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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원 쾌척’… 무료급식소 살아났다

주간동아 437호 보도 후 대순진리회서 도움의 손길 … 서대문 천연동 건물 매입 노인 쉼터 조성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15억원 쾌척’… 무료급식소 살아났다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이 동네 미관을 해친다’며 서대문구청으로부터 퇴출 명령을 받았던 한길봉사회(주간동아 437호 보도)가 못다 이룬 봉사의 꿈을 이어나가게 됐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대순진리회 이유종 종무원장(66)이 15억원을 쾌척하면서 무료급식을 제공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15억원을 기부하신다는 말씀에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유. (한길봉사회 건물을 마련하며) 일이 몇 배 늘었지만 피곤한지도 모르겠어유. 눈물나게 고맙지유.”

밤잠을 설쳐가며 퇴출 위기에 놓인 무료급식소 운영 문제를 고민해왔던 한길봉사회 김종은(56) 회장은 이원장의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김회장은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쉼터를 조성하면서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혀 지치지 않는 눈치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노인들과 노숙자들에게 이제 비바람을 피해 쉴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지상 5층·지하 1층 번듯한 시설

한길봉사회는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독립문 소공원에서 14년째 소외된 이웃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왔다. 봉제공장을 운영했던 김회장은 넉넉지 않은 살림으로 사재를 털어 봉사활동에 나섰다. 돈을 버는 대로 무료급식소에 투입하다 보니, 그는 올해 초에야 8000만원짜리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나마 그중 4000만원은 빚.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김회장은 무료급식소를 지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백명에게 점심을 제공해온 그는 1990년대 한 정보기관에 불려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회장의 진심이 알려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선행에 감동한 관할 서대문구청은 1997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7년 동안 날마다 50명분의 식대로 모두 2억여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부터 구청은 태도를 바꿔 “더는 무료급식을 하지 말고 이곳을 떠나라”는 통고를 했다. 김회장이 좋은 취지에서 봉사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으나 급식소 주변에 상주하는 노숙인들 때문에 공원을 이용할 수 없다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많다는 이유였다. 구청 측은 인근 교회에 무료급식 장소를 알선해놓았다며 옮기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막상 교회 목사를 찾아가자 신도들이 반대한다며 태도를 바꿨다. 이렇듯 위기에 놓인 무료급식소 운영자들에게 이원장의 도움은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김회장은 “이제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자리잡은 지상 5층, 지하 1층의 번듯한 건물은 무의탁 노인을 위한 쉼터 구실을 할 것”이라며 기뻐했다.

한길봉사회와 이원장의 인연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독립문공원을 지나며 김회장의 봉사활동 모습을 지켜본 이원장은 그 후 꾸준히 익명으로 한길봉사회에 지원금을 보냈다. 눈비가 내려도 들어앉을 곳조차 없이 힘겹게 식사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구청의 경고로 무료급식소 운영이 위기에 처했다는 언론의 보도를 접하고, 15억원을 선뜻 내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저 양반(김종은 회장)은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를 돕는 것은 진짜 봉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지요. 원래 봉사는 남들이 모르게 하는 것인데….”

이원장은 ‘김종은 회장에 대한 믿음’이 한길봉사회를 돕게 된 결정적 이유라고 말했다. 자신의 선행이 크게 알려지는 것보다는 김회장이 무사히 급식소를 꾸려나가는 것이 더 큰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이원장의 거액 기부가 더욱 빛을 발하는 까닭은 그가 단순히 돈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발로 뛰며 급식소 봉사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한길봉사회의 무료급식소를 방문했지만 실질적인 봉사활동에 참가했던 이는 많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김종은씨 “더 많은 일 하고 싶다”

‘15억원 쾌척’… 무료급식소 살아났다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한길봉사회 김종은 회장(위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장관급 인사,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우리 급식소를 다녀갔지만, 격려의 말 한마디 건넨 뒤 사진만 찍고 가기 일쑤였어유. 그런데 이원장님은 현장에 직접 나와서 소매를 걷어붙인 채 손수 노숙인들에게 밥을 나눠주셨지유.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셨을 텐디 힘든 기색 한번 보이지 않으시더라구유. 그렇게 직접 급식을 도와주신 분은 처음이에유.”

김회장의 칭찬에 이원장은 “음덕(陰德)이 더욱 큰 법”이라며 말을 아낀다. 김회장과 담소를 나누는 이원장의 모습은 ‘한 종단의 수장(首長)’이라기보다 ‘시골의 순박한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2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대순진리회의 종무원장실은 에어컨 하나 없이 아담했다. 31살까지 충북 한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이원장은 1966년 대순진리회에 입도, 종교인으로서 살아왔다. ‘필부(匹夫)’와 다름없는 그의 평범한 모습이 더욱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대진고 등 6개의 고등학교와 대진대, 대형 종합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순진리회는 지금껏 불우이웃 돕기나 의연금 모금에 억대의 돈을 척척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거 교육사업을 벌이는 데 주력했던 대순진리회 종단은 이제 ‘복지사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길봉사회를 지원한 이유도 복지사업의 일환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는 특히 노인복지와 아동복지에 관심이 많다. 사회복지법인 상생복지회를 설립해 무료 양로원(골든밸리)과 고아원(우리집)을 운영하고 있고,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노인 사랑방’을 설립해 소외된 노인들이 머무를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15억원 쾌척’… 무료급식소 살아났다

한길봉사회에 15억원을 쾌척한 대순진리회의 이유종 종무원장.

이들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또 하나의 사업은 러시아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 머물고 있는 한민족을 돕는 일이다. 1997년 10월 타지키스탄공화국에 사절단을 파견한 대순진리회는 동포 청소년들을 모국에 초청, ‘한국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울러 러시아 연해주에 1억2000만평 규모의 대단위 농장을 인수해 고려인들의 농장 경영을 돕고 있다. 2001년 5월에 수확한 벼 240t을 북한 주민에게 보냈고,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현지 사람들을 돕고자 연차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남한, 북한 모두한테 버려졌다’고 여기는 해외 동포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것이 이원장의 간절한 바람이다.

‘독립문 천사’로 불리는 김회장과 ‘따뜻한 종교지도자’ 이원장의 만남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김회장은 이원장이 기부한 지원금으로 7월9일 총면적 155평의 건물을 매입해 ‘무의탁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을 조성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던 가건물 컨테이너 박스 대신 주변의 눈총으로부터 바람막이가 되어줄 5층 건물이 ‘급식소’ 구실을 하게 된다. 김회장은 이 건물에 이발소와 휴게실 등을 만들어 노인들이 하루 종일 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앞으론 점심뿐 아니라 하루 세 끼 모두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겠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무료급식에 휴가가 어딨냐”고 되묻는 김회장은 “이원장의 도움으로 안정된 틀을 마련한 만큼,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주간동아 449호 (p52~53)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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