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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풍수 | 서울 도심의 ‘효창원’

정조 임금 만들고 김구 선생 묻히고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정조 임금 만들고 김구 선생 묻히고

정조 임금 만들고 김구 선생 묻히고

백범 김구 선생의 무덤.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으로 알려져 있는 ‘효창원(孝昌園)’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천하의 명당’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순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안장된 곳이다. 효창원과 효창공원, 그리고 효창운동장은 같은 장소를 두고 달리 부르는 이름들이지만 효창원을 빼고는 역사적으로 그리 기분 좋은 이름이 아니다. 언젠가는 없애야 할 이름들이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효창원은 원래 정조 임금이 잡은 자리다. 정조 임금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기 위해 15년 넘게 풍수를 공부했는데, 자신이 어떻게 풍수 공부를 했는지 ‘홍재전서’에 적고 있다.

“처음에는 옛사람이 풍수지리를 논한 여러 가지 책을 취해 전심으로 연구한 결과 종지를 얻은 듯했다. 그래서 역대 조상 왕릉의 용혈사수(龍穴砂水)를 가지고 옛날 방술을 참고해보았더니, 하자가 많고 길격은 하나도 없었다.”

정조 임금에게도 뜻밖의 불행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난다. 가장 큰 불행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1782∼86)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죽은 것이다. 정조는 죽은 아들을 좀더 가까이에 두고 싶어 궁궐에서 가까우면서도 길지(吉地)인 효창원에 아들을 묻는다.

몇 달 뒤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성씨(宜嬪成氏)가 또 갑자기 죽는다. 더구나 의빈성씨는 임신을 하고 있었다. 정조 임금은 문효세자 바로 옆 능선에 의빈성씨를 묻어 죽어서나마 모자(母子)의 정을 나누기를 바랐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효창원은 지금의 효창동과 청파동 일대에 걸쳐 아름다운 숲을 형성했다.



그런데 19세기 말 일본 군대가 지금의 효창운동장 남단의 솔밭에 주둔하면서부터 이곳을 훼손하기 시작했고, 1924년에는 이곳 일부를 ‘효창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또 일제는 문효세자와 생모의 무덤을 모두 서삼능으로 옮겨버림으로써 조선시대 최고 성군 정조 임금이 만든 효창원을 없애버렸다.

이 자리를 다시 주목한 이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다. 백범은 한때 관상가나 지관이 되고자 한 적이 있었다. 글공부로 양반 되기는 이미 그른 세상인 줄을 깨달은 소년 백범에게 아버지가 풍수나 관상을 공부해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수를 잘 배우면 명당을 얻고 조상님네 산수를 잘 써서 자손이 복록을 누릴 것이요, 관상에 능하면 사람을 잘 알아보아서 성인군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백범일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백범은 관상 공부를 시작하지만 자신의 관상이 흉상임을 알고서 크게 실망한다. 소년 백범은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라는 문장 하나만을 마음에 새긴 뒤 관상 공부를 그만두고 풍수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해 풍수서 몇 권 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지만 인식능력이 뛰어난 그가 풍수의 대강을 파악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해방과 더불어 백범은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일본에서 고국 땅으로 모셔 문효세자의 옛 무덤 터에 국민장으로 안장한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이곳에 안장하려고 가묘를 만들어두었다. 이어 1948년에는 중국 땅에서 순국한 이동녕·차리석·조성환 선생의 유해도 의빈성씨의 옛 무덤 터에 안장했다. 백범 자신은 49년 암살된 뒤 이곳 북서쪽 능선에 안장된다. 그렇게 해서 효창원이 자연스럽게 부활됐다.

정조 임금 만들고 김구 선생 묻히고

문효세자의 옛 무덤 터에 안장된 삼의사(三義士)의 무덤과 안중근 의사 가묘.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은 이장을 추진했다. 유족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의 반대에 부딪혀 무덤 이전은 보류됐으나 효창원의 규모와 경관이 훼손되는 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아시아축구대회 유치를 구실로 묘소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일본이 이곳에 효창공원을 만들었다면, 해방 이후 정부는 효창운동장을 만들었다. 잠실·상암운동장과 같은 대형 운동장이 있는 만큼 이제는 효창운동장을 없애고 효창원의 옛모습을 복원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곳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주간동아 448호 (p90~90)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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