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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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와 우체부 ‘동화 같은 사랑’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6-25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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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와 우체부  ‘동화 같은 사랑’
    우체국에서 일하는 나영(전도연 분)은 어머니 연순(고두심 분)의 잔소리에 못 이겨 가출한 아버지 진국을 찾으러 고향 우도로 내려갔다가 그만 20여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만다. 당시 해녀였던 연순의 집에서 머물던 나영은 연순과 아버지 진국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치스럽기까지 했던 부모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설정만 따진다면 ‘인어공주’처럼 안전하게 시작하는 영화도 많지 않다. 어쩌다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데이트를 시작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백 투 더 퓨처’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게다가 ‘인어공주’는 한국 영화 중 처음으로 이 설정을 모방한 영화도 아니다. 김희애가 주연한 1987년도 영화 ‘영웅 돌아오다’를 기억하는 분이 계신지? 이 영화에서 김희애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데이트를 시작하던 1960년대 중엽으로 들어간다.

    출연 배우의 활용 방식도 영화의 안전성에 한몫한다. 전도연의 시골 아가씨 연기는 이미 ‘내 마음의 풍금’에서 시도된 적 있다. 고두심 역시 수십 년 동안 대가 센 아줌마 역의 단골 배우로 활동해왔고.

    그러나 안전하고 모범적인 설정만 보고 ‘인어공주’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인어공주’의 장점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오래된 설정을 제대로 활용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후자가 더 어려운 법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비교 대상을 머리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같은 설정을 쓰고 있어도 ‘인어공주’와 ‘백 투 더 퓨처’의 의도는 전혀 다르다.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 마티는 자신의 등장 때문에 어긋난 역사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노력 도중 역사를 더 낫게-좋은 방향으로-바꾼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매력은 이 역사의 변형에 있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역사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나영은 가끔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에 참견하긴 하지만, 그들의 운명까지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시간여행이 끝나면 나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현재로 다시 돌아온다.



    ‘인어공주’는 화려한 대리만족의 팬터지인 ‘백 투 더 퓨처’와 같은 재미는 없지만, ‘백 투 더 퓨처’에는 없는 또 다른 맛이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가 과거의 무게와 의미에 대해 진지하다는 것. ‘인어공주’에서 과거는 바꾸거나 무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남은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기억하고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따금 손쉬운 현실 도피로 빠지는 이런 종류의 시간여행 팬터지들과 달리 ‘인어공주’는 현실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제는 심각하지만 사랑스러운 팬터지다.

    시간여행기를 핑계로 진행되는 시골 해녀와 우체부의 사랑은 로맨틱하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냉정하고 차가운 말년의 이야기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와 딸의 1인2역을 선보이는 전도연과 나이 든 어머니를 연기하는 고두심 역시 노련하고 유려한 연기를 보여준다.

    Tips | ‘내 마음의 풍금’

    전도연이 시골 초등학교의 늦깎이 학생으로 출연한 영화로, 여기에서의 순박하고 촌스런 이미지가 ‘인어공주’에 오버랩되는 것이 사실이다. 전도연도 “이 점을 걱정했으나 감독이 전혀 다른 역이라고 확신시켜주었다. 연기를 하면서 나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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