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4

2004.07.22

강남아파트 재활용품은 돈덩이

헌 옷 수거함 등 뚜껑 달아 관리 시작 … 일부 수거업자들 부녀회 뒷돈 제공도 공공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7-16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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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아파트 재활용품은 돈덩이
    ‘오늘부터 재활용 수거함의 뚜껑을 덮겠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다른 가구에서 배출한 재활용품을 훼손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7월1일 경기 구리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재활용 수거장 앞에는 이러한 간판이 내걸렸다. 주민들이 재활용 수거함을 뒤져 쓸 만한 물건을 꺼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최근 대형 아파트단지 부녀회를 중심으로 ‘재활용품 지키기’ 노력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들이 헌 옷 수거함 등에 뚜껑을 달고 재활용품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 최근에는 이 같은 분위기가 수도권 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재활용품 판매가 부녀회에 큰 수익을 올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재활용품 수거상들에 따르면 아파트 부녀회가 단지 내 재활용품의 수집 및 판매를 관리하며 벌어들이는 수익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서울 시내 아파트단지를 돌며 헌 옷을 수거하는 이모씨는 “아파트의 위치나 입주민의 경제수준, 수거되는 헌 옷의 품질 등에 따라 값이 달라지지만 서울의 경우에는 가구당 한 달에 600~700원꼴로 계산해 미리 보상금을 부녀회에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데, 강남 지역 고급 아파트의 경우에는 보상가가 평균의 배 넘게 뛴다”고 밝혔다.

    “싫증나서 버리는 것 ‘준명품’ 수준”



    이씨의 말에 따라 ‘재활용 보상금’을 가구당 1200원선으로 계산할 경우 서울 강남의 1000가구 아파트단지의 부녀회가 1년 동안 헌 옷 판매로만 벌어들이는 돈은 1500만원에 이르는 셈이다.

    이 정도 수입이 보장되려면 옷의 양과 품질이 일정 수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끼리의 ‘아나바다(물건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운동)’는 되도록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연 주민들이 입지 않고 버리는 헌 옷을 수거하는 데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재활용업자들은 서울 지역 아파트의 경우 이 정도 비용을 투자해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 도시 사람들 가운데 옷이 떨어져서 버리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헌 옷 수거함을 통해 배출되는 것은 대부분 싫증나서 더 이상 입지 않게 된 옷이나 이불, 커튼 같은 것이거든요. 강남 지역의 경우에는 이 물건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준명품’ 수준입니다. 부녀회에서 불우이웃돕기 바자 등을 할 때 모이는 물건들도 다른 지역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라도 구입하려고 할 만큼 새것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옷가지들을 손질해서 재판매하면 수익이 상당합니다.”(헌 옷 수거상 김모씨)

    우리나라의 중고 옷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옷들은 1kg당 300~500원을 받고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헌 옷의 품질은 이미 동남아시아 등지에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상당수 무역업체들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캄보디아 등에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헌 옷 수거상들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밑지지 않는 사업인 셈이다.

    옷을 제외한 가전제품이나 가구 식기류 등은 주민들이 직접 중고용품 매장과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물건의 수가 헌 옷에 비해 크게 적지만, 일단 수거해 판매할 경우 벌어들이는 수입은 헌옷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특히 강남 지역의 경우 유명 상표의 제품이 많아 손질만 잘하면 재활용 업자가 개당 수십만원대의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흔하다.

    재활용 수거업자의 손끝에서 ‘쓰레기’가 ‘돈 덩이’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강남아파트 재활용품은 돈덩이

    수집된 헌 옷은 재활용 매장을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 팔리거나 동남아 등지로 수출된다.

    문제는 아파트의 입지에 따라 재활용품의 질과 그에 따른 판매 수입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 이 때문에 재활용 업자들 사이에서는 ‘물 좋은’ 지역 대단지 아파트의 재활용 수거권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부녀회장 등 간부들에게 철마다 선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뒷돈을 제공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씨는 최근 입주한 서울 강북 지역 한 아파트의 헌 옷 수거권을 따내기 위해 부녀회에 회식비 명목으로 50만원을 건네고, 부녀회장에게는 따로 사례금을 지급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부대 수익’을 통해 부녀회는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부녀회의 수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부녀회 관계자에 따르면 재활용품 판매는 부녀회 수익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내에 알뜰장터를 유치할 때는 한 회당 20만~30만원선, 광고문을 부착할 때는 건 당 몇 만원꼴로 수수료를 받는다. 이처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아파트 부녀회가 해마다 벌어들이는 수익은 4000만~5000만원선. 신도시 아파트로서는 이례적인 고액이라, 아파트 부녀회는 해마다 수도권의 다른 아파트 부녀회장들이 ‘모범 사례’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답사 코스가 됐다.

    이와 관련, 아파트 부녀회 관계자는 “부녀회 수익은 전액 주민 봉사와 단지 관리에 투자된다”며 “이 돈으로 단지 내에 도서관을 마련했고, 청소년을 위한 행사나 어버이날 행사 등 주민 복지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당수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는 부녀회가 한 해에 수천만원대의 자금을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데 따른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건설교통부와 ‘아파트관리마당’ 등 관련 사이트에는 불투명한 부녀회 운영을 고발하는 탄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재활용품 판매 수입을 부녀회가 부당하게 ‘착복’한다는 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자금 운용 부녀회 비판도 이어져

    강남아파트 재활용품은 돈덩이

    아파트 단지 내 깔끔하게 정리된 재활용품 수거함.

    주택법상 공동주택 관리로 인한 수입의 용도 및 지출 방법에 대해서는 관리규약으로 정하게 되어 있지만 부녀회 기금은 보통 자체 감사를 통해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

    이에 대해 건교부 관계자는 “알뜰시장 장소 대여료 및 광고 부착 수수료 수입 등은 공동주택 관리로 인한 수입이므로 관리규약에 정한 대로 사용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재활용품 분리수거 수입의 경우 사실상 재활용품 분리수거에 참여한 이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부녀회에서 분리수거 작업을 맡아 할 경우 수입을 가져가는 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파트단지 부녀회는 주민들을 순번대로 재활용품 분리 작업에 동원하고, 이에 불참할 경우 3000원에서 최고 2만원에 이르는 벌금을 받고 있어 쓰레기 수거 작업은 주민들에게 떠넘기고 수입만 챙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아파트 공동체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는 “재활용 쓰레기가 돈이 되어 아파트 발전에 쓰이는 것은 주민들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데, 그 과정에서 부녀회를 둘러싼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부녀회는 사업체가 아니라 봉사단체인 만큼 앉아서 기금이나 챙길 것이 아니라 입주자 대표와 함께 물탱크 청소를 확인하고 지하실, 기관실 등을 정기적으로 견학함으로써 주민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등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견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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