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9

2004.08.26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캐디 탓?

  • 문승진/ 굿데이신문 골프전문기자 sjmoon@hot.co.kr

    입력2004-08-20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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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결정은 골퍼의 몫.’ 캐디는 필드에서 골퍼에게 도움을 주는 동반자다. 남은 거리, 퍼팅 라인, 바람의 방향 등 경기와 관련된 사항을 조언한다. 심지어 어떤 때는 골퍼의 심리적 상태를 고쳐주는 치료사 구실도 한다.

    ‘탱크’ 최경주는 올해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11번홀(파4)에서 전 세계 골프 팬들이 잊지 못할 이글 숏을 선보였다. 당시 최경주는 220야드 세컨드 숏을 4번 아이언으로 공략하려고 했으나 캐디 앤디 프로저가 5번 아이언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마음을 바꾸었다. 1989년과 90년 닉 팔도에게 마스터스를 안기게 해준 캐디의 경험을 믿은 덕에 이글숏을 터뜨리며 마스터스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골프가 직업인 프로 골퍼들의 경우 캐디와의 궁합은 절대적이다. 실제로 프로 골퍼들도 어떤 캐디와 함께 했느냐에 따라 10타까지 스코어가 오르내린다. 이렇다 보니 캐디는 경기 결과에 따라 ‘애인’이 되기도 하고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 골프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8월호)는 최근 미 프로골프협회(PGA)투어 캐디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42명 참가)를 했다. ‘캐디를 가장 많이 교체한 선수로 누가 떠오르는가’라는 질문에서 최경주는 42%의 캐디들에게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최경주는 데뷔 첫해 코치 노릇까지 하려는 캐디를 해고했고, 2라운드 연속 지각하는 캐디를 갈아치우는 등 유난히 캐디 복이 없었다. 최경주의 경우 자신 탓이 아니라 캐디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

    프로 캐디의 경우 선수 상금의 15∼20%를 받는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가장 짝을 이루고 싶은 선수 2위에 올랐으나, 짝을 이루고 싶지 않은 골퍼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우즈의 성격을 미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골퍼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아무리 훌륭한 캐디와 함께 하더라도 필드에서의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캐디는 조언자일 뿐 집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던 잰킨스는 캐디가 자신의 플레이에 영향을 줬다고 믿는 골퍼는 아직도 골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모 대학 K교수와 라운드를 한 적이 있다. 핸디캡 18인 K교수는 명성과 달리 동반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K교수는 잘되면 자신 탓, 잘못되면 모든 것을 캐디 탓으로 돌렸다. 캐디가 남은 거리와 코스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했는데도 실수가 발생하면 “야! 거리가 정확하게 맞는 거야?” “보라는 곳으로 쳤는데, 왜 퍼팅이 안 들어가는 거냐”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캐디는 주눅이 들어 제대로 말도 못했고, 라운드는 험악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캐디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골프를 신사 스포츠라고 하는 이유는 남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독자들만이라도 캐디에게 사랑받는 골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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