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1

2004.07.01

‘불신의 살’찌우는 비만치료제

일부 전문의 이뇨제 등 전문의약품 '복합처방'…과학적 검증 미흡 비만학회 논쟁 속 환자만 피해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6-24 1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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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신의 살’찌우는 비만치료제
    살이 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케이블 TV 채널이 있다. 비만인들이 이 채널에 가끔씩 들르는 이유는 거의 매주 충격적인 다이어트 식품 광고들이 정규 프로그램들 사이에 끼어 나오기 때문. 이 광고들에 나오는 제품은 기본이 ‘한 달에 10kg 이상 살 빠지게 해주는’ 식품. 식품이라고 하지만 내용을 보면 거의 전문 비만치료제에 가깝다.

    사람들은 광고를 보면서 홈쇼핑 채널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광고의 진행 방식이 홈쇼핑과 거의 비슷한 데다 광고 제품이 바뀌어도 광고 진행자들은 바뀌지 않는 까닭. 실제 이들은 자신들을 쇼 호스트라고 부른다. 유명 탤런트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출연하거나 광고 중간에 이들이 제품의 신뢰성을 증명하는 듯한 인터뷰가 나오는 것도 홈쇼핑과 비슷하다.

    문제는 올 들어 이 케이블 TV에서 내보낸 다이어트 식품 광고 대부분이 ‘허위과대’ 광고로 경찰에 고발되거나 관련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 내용의 대부분이 사실과 관계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일단 지난 5월 중순에서 6월 초순까지 날마다 방영된 K다이어트 식품 광고의 예를 들어보자. 쇼 호스트가 실제 자신이 복용하고 살이 쏙 빠졌다는 말로 시작하는 광고는 이 식품 한 알을 먹으면 날마다 1080kcal가 소모돼 보름 만에 9kg이 빠진다고 비만인을 현혹한다. 캡슐 한 알을 먹으면 3시간 걷거나 2시간 조깅한 효과와 맞먹으므로 운동할 필요가 전혀 없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으면서도 살을 뺄 수 있다는 설명이 실감나는 장면들과 함께 숨돌릴 틈도 없이 이어진다. 곧이어 탤런트 이일화가 나와 “동물실험, 임상실험에 운동실험까지 해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자 슈퍼모델 김소연이 “나도 매일 먹는데, 효과 많이 봤다”며 “여러분도 꼭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구매를 권유한다. 다음엔 비만 쥐와 정상 쥐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주부 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실험 결과를 보여준다. 모두 보름 만에 9kg 넘게 빠진 놀라운 결과. 때마침 명문 사립대인 K대학 부설 스포츠의학연구소 연구원과 소장이 나와 “칼로리 소모량을 증가시키는 신개념 다이어트”라며 앞서 보여준 임상결과를 뒷받침한다. 다이어트 효과를 직접 경험한 쇼 호스트와 날씬한 탤런트들에 명문대 연구원의 임상실험 결과까지 정말 ‘믿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쏙 빠진다” 케이블 TV 건강보조식품 ‘뻥’ 여전

    ‘건강보조식품을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거나 의약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광고, 또는 연예인과 교수 등이 추천하거나 체험했다’는 내용의 광고는 모두 식품위생법에 위반되는 허위과대 광고로 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기자는 일단 이를 무시하고 5월24일 이 제품을 직접 사 실제로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지 실험해보았다. 보름이 지난 6월9일 현재 살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1kg이 늘었다. 일주일에 나흘 넘게 하루 7~8km를 뛰면서 식품을 먹었는데도 전혀 살이 빠지지 않은 것이다.



    ‘불신의 살’찌우는 비만치료제

    과연 약만 먹고 살을 뺄 수 있을까? 비만 전문의들은 이를 믿는 소비자보다 이런 거짓말을 하는 의사들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광고에 나오는 K대학 부설연구소에 전화해 확인해보았더니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광고에 출연한 연구원은 “우리는 광고 내용에 나오는 임상실험을 한 적이 전혀 없다. 교육 홍보자료로 쓴다고 해 몇 마디 해준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소 측은 광고 내용 중 동물실험, 임상실험, 1080kcal 소모 등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으며, 업체 측에 해당 광고의 방송을 중단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광고는 6월11일까지 계속 방송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은 이 제품에 대한 신고가 폭주하자 허위과대 광고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케이블 TV 측은 앞서 나간 광고가 경찰에 고발돼 수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불법광고를 계속 내보내는 ‘과감함’을 보여줬다. K다이어트 식품에 대한 광고를 시작할 당시인 5월 식약청은 이 TV에서 지난 2월에 내보낸 다이어트 식품 광고를 식품위생법 위반(허위과대 광고)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해당 다이어트 식품(한방바디슬림다이어트)을 제조한 업체는 지속적인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38kg 감량에 성공한 개그맨 백재현씨가 마치 자신들의 다이어트 식품을 먹고 살을 뺀 것처럼 허위광고를 낸 혐의로 적발됐다. 식약청이 조사한 결과 이 업체는 식품에 넣은 재료와 겉포장에 표시된 재료가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불신의 살’찌우는 비만치료제

    개그맨 백재현씨가 모델로 나온 다이어트 식품

    20여일 동안 이들이 판매한 다이어트 식품은 4229세트에 8억4000만원어치. 당시 개그맨 백씨 측은 “그냥 다이어트 경험을 말했는데 이를 업체 측에서 편집해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백씨가 자신의 다이어트와 전혀 관계 없는 다이어트 식품에 이름을 빌려주고 사례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이와 관련해 백씨의 다이어트를 도와준 한의사가 백씨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자가 제시한 사례들을 보고 ‘아, 그 제품’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식품이 불법으로 처벌받거나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실정이다. 식약청의 처벌이 항상 ‘사후약방문(事後藥方文)’인 데다 처벌이 결정될 때쯤이면 이들 업자들은 이미 제품을 팔 만큼 팔고 달아난 뒤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광고가 방영되는 당시에 처벌 사실을 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신의 살’찌우는 비만치료제

    홈쇼핑채널에서 한동안 바르면 살이 빠진다고 선전했던 다이어트 로션.

    이를 증명하듯, 최근 이 케이블 TV에는 보름 만에 8kg, 먹는 즉시 하루에 2kg이 빠진다는 새로운 다이어트 식품 광고가 한창이다. 역시 유명 탤런트가 직접 출연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쇼 호스트들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식품을 마치 약처럼 임상실험을 통해 살이 어느 정도 빠졌다는 결과를 발표하는 자체가 위법이지만 식약청의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식약청 식품감시과의 한 관계자는 “허위과대 광고에 출연해 건강식품을 선전하는 연예인이나 교수 등에 대한 법 처벌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8월부터 건강기능식품법이 실질적으로 발효되면 과대 식품광고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약 처방은 의사의 고유 권한” 복지부도 뒷짐

    그렇다면 의사들이 처방하는 ‘비만치료제’는 모두 안전할까? 아쉽게도 이에 대해서는 의사들 사이에도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 비만클리닉 전문의들이 비만치료제로 정식 허가 난 약품이 아닌 전문 의약품들을 살빠지게 하는 ‘복합처방요법’으로 쓰고 있는 까닭. 복합처방요법에 들어가는 전문의약품은 주로 이뇨제, 항우울제, 진통제, 소염제로 심지어 천식치료제와 비염, 콧물치료제, 간질치료제가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이 살 빼는 약에 이런 처방을 쓰는 이유는 이들 약품들의 부작용에 메스꺼움이나 구토, 식욕부진과 같이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들어 있기 때문. 이처럼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문의약품을 비만치료제로 사용하는 클리닉이 늘어나자 대한비만학회는 지난해 4월 이들 약물을 비만치료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비만 약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선포하는 등 자체 자정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복합처방을 쓰는 전문의들의 반발을 사면서 비만학회가 둘로 나뉘는 분쟁으로 치달았을 뿐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도 약에 대한 처방권은 의사의 고유 권한이므로 의료사고가 나지 않는 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

    식약청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아 비만치료제를 판매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의사들의 이런 편법 처방 때문에 전체 비만치료제 매출이 감소할 지경”이라며 “심지어 국내 일부 제약사가 의사들이 내는 복합처방을 패키지 형태로 만들어 공급하는 것은 너무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바른말 했다가는 상대편 의사 집단에게 린치를 당할까 말도 못하고…. 환자들만 불쌍한 거죠.”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대한비만학회 소속 전문의의 고백은 우리 비만시장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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