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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감사 경쟁률 센 까닭은

낙하산 비난 피하고 외형상 사장 권한 … 여권 인사들 ‘눈독’ 들이지만 전문성 논란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공기업감사 경쟁률 센 까닭은

공기업감사 경쟁률 센 까닭은
총선 출마를 위해 올 1월28일 사표를 냈던 정부 부처의 한 차관급 인사는 곧바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에 입당한 다음 고향으로 내려가 표밭갈이에 나섰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당시는 우리당 지지율이 뜨지 않을 때여서 출마해봐야 결과가 뻔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선거를 치르려면 20억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위 사람들의 얘기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그가 중도포기 후 바로 서울로 올라온 까닭은 목표를 국회의원에서 공기업체 사장으로 틀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기업 임원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우리당 중앙당 주변을 맴돌아야 그나마 공기업체 사장 자리라도 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그는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지만 아직도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인사가 아직까지 공기업체에 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대기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총선에서 낙선한 인사를 비롯해 청와대 출신 등 여권이 챙겨줘야 할 인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정부 산하기관 대표의 경우 사장추천위원회 등을 만들어 선임하게 하고 있어 정치권 인사들이 이 자리로 진출하기도 쉽지 않다.

견제 역할이지만 사장 깍듯이 예우

이런 사정 때문인지 참여정부 들어서는 공기업 ‘감사’ 자리가 여권 인사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기관장만큼 눈에 띄지 않아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난여론을 줄일 수 있는 데다 외형상 사장 못지않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 역시 사장과 마찬가지로 3년이다. 민주당 당료 출신으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한 산하기관 감사는 “규정상으로는 감사가 도장을 찍지 않으면 사장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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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왕성 한국전력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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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섭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

물론 현실적으로는 사장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정치권 출신으로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에 선임됐다가 임기 만료와 함께 지난해 5월 퇴임한 이왕종씨는 “재임 시절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감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이 인사권을 가진 사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감사가 사장에 대한 감시 견제 노릇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는 것.

감사는 사장을 비롯한 집행 임원들을 견제하고 회계감사를 하는 부서이다. 정부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상 정부투자기관의 감사는 기획예산처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경우 기획예산처 장관은 재정경제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반면 사장은 사장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주무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 밖의 산하기관 감사는 주무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감사가 사장에 대한 견제 구실을 한다고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장을 깎듯이 예우한다. 경찰청장을 역임한 황용하 전 한국전력 감사 같은 사람도 최수병 당시 사장을 면담하러 가기 전에는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만질 정도였다고 한다. 황 전 감사는 평소 “감사권은 경영권의 일환이기 때문에 절대 경영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해왔다.

그러나 사장과 감사가 대립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 한전 사장을 역임한 장모씨가 임기 중반에 이모 감사와 함께 동반 퇴진한 이유는 두 사람이 사사건건 대립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김대중 정권 시절 강원랜드 감사를 역임했던 K씨는 당시 K사장을 고발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정치권에 돌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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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룡 중부발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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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익구 남동발전 감사

정치권 출신 감사들은 해당 노조의 반발로 입성에 애를 먹기도 한다. 한국가스공사 감사로 선임된 조광한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대표적인 경우. 조감사는 원래 3월29일 주총에서 선임될 예정이었으나 노동조합 측이 가스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고, 감사 경험도 전혀 없는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해 선임이 미뤄졌다. 공사 측은 이에 수원지방법원으로부터 직무대행자 선임 판결을 받아 조씨를 4월21일 일시감사로 임명했고, 6월22일 주총에서 겨우 정식으로 선임할 수 있었다.

물론 정치권 출신 인사들을 무조건 낙하산으로 규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김대중 정권 시절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뒤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에 임명됐던 오홍근씨(현 민주당 대변인)는 “외부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낙하산이라고 한다면 승복하겠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전임 사장들보다 경영 실적이 좋았다. 그런 점에서 ‘결과’를 가지고 평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항변했다.

내부의 순혈주의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 국민참여본부 대외협력1국장 출신의 전문건설공제조합 김동수 감사는 “낙하산 인사에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내부 인사가 감사를 맡게 되면 ‘끼리끼리 문화’에 젖어 제대로 감사 노릇을 수행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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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한 한국가스공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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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 대한주택공사 감사

감사 선임 절차나 규정 아직 없어

물론 김감사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외부 인사가 반드시 정치권 출신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감사야말로 전문가로 충원돼야 하지 않을까. 한 재벌그룹의 고위 임원은 “정부는 민간기업에는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고 하면서, 정부 스스로는 산하기관 감사로 정치권 인사들을 선임해 감사의 기본 업무인 사장에 대한 감시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 산하기관 감사로 진출한 정치권 인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선 정부투자기관(정부 지분이 자본금의 50% 이상인 기관)을 보자.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임기 만료 등으로 물러난 기관은 13개 정부투자기관 가운데 8곳. 이 가운데 한국수자원공사 이경기 감사만 현재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쉐타 및 정밀금속 제조업체 천지산업 상무 출신이고, 나머지 7곳은 정부 여당 인사들이다(표 참조). 이경기 감사 역시 부도난 회사의 임원 출신이어서 빛이 바랜다.

8곳의 투자기관 감사 가운데 그나마 감사 업무와 인연이 있는 사람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정재실 감사 정도다. 정감사는 감사원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출신으로, 감사교육원 교수부장을 끝으로 올 7월1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로 옮겼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감사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감사로 임명된 다른 투자기관과 달리 정감사의 경우는 낙하산 인사로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 재투자기관(정부 투자기관이 출자한 기관)이나 출자기관(정부 지분이 50% 이하인 기관) 감사 역시 정치권 출신이 많다. 한국전력의 6개 발전 자회사 가운데 남동발전 여익구 감사, 중부발전 강기룡 감사는 우리당 지구당위원장 출신이다. 서부발전 최갑진 감사는 대통령경호실 기획관리실장과 감사관을 지냈다. 한국수력원자력 최용현 감사는 노무현 후보 중앙선대위 자원봉사특위 위원장 출신. 역시 한전 자회사인 한전원자력연료 이완규 감사 역시 우리당 대전시지부 사무처장을 역임한 지역 정치권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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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전문성이 요구되는 대덕연구단지 내 주요기관 감사직에 우리당 대전·충청지역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후보 대전·충남 조직특보 출신인 김영완씨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감사로 선임된 데 이어, 한국과학재단도 5월 초 지난 총선에서 우리당 충북 제천지구당에 공천 신청을 냈던 박재구씨를 감사로 선임했다.

정부 산하기관 감사에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진출하는 이유는 감사 선임에 관한 정해진 절차나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기획예산처는 올 4월 당시 고건 대통령권한대행에게 정부투자기관 감사 이사 선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공모제 도입 등 방향을 바꾸겠다고 보고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부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에 능한 국회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주간동아 444호 (p34~35)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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