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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숙제 못하고 출범하나

성공 선결조건인 ‘불법체류자’ 근절 안 돼 … 외국과의 인력 송출계약도 차질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고용허가제’ 숙제 못하고 출범하나

‘고용허가제’ 숙제 못하고 출범하나

8월17일부터 고용허가제가 본격 실시되면 외국인 노동자도 노동3권을 갖게 된다. 6월10일 시청앞 광장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경기 광주시의 한 플라스틱 접시 제조회사에서 4년째 일해온 파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아비드(34)는 요즘 앞이 캄캄하다. 사장이 몇 달째 임금을 체불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취업이 쉽지 않다. 그는 합법 근로자 신분을 의미하는 E-9 비자를 갖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한 달 안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몇 달째 계속 야근을 시켜 너무 힘들어 그만뒀습니다. 고용안정센터(이하 고용센터)에서 소개해준 공장에 갔더니 직원 대부분이 필리핀 사람들이라고 저를 안 받아주더군요. 제 친구들이 소개해준 공장에 가고 싶은데, 고용센터에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저도 불법체류자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8월17일부터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해온 고용허가제가 본격 실시된다. 그러나 허가제 성공의 선결 조건인 불법체류자 근절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 관련 규정이 너무 엄격해 불법체류자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많은 규제가 불법체류자 양산 ‘지적’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주가 고용계약 해지를 허락하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휴업할 경우, 또는 회사 측의 폭행 등 인권침해가 있을 경우에만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이것도 3회 이상 이동할 수 없다. 다만 휴업이나 폐업 등이 이유일 때는 1회 더 허용된다. 근로계약이 종료되면 1개월 이내에 고용센터에 가서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해야 하고, 이곳에서 알선해주는 사업장으로만 이동해야 한다. 또 2개월 넘게 취업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얻기보다 친구나 지인, 직업소개소를 통해 취업하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낯선데 따로 있는 곳보다 생활이 더 편하고, 월급도 더 많이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고용센터만을 통해서 취업하게 하거나, 사업장 이동을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결국 불법체류자를 늘리고 있는 것입니다.”(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이란주 정책국장) 4월30일 현재 총 외국인 노동자 수는 41만4864명, E-9 비자 소유자는 17만2009명(전체의 41.5%), 불법체류자는 15만281명(36.2%)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지난해 고용허가제법 공포 후 취지를 살리기 위해 불법체류자를 집중 단속했고, 한때 30만명에 이르던 불법체류자가 지난해 말에는 13만여명으로 줄어들었다. 불법체류자가 되는 원인은 사업장을 무단으로 이탈하거나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경우, 또는 체류기간이 끝났는데도 출국하지 않은 경우 등이 대부분이다. 사업장 이탈 사례는 올 들어 6월 말까지 6227건이나 발생했다. 지난 4월에만 해도 E-9 비자 자격자가 4040명 줄어들었고, 불법체류자는 1만774명이 늘어났다. 정부는 불법체류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제에서 고용허가제 시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올해 계획된 외국 인력 7만9000여명(고용허가제 2만5000명, 중국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관리제 1만6000명, 기존의 산업연수제 3만8000명)이 추가로 입국하면 외국 인력이 과포화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국내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 데다 기존 외국 인력도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어,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조만간 법무부와 노동부는 불법체류자에 대해 더 이상의 유화조치는 없다는 내용의 공동담화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고용허가제를 앞두고 다시 한번 합법화 조치가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고, 불법체류자가 너무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 권기섭 외국인력정책과장은 “불법체류자를 줄이는 데는 단속만이 최선이며, 당분간 사업장 위주의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사회학)도 “선진국의 경우 단속 핵심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불법 고용업주”라며 “불법체류자를 줄이지 못하면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3년 뒤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많아 고용허가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 1년간 준비해왔으며 이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 관리의 새 장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엄격한 선발과 철저한 사전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질을 높이고,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 3년간 안정적으로 노동자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해왔다. 그러나 정작 본격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불법체류자 문제뿐 아니라 외국과의 송출 계약 문제, 신규 도입 인력의 교육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어 시행 초기부터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다. 외국과의 인력 송출계약도 차질을 빚고 있다. 지금까지 인력 송출계약을 체결한 국가는 애초 계획인 8개국에 못 미치는 필리핀•몽골•태국•베트남•스리랑카 5개국뿐이다. 중국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은 국내 상황 변화로 인해 당분간 계약 체결이 어려울 전망이다.

‘고용허가제’ 숙제 못하고 출범하나

4월25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노동비자 쟁취를 위해 집회를 하고 있다.

보험 가입 강제조항 없어 유명무실 우려

고용센터의 전문성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관계자는 “고용센터에서 매달 구인구직의 날 등을 운영하며 취업 알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가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직원들의 전문성 부족, 인력 부족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언어 소통에 문제가 있어 고용센터를 잘 이용하려 하지 않고, 고용센터는 늘어나는 업무량을 소화하는 데도 벅찬 상황이다. 특히 올 들어 8월까지는 지난해 합법화된 18만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체류기간을 다시 연장할 것으로 추산돼 관련 업무가 늘어나고, 장기 구직자 일제정리기간 운영 등으로 취업 알선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 고용허가제는 사용자들에게도 얼마간의 부담을 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 뒤 취업교육은 국제노동재단과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에서 하지만 교육비는 사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외국 인력을 고용할 경우 한 달 전 내국인 구인신청을 내 내국인이 없을 경우 외국 인력을 고용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사업주들이 이런 절차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용허가제’ 숙제 못하고 출범하나

불법체류자 단속에 나선 정부 합동단속반.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무엇보다 고용자 위주의 정책이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김지예 간사는 “노동자 중심의 시각이 결여돼 있어 노동자들의 큰 불편이 예상된다”며 “법률상 노동3권을 부여받아 노조도 만들 수 있지만 1년에 1회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사용자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회사를 옮겨야 하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조항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이란주 국장도 “법률상 4대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강제조항이 없어 문제”라며 “영세사업장의 경우 국내 노동자도 4대보험 가입이 잘되지 않는 곳이 많은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얼마나 잘 적용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라는 선진 제도를 도입하면서 우리나라는 외국 인력 정책의 새 단계 진입을 앞두고 있다.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설동훈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우리 경제와 기업의 핵심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문화는 우리가 직접 배워서 그들을 감싸 안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4.07.22 444호 (p56~57)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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