고 바람이 불어 흉년이 들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며느리가 미워서 다홍치마를 얼룩지게 하느라고 비가 내려 풍년이 든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딸의 치마를 너울거리게 하고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해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이려고 ‘영등할망’이 심술을 부려서 보름 내내 바람 잘 날 없다고 생각한다. 구례 마산에서는 딸과 같이 오면 바람이 부는데, 이는 이 고을 저 고을을 다니면서 구경하라고 바람이 부는 것이라 한다. 어쨌든 바람영등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흉년을 걱정하게 만든다.

제주에서는 영등이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는 며느리를 밉게 보이게 하려고 비를 몰고 온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구례 마산에서는 ‘영등할매’가 며느리하고 같이 오면 비가 오는데, 이는 며느리를 미워하여 며느리의 몸이 흠씬 젖으라고 비를 내리는 것이라 한다.

바람의 신 ‘영등할미’는 변덕쟁이

하늘을 날고 있는 영등 여신.

친정어머니와 딸은 서로 좋아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불화와 갈등이 많은 인간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신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여신 영등의 뜻과는 반대로 딸을 데리고 오면 흉년이 들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지 않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영등의 딸보다 며느리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딸보다 며느리라! 딸은 시집 가면 남이요, 며느리는 내 식구라고 생각하던 전통시대의 사고를 반영한 게 아닌가 한다.

정성을 다해 곳곳서 영등맞이

바람의 여신 영등도 원래는 세 자매 신이었다. 영남과 강원 일부 해안에서는 영등의 맏이를 ‘상칭’(큰손 또는 큰할매), 둘째를 ‘중칭’(중간손 또는 둘째 할매), 막내를 ‘하칭’(막손, 끈티손 또는 셋째 할매)이라고 하여 같이 모신다. ‘상등할미’ ‘이등할미’ ‘하등할미’라고 하는 곳도 있다. 이들 세 자매가 각각 며느리나 딸 중 한 사람을 대동하고 인간세상을 보러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데, 지방마다 약간 다르지만 예컨대 울산에서는 상칭, 중칭은 초하룻날 왔다가 상칭은 초닷샛날, 중칭은 보름날 올라가고 하칭은 보름날 내려와서 스무날 올라간다고 한다. 또 영등을 모시고 함께 내려온 ‘수부’라는 부하는 보름이나 20일에 올라간다고 한다.

이 기간에 집집마다 영등맞이를 하는데, 이를 ‘영등 모신다’ ‘영두한다’고도 했고 ‘바람 올린다’고도 했다. 변덕이 심한 바람의 신이니 성질이 까탈스러울 수밖에! 인간들은 흉·풍년을 결정할 힘과 영험을 지닌 여신 영등의 비위를 맞추느라 온 정성을 다한다. 정월 그믐날 문전에 황토를 깔고, 사립문에는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 몇 개를 꽂은 금줄을 걸어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영등할머니를 설광에다 모시거나 뒤뜰 담 밑에 모시며, 향토 흙을 놓고 대나무를 꽂고서 오색실과 고운 천을 매단다.

이날 새벽에 주부가 장독대나 부엌에 정안수를 떠놓고 비린내 나지 않는 생선, 비늘 없는 생선, 나물, 떡, 무찌개, 오곡밥을 해서 놓은 뒤 바람이 순조로워 농사가 잘되고 가정에 평안이 깃들기를 빈다. 이날을 작은 설날이라 부르며 콩·나락·오곡을 해 뜨기 전에 볶아먹는다. 영등할머니 오시라고 물 떠놓고 빈다.

음식상은 영등할머니가 오는 초하룻날, 나흗날, 아흐렛날, 마지막손(영등할머니가 올라가는 날)인 열아흐렛날 등 네 번 차린다.

15일에 올려보낼 때는 수부상을 차려 수부제를 함께 지내는데, 수부는 풍신을 모시고 다니는 신이라 하며 수부상에 썼던 음식은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먹는다.

해안가에서는 바다의 듬북이를 뜯어다가 삶아서 가루를 내어 쌀떡을 만들어놓고 “바람님, 잘 잡수고 가시고 잘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빈다. 2월15일 바람님이 하늘로 올라가기 전까지 무엇이든 바람님 앞에 먼저 올리고, 밖에서 먹을 것이 들어오면 반드시 장독대에 내놓았다가 먹는다고 한다.

이 기간에는 농사일이나 바다일을 비롯해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심지어는 빨래도 하지 않는 등 엄격한 금기(禁忌)가 뒤따른다.

해산물 곡물 씨 뿌려

바람의 신 ‘영등할미’는 변덕쟁이

씨를 뿌리는 영등 여신.

제주도 민중들에게 바람의 신은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영등할망’이다. 그런데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굿에서 영등대왕의 본풀이가 나온다. 제주도에서 영등할망과 다른 영등대왕을 만든 이들은 후대의 남성 심방들이 아닌가 한다.

조선시대 후기에만 하더라도 바다에 나갔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졌을 때 탐라의 뱃사람들은 ‘백록선자여! 백록선자여! 선마고여! 선마고여!’ 하며 자신의 신들을 불렀다고 전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뱃사람들에게 ‘가남보살!’을 부르라고 시키는 영등대왕은 아마도 나라가 무너진 이후 근대 초기 심방들의 작품이 아닌가 한다. 어쨌거나 제주의 민중에게는 여전히 바람의 신은 여신 영등인데도 굿에는 영등할망이 아니라 영등대왕이 나온다. 그래서 심방들은 영등할망을 위해 영등하르방을 만들고, 영등대왕을 위해 ‘영등나장’, ‘영등도령’을 만들어서 일곱 영등을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영등대왕은 무휴(無)에서 솟아났으며, 인간세상 사람도 아니고 저승 사람도 아니며 요왕(龍王) 사람도 아니었다.

영등은 요왕 황저에 들어가 바다 깊은 곳에서 동정국의 아씨와 서정국 부인, 그리고 선녀 셋이서 나발이펑개에서 놀기를 좋아하였다.

봄이 가까이 오고 있던 어느 날 큰 고동나팔을 불며 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살려줍서! 살려줍서!” 소리치는 보제기들의 소리가 들렸다.

영등이 급히 바다 쪽으로 달려가 보니 한림읍 한수(翰洙)리의 보제기들이 탄 배가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 배가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들의 땅으로 떠밀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등이 말했다.

“저 사람들을 구해서 살려내리라!”

영등이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앉자 배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영등이 그 사람들을 전부 바위 속으로 숨겨버렸다.

그때 외눈박이들이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개를 데리고 들어와서 영등에게 묻는다.

“좋은 반찬이 오고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무슨 소리냐? 나도 그런 걸 주우려고 나와 앉아 있는데 아무것도 못 봤다.”

영등이 시치미를 떼자 외눈박이들은 할 수 없이 다 돌아갔다.

영등은 보제기들을 바위에서 나오게 한 뒤 배를 내놓아 보내며 말했다.

“이 배를 타고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외우며 가라!”

영등은 배 뒤에서 부드러운 바람을 보내어 보제기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보제기들은 배를 탄 뒤 열심히 “가남보살! 가남보살!” 하고 불렀다.

외눈박이 땅을 떠나 거의 한 수리 가까이 온 보제기들은 마을 앞 한곶이 보이자 안도하였다.

“이제 다 왔는데 ‘가남보살’을 아니 부른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돛을 내린 보제기들이 배를 대려고 할 때, 홀연히 강풍이 일어서 그들을 다시 외눈박이 나라로 불려보내고 말았다.

영등이 때마침 그 자리에 나와 앉아 있었다. 보제기들이 우루루 그에게로 가서 빈다.

“제발 다시 한번 살려주십시오!”

“그때 내가 뭐라고 하였더냐?”

영등은 짐짓 꾸짖었지만 어떻게 하랴.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한다.

“이번에는 ‘한곶’에 가더라도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잊지 말고 부르며 다니거라. 그리고 이후에도 영등달 초하룻날엔 나를 기억하거라!”

그때 보제기들은 조심조심 ‘가남보살!’을 부르며 한 수리까지 돌아왔다.

그 뒤에 냄새를 맡고 잔뜩 화가 난 외눈박이들이 영등을 찾아왔다.

“당신 덕분에 좋은 반찬을 못 먹었다!”

영등이 딴전을 피웠으나 외눈박이들은 속지 않았다. 외눈박이들은 분풀이로 영등을 긴 칼로 세 토막으로 잘라 죽여서 바다에 내던져버렸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영등의 머리는 소섬으로 오르고, 발치거리는 한 수리 비꿀물로 오르고, 한가운데의 잔등은 지금의 성산(城山)인 청산으로 올랐다.

세상사람들은 바다에 수중액을 막아준 영등의 은혜를 생각하여 소섬에서 정월 그믐날 굿을 하고, 초하룻날 비꿀물에 오고, 청산은 초닷샛날 영등굿을 시작한다.

이제, 독자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먼저 단군신화를 보자.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의 산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일렀다.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맡아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했다.”

단군신화의 풍백, 우사, 운사는 위의 글에서 누구를 가리키는가. 풍백, 우사, 운사는 여신인가, 남신인가.

‘백(伯)’은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풍백은 ‘바람 우두머리’, 즉 바람의 신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바람님’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영등이다. 그렇다면 우사는 ‘물영등’일 테고, 운사는 ‘바람영등’이리라.

왜 바람신을 백(伯)이라 하고 나머지를 사(師)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풍백이 더 높은 신이었던 까닭이다. 바람의 여신 영등이 두 자매 또는 며느리 딸을 데리고 다니는데, 물영등 바람영등이니까…. 바람영등을 풍사(風師)라고 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다. 풍백과 겹치니까. 그래서 구름으로 표현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여신인가, 남신인가’ 하는 질문은 필자의 ‘신화읽기’와 함께해온 독자 여러분을 위해 남겨놓고자 한다. 그 질문은 또한 ‘바람의 여신 영등과 바람의 신 영등대왕은 어떤 관계일까?’ 하는 질문과도 통한다.



주간동아 449호 (p60~62)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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