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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통신

백만장자들 영화계에 달러 퍼붓기

외국자본 떠난 자리 개인 부호들이 새 물주로…유명 메이저리거들도 대거 투자

  • LA=신복례 통신원 borae@hanmail.net

백만장자들 영화계에 달러 퍼붓기

1980년대 후반부터 할리우드에는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의 대기업 자본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 사이렌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배를 침몰시키고 사람들을 죽게 만든 것처럼 할리우드 품으로 뛰어든 외국자본들은 결국 스러져갔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전자기업들이다. 마쓰시타전자는 1990년 유니버셜 영화사의 모회사인 MCA를 66억 달러에 사들였다가 결국 5년 뒤 주식지분 가운데 80%를 시그램사에 넘기면서 손을 털었고, 89년 콜롬비아영화사를 34억 달러에 사들였던 소니는 지나친 초기 투자에, 제작한 영화들의 잇따른 흥행 실패로 역시 5년 만에 27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계의 대들보인 카날 플러스도 90년대 초반 할리우드 영화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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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자금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대작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외국자본들이 만든 영화는 거의 비평이나 흥행에서 매우 저조했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고 할리우드에 매혹됐던 외국자본들은 쪽박 난 꿈에 빈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할리우드를 떠나갔다. 외국자본이 떠나간 자리에 최근 들어 새로운 돈줄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개가 개인투자자들인데, 사적으론 영화팬들이라는 사실이 이들 신흥그룹의 공통점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최근 문화면 커버스토리에 뉴욕 메츠의 베테랑 3루수 토드 질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토드 질이 LA다저스와 치른 야구경기에서 멋진 홈런을 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원정경기를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간 뒤 경기가 없는 밤과 아침을 이용해 며칠 동안 영화를 찍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토드 질이 배우로 출연한 영화는 하이틴 코미디물인 ‘더티 디즈(Dirty Deeds)’고, 맡은 역은 집 없는 부랑아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던진 병에 머리를 맞고 몇 마디 대꾸하는 단역이라고 한다. 토드 질은 이 영화의 감독이나 출연배우와의 관계 때문에 우정 출연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는 바로 그가 투자해서 제작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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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의 프레드 스미스 회장이 제작한 영화 \'인썸니아\'.

뉴욕 메츠의 토드 질 투자•출연 겸업

올해 39살인 토드 질은 올 가을 메이저리그 시즌을 마치고 은퇴할 예정이다. 유시엘에이(UCLA) 출신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란 토드 질은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야구 때문에 꿈을 접었던 과거를 갖고 있다. 결국 야구선수에서 은퇴하면서 어려서 꿈인 영화배우 겸 영화투자자로 나서기로 한 것이다. 가슴속에 묻어둔 옛날 꿈에 불을 붙인 건 이웃에 살던 탤런트 매니저 빌 시비텔라였다. 둘은 의기투합해 영화와 TV 쇼를 주로 제작하는 ‘그린 다이아몬드 엔터테인먼트’란 프로덕션을 차리고 현재 5000만 달러의 자본금을 모으고 있다. 그린 다이아몬드 엔터테인먼트의 주요 투자자는 대개의 영화사들처럼 은행이 아니다. 바로 야구선수들이다. 토드 질이 선수생활을 하면서 친하게 지낸 뉴욕 양키스의 홈런 타자 제이슨 지암비, 뉴욕 메츠의 스타 포수 마이크 피아자, 노장투수 톰 글래빈과 알 라이터, 외야수 클리프 플로이드 등이다. 이들은 한때 메이저리그를 휩쓸었거나 지금도 명성을 누리고 있는 선수들로, 은퇴 이후 영화라는 새로운 분야에 둥지를 틀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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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투자자로 나선 뉴욕 메츠의 토드 질.

토드 질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항상 영화산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더티 디즈’를 위해 250만 달러를 모았으니 출발로서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야구계에 있는 많은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더티 디즈’는 바로 토드 질이 할리우드 입성을 위해 첫 노크를 하는 작품이다.

토드 질 이외에도 부동산 재벌 후계자인 스티브 빙, 컴퓨터회사 게이트웨이의 공동창립자인 놈 와이트 주니어, 페덱스 회장인 프레드 스미스, 하이테크 재벌 로저 마리노, 아이스하키팀인 로스앤젤레스 킹즈와 대규모 극장 체인 리갈 시네마를 소유하고 있는 필 안슐츠 회장 등이 할리우드에 돈줄을 대는 신흥 투자자들이다. 스티브 빙은 올해 초 오언 윌슨, 찰리 쉰이 주연한 코미디 스릴러물 ‘빅 바운스’를 상영해 엄청난 적자를 냈다. 두 번째 작품은 어린이 동화를 각색한 ‘폴라 익스프레스(the Polar Express)’로, 톰 행크스를 주연배우로 기용하고 제작비로 8000만 달러를 썼다. 오는 11월 개봉할 예정이다. 놈 와이트 주니어는 돈을 댄 대부분의 영화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지난해 개봉한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 크게 히트하면서 겨우 체면치레를 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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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회사 게이트웨이의 창립자 놈 와이트 주니어가 제작한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페덱스 프레드 스미스 회장은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데, 알파치노와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인썸니아’는 히트를 쳤고, 힐러리 스웽크가 주연한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The Affair of the Necklace)’는 손해를 봤다. 로저 마리노는 피츠버그 하키팀 펭귄을 운영하면서 4000만 달러를 손해봤는데, 영화에 투자하면서도 그에 맞먹는 돈을 썼다. 대부분 예술영화에 투자한 걸로 보아 애초 돈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필 안슐츠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오락물에 주로 투자했는데 제작비로 1억 달러를 쓴 성룡 주연의 ‘80일간의 세계일주(Around the World in 80 Days)’가 곧 개봉될 예정이다.



신흥 투자자들 현재 성적은 ‘별로’

전통적인 투자재원이 사라진 상황에서 할리우드로선 이들 백만장자들의 투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거대 복합 미디어 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메이저들의 외부자본에 대한 의존도는 심화돼왔다. 스튜디오들은 모기업으로부터 정해진 예산을 받아 운영한다. 모기업이 충분한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위험성은 크지만 잘하면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을 제작하기 힘들다. 그래서 스튜디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적절한 예산으로 만드는 코미디나 스릴러물이 양산되는 것이다. 2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이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았다면 아마 ‘반지의 제왕’ 같은 대작은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순수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포함해 할리우드 영화의 편당 제작비는 이제 9500만 달러를 육박한다. 어떤 스튜디오라도 외부자본의 지원 없이 10개 이상의 영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반지의 제왕’ 제작비 조달에 핵심 구실을 한 켄 카민스 재정담당 매니저는 “스튜디오들이 자기 자본으로 충당하는 9~10개의 영화를 포함해 외부 투자를 받아 모두 18~20개의 다양한 영화를 라인업으로 구성하는 것이 요즘 경향”이라고 소개했다. 다양한 장르와 내용으로 25개쯤 라인업 구색을 맞춰놓으면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도 쉽고 영화 한 편에 거액을 쏟아붓는 것보다 결과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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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재벌 후계자로, 미 정치헌정 사상 최대 액수를 기부해 회제가 됐던 영화 제작자 스티브 빙(오른쪽).

물론 한 편의 영화에서 손해를 봐도 다른 한 편의 영화가 성공하면 만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로 역시 영화에 투자를 하고 있는 보브 야리는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가능하면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각 영화를 만들 때마다 독립회사를 차려 각기 다른 경영원칙에 따라 운영하면 융통성 있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험도 분산시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야구와 영화제작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아마도 두 분야 모두 부침이 심하고 오늘의 안타가 내일의 슬럼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뭉쳤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 토드 질과 친구들의 ‘야구선수 영화사’가 향후 3년간 펼쳐보일 성적표가 자못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441호 (p56~57)

LA=신복례 통신원 bor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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