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대륙에 다시 부는 ‘마오쩌둥’ 열풍

탄생 110주년 맞아 행사·다큐·책 홍수 … 中 정부, 개혁·개방 후유증 해소 노림수

  • 베이징=권소진 통신원 hanyufa@hanmail.net

    입력2003-12-31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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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에 다시 부는 ‘마오쩌둥’ 열풍

    마오쩌둥 기념관의 내부.

    12월11일 오후 베이징대학 100주년 기념관에서 ‘走近毛澤東’이라는 마오쩌둥(毛澤東) 다큐멘터리 시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마오의 딸인 리민(李敏·66)도 참석해 영화감독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최근 마오의 두 딸 가운데 첫째인 리민을 여러 중국 언론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12월26일 마오쩌둥 탄생 11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일련의 행사들과 관련이 있다.

    11월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에서 열린 마오쩌둥 회고 전시회는 청렴한 마오쩌둥의 모습을 부각시킨 행사였다. 여러 차례 기워서 누더기처럼 변한 그의 옷과 비서들이 기록한 알뜰한 가계부 등 서민적인 삶을 살았던 마오쩌둥의 모습이 그대로 전시됐다. 이 기념 전시회에서 리민은 “아버지는 생전에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늘 일깨워주셨다. 내가 비록 마오 주석의 딸이지만 이제 완전한 평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으로 이런 일련의 행사를 통해 중국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중국은 마오쩌둥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전국적으로 성대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기념 축제는 물론 관련 세미나와 강연, 오페라 공연 등 분야도 다양하다. 마오쩌둥 기념우표가 발행되며 TV와 영화에서 마오쩌둥 붐이 조성되고 있다. 새로운 다큐 영화 제작과 함께 연일 시사회가 열리고 TV를 켜면 마오쩌둥에 관한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다.

    건국 영웅의 검소·청렴성 부각

    대륙에 다시 부는 ‘마오쩌둥’ 열풍

    인부들이 베이징에 있는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를 청소하고 있다.

    책 출간 또한 활발하다. 몇 권의 마오 관련 책 중 마오쩌둥의 손자 마오신위(毛新宇)는 최근 ‘나의 할아버지 마오쩌둥(爺爺毛澤東)’이란 회고록을 출간, 그의 출판기념 좌담회가 군사과학원 주최로 열리기도 했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음식에 대한 마오의 건강관(毛澤東保健飮食生活)’이라는 책이다. 전문가들도 놀랄 만큼 음식과 건강에 대해 식견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 마오쩌둥의 평소 건강관과 식생활 등을 다룬 글로서, 이는 마오가 국민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려는 중국 정부의 또 다른 시도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재미있는 음반 하나도 출시될 예정이다. 중국의 유력 일간지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는 “20대 가수들이 ‘동방은 붉다(東方紅)’ 등 혁명정신을 담은 마오 시절의 가곡들을 새로운 버전으로 녹음한 앨범이 곧 제작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앨범 제목은 ‘마오쩌둥과 우리들’로 레코드에 수록된 곡들 중에는 랩송도 포함된다고 한다. 당국이 마오쩌둥에 대한 중국 신세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110여개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11월26일부터 특집 코너를 만들어 2004년 1월26일까지 마오 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새 중국’에서 마오쩌둥의 느닷없는 부활은 다소 의외의 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중국 정부는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면 마오쩌둥의 카리스마적 이미지를 자주 이용해왔다.

    이런 일련의 행사들에 대해 공산당 일각에서는 편리하게 마오쩌둥의 공적 일부만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반 인민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마오 주석은 정말로 인민을 사랑했고 청렴했다”며 그를 여전히 최고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대륙에 다시 부는 ‘마오쩌둥’ 열풍

    후진타오 당총서기가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를 들어보이고 있다.

    마오 시절 국민들은 가난했지만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마오쩌둥은 1966년부터 76년까지 중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의 장본인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지도자로서 여전히 신격화된 대접을 받고 있다.

    베이징 시내 한 택시기사에게 “마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물론 공(公)과 과(過)가 있지만 그 과로 인해 그의 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그는 여전히 건국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 전회에서 채택됐던 문건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을 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이 자본주의화 되어간다고 보고 있다. 또 자본주의화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후진타오가 마오 이미지 이용?

    개혁·개방 이후 고도 경제성장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도 많지만 반면에 실업자가 급증하고 도·농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있으며 고질적인 관료 부패문제도 심각하다. 또 개혁·개방의 여파로 정경유착이 심각해지고 권력층 자제와 신흥 자산가 등 ‘뒷줄 있고 돈 있는’ 자의 특권은 하늘로 치솟았다. 그 와중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많은 국민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 상실감은 몇 해 전 동북지방 실업자 시위로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가슴속에 사회주의 중국의 건국 영웅이자 청렴함의 상징인, 농민의 아들 마오쩌둥을 통해 개혁·개방의 후유증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 지도부인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중국 신진 지도부의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하겠다. 2002년 말 마오쩌둥의 허베이성(河北省) 혁명기지를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은 2003년 여름엔 마오쩌둥의 옛 근거지 장시성(江西省)을 여행하면서 ‘대중에 대한 봉사’와 ‘검소한 삶’을 강조하는 등 집권 이후 줄곧 마오식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현재 중국식 개방과 법치, 당과 정부의 일부 개혁, 낡은 법령 폐지, 행정개혁에서 일부 성공을 거둔 중국 새 지도부는 이제 좌익주의 또는 마오식의 보수주의를 일정 정도 도입하는 것이 사회·정치적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제2의 개혁·개방에 나선 이 시점에서 마오쩌둥에 대한 회고를 통해 마오의 ‘대중과 가까이(親民)’ 노선과 청렴성을 부활시켜 새 지도노선에 반영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특별한 캐릭터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한 후진타오가 ‘대중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로 거듭나기 위해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노력들로 개혁·개방의 부산물인 계층간, 도·농간 빈부격차와 실업문제 등 사회적 불만이 해소될 것인가? 이미 죽은 마오가 살아나서 다시 정치를 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것은 캠페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치성 짙은 행사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 시대의 영웅을 기리고 회고하는 일이 아니라 실생활이 얼마나 달라지느냐일 것이다. 사회 전반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현실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게 현 중국 정부가 안고 있는 큰 과제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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