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6

2004.01.01

盧, 4·15 총선 직접 지휘?

2월 전후 열린우리당 입당, 얼굴역 솔솔 … ‘책임총리제’ 공개 천명 승부수 준비 중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12-24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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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 4·15 총선 직접 지휘?

    12월19일 오전 경남도청 도민홀에서 퇴임식을 한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가 부인 이정숙씨와 함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 4월 총선에서 영남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을까. 노대통령은 11월부터 ‘노무현 부산 인맥’들을 차례로 청와대로 불러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영남’의 의미를 강조했다. 노대통령이 생각하는 영남은 동서화합의 상징이자 전국 정당의 발판이다. 또 30여년 동안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지역감정을 타파하는 절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런 의지는 측근들에게 여러 차례 전달됐다. 청와대 내 노무현 사단이 대거 부산으로 내려간 것도 노대통령의 이런 의중을 읽었기 때문이다.

    영남서 12~15석 확인 야심찬 계획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이 내년 총선에서 목표로 하는 영남의 의석수는 12∼15석.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12월18일 “경남에서만 9석을 넘본다”고 말했다. 경남의 16개 의석 가운데 절반을 넘는 수치다. 너무 낙관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김 전 장관은 “현지 사정과 데이터로 검증된 실현 가능한 수치”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남해·하동)을 비롯해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통영·고성), 공민배 전 창원시장(창원갑), 김용문 전 보건복지부 차관(밀양), 최철국 전 김해시장(김해) 등이 한나라당 현역의원들보다 나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차떼기 등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것도 자신감의 배경이다. “이제 동남풍이 불 여건이 확보됐다”는 게 김 전 장관의 분석.

    동남풍은 12월15일 지사직을 사퇴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로부터 출발한다. 김 전 지사의 ‘쿠데타’는 지역 정가는 물론 한나라당 심장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당 정윤재 부산 사상지구당위원장은 “김 전 지사의 움직임으로 짜여진 틀이 출렁거렸다”고 말한다. 이웃 동네인 대구도 그 파장이 이어졌다. 대구에서 출마를 노리는 배기찬 전 청와대 행정관은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내역이 폭로되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 정서가 광범위하게 영남을 감싸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대구 경북(TK)의 목표 의석수는 4∼5석.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당 이강철 상임중앙위원이 나섰다. 이위원이 노리는 1차 타깃은 이의근 경북지사. 그는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여당의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이지사 영입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이위원은 구미와 영천, 김천 등지를 돌아다니며 기초단체장 영입에도 힘을 쏟았다. 경남의 김 전 지사와 함께 동반 탈당 바람을 일으켜 한나라당 안방을 흔들어놓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동남풍은 생각보다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지사를 비롯한 TK지역 단체장들은 이위원의 간곡한 요청에도 움직임이 전혀 없다. 이로 인해 지역 총선 사령관인 이위원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12월19일 경남지사 퇴임식에서 김 전 지사가 흘린 눈물도 동남풍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초 퇴임식은 오후로 잡혔다. 그러나 같은 시간대에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도의회가 별도 행사를 추진, 도청직원을 ‘징발(?)’하려 했다. 김 전 지사측은 부랴부랴 오전으로 일정을 조정, 겨우 충돌을 모면했지만 행사장은 썰렁했다. 앉아 있는 자리보다 빈자리가 더 많았고 ‘도원결의’했던 몇몇 기초단체장들은 동행의지를 접었다. 김 전 지사측은 백방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통화에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김 전 지사의 한 측근은 “김 전 지사가 세상 인심이 어떻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설움에 북받치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1월 우리당 창당대회 및 설 연휴를 전후해 김 전 지사를 경남의 대표적 ‘철새’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김 전 지사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盧, 4·15 총선 직접 지휘?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유세에 참석한 부산 지지자들.

    동남풍의 또 다른 주역인 김두관 전 장관도 내우외환에 시달린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김 전 지사의 등장으로 경남의 얼굴이라는 위상에 금이 간 것. “우리당이 김 전 지사를 영입한 것은 김두관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언론의 분석 기사는 김 전 장관측을 더욱 화나게 만든다. 이강철 위원은 “김 전 장관이 당의장 선거에 출마할 김 전 지사를 도와야 한다”며 영남권 단일화를 요구하고 나서 김 전 장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김 전 장관측은 “이선배(이위원)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어 ‘이-김’ 갈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전 장관은 당의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지만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지역 민심을 넘어야 한다. 당의장 선거에 출마한 김정길 전 의원의 등장도 김 전 장관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견제다. 그는 최근 검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혹시 대선 때 돈을 받은 적이 있느냐”며 이권 개입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장관이 대선 전 민원을 명분으로 3000만원을 받았다”는 제보에 대한 확인 작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노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로 불려가는 시기, 김 전 장관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장관은 이에 대해 “당시 측근들이 돈을 모아 도지부 후원금으로 제출, 영수증 처리를 했음에도 특정세력이 이를 악의적 시나리오로 포장해 유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을 따라다니는 의혹은 식을 줄 모른다. 우리당 부산시지부는 신당추진위원회를 이끌던 조성래 위원장을 중심으로 창당대회를 열고 체제정비를 끝냈지만 이런 내우로 어수선하다. 결국 ‘김혁규 임팩트’는 예상보다 큰 효과가 없는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당 조경태 부산 사하을지구당위원장은 “김 전 지사의 탈당으로 30여년간 형성됐던 부산의 정치구도가 일순 흔들렸지만 후속타가 없어 다시 예전 구도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리당은 ‘김혁규’ 뒤를 이을 새로운 카드를 갖고 있을까. 몇몇 부산 386 인사들과 우리당 소장파 인사들은 우리당을 부양시킬 수 있는 카드가 있다고 말한다. 부산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영입을 꼽는다. 문수석이 총선 현장을 누빌 경우 당 인지도 제고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노대통령의 부산 측근으로 활동 중인 한 인사는 “문재인 영입은 권고나 요청이 아니라 징발해야 한다”는 강한 주문을 내놓는다. 그러나 문수석 영입으로 동남풍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여권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치에 대한 문수석의 소극적 자세도 문제지만 부산에서 문수석이 갖는 위상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부산 출신 386 인사 A씨는 ‘노짱(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을 최대 카드로 거론했다. 노대통령의 대표적인 부산 386 인맥 가운데 한 사람인 그는 “우리당은 내년 2월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말은 11월10일 노대통령의 부산 인맥인 최인호 노재철 정윤재 지구당위원장 등 7명과 11월14일 우리당 초선의원 7명이 청와대를 방문하고 나온 직후 흘러나온 말이다. A씨는 ‘좋은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일이란 노대통령의 입당이다. 노대통령의 입당은 평면적 자리 이동이 아니라 ‘선거를 책임지겠다’는 적극적 의사 표시가 동반될 것이다. 노대통령이 선거대책본부장 또는 선대위원장을 맡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盧, 4·15 총선 직접 지휘?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유세에 참석한 부산 지지자들.

    A씨는 기자가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느냐. 설사 법적으로 하자가 없어도 야당이 가만있겠느냐”고 물은 데 대해 “노대통령은 ‘내가 법률가이니 나에게 맡겨달라’고 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A씨는 “입당을 전후해 노대통령은 다수당에 총리를 주고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만 전담하는, 이른바 책임총리제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승부수도 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대통령이 12월 초 이런 계획을 밝힐 예정이었으나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우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적어 계획을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노대통령이 2월 전후 입당 계획을 세운 것은 우리당의 ‘1·11’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우리당은 이 전당대회를 통해 1차로 분위기를 띄운 뒤 노대통령이 가세하는 2월, ‘제2의 노풍(盧風)’을 점화시킨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는 것. 11월 청와대를 방문했던 우리당 한 당직자도 “비슷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12월19일 여의도 집회에서 노대통령이 한 말을 되새겨보면 그림이 보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노사모와 국민의 힘 등이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주최한 ‘리멤버 1219 행사’에서 “노사모 여러분의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며 “저도 이미 상처를 입었지만 열심히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만약 노대통령이 작정하고 총선 지휘에 나설 경우 총선 판도는 매우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부산과 경남의 경우 다시 한번 노풍이 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민주당과 ‘2파전’을 벌일 호남지역도 우리당의 선전이 기대된다. 수도권의 경우 노풍이 제대로 불 경우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2파전 전개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구는 현 시점에서 매우 부정적이다. 배기찬 전 청와대 행정관은 “입당은 필요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며 노대통령의 선거 진두지휘에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최선의 선거운동은 국정 지지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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