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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시장 ‘미샤’의 반란

에이블 C&C, ‘값 싼 명품’ 컨셉트로 돌풍 … 세련된 매장·소비자 욕구 맞춘 제품 ‘성공 비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화장품 시장 ‘미샤’의 반란

화장품 시장 ‘미샤’의 반란

미샤 명동매장 내부(왼쪽)와 입구.

회사원 김모씨(33·여·서울 양천구 목동)는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광적인 마니아다. 에스티로더 제품 하나하나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그의 화장대에 가득한 화장품들은 기초화장품, 기능성 화장품은 물론이고 립스틱, 핸드크림 등 소품까지 에스티로더의 제품으로 흡사 ‘에스티로더 컬렉션’을 보는 듯하다.

이런 김씨가 최근 다른 회사, 그것도 국산에다 가격도 ‘똥값’인 화장품 업체의 스킨, 로션 세트를 구입했다. 3300원짜리 ‘초저가 화장품’을 바르고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친구의 자랑 때문이다. 김씨는 헐값 화장품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그동안 에스티로더의 전도사 노릇을 해왔다. 침이 마를 정도의 칭찬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그대로 구입하게 한 것.

“친구가 화장품 7개를 1개 값도 안 되는 3만원에 구입했는데 1주일 만에 피부가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거예요. 에스티로더 제품을 바를 때는 뾰루지가 난다고 울상이었거든요. 블랙헤드(주로 콧망울 위에 생기는 거뭇거뭇한 작은 점들)가 없어질 정도로 얼굴이 깔끔해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솔직히 배가 아프더라고요.”

김씨는 전화를 끊고 곧장 매장으로 달려가 친구가 자랑을 늘어놓은 화장품 업체의 화장품 풀세트를 구입했다. 그런데 1주일 정도 사용하니 친구의 설명과는 다르게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에스티로더 제품을 쓸 때는 없었던 일이다. “그럼 그렇지, 싸구려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어?” 그는 친구 욕도 할 겸 메신저로 들어가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알렸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너랑 안 맞나 보다. 그 화장품 좋다는 사람이 적지 않던데, 물론 엉망이라는 애들도 많지만….”



“화장품 원가 낮아 저가 공세 가능”

‘제3차 화장품 혁명’의 서곡이 울리고 있다. 혁명군 사령부는 ‘미샤’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출시한 에이블C&C. 미샤는 국내외 메이저 브랜드가 지배하는 화장품 시장에 지각변동을 촉발하고 있다. “믿고 써도 되느냐”는 의심에서부터 최고라는 찬사, 싸구려라는 악평이 온·오프라인에서 파도를 탄다. 일간지에 “불황을 견디다 못한 화장품 업계가 3300원짜리 제품까지 등장시켰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달갑지 않은 홍보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불황’과 ‘똥값’이 미샤가 혁명의 주체가 된 이유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정답은 ‘아니올시다’다.

잠시 ‘화장품 시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화장품 업계는 두 차례 혁명기를 거쳤다. 첫번째 혁명은 LG생활건강이 화장품 업계에 뛰어들면서 촉발시킨 ‘방판(방문판매)-시판(시중판매) 전쟁’. 전쟁의 승자는 혁명군 쪽이었다. 으레 대기업이 그렇듯 LG생활건강의 무차별적 공세에 방판 시장은 급속도로 붕괴됐고 시판이 화장품 마케팅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두 번째 혁명은 1996년 도입된 오픈프라이스 제도(정가를 표시하지 않는 제도)가 일으켰다. 당시 일부 화장품 업체들은 정가의 10~20% 가격으로 화장품을 도매상에 돌렸다. 엉망진창이 된 화장품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등장한 게 바로 오픈프라이스 제도. 2차혁명의 결과는 중소업체들의 완패였다. 덤핑으로 경쟁력을 갖췄던 내로라하는 중견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화장품 시장 ‘미샤’의 반란

미샤의 화장품들.

2003년 겨울 전주곡을 울린, 세 번째 혁명의 주인공이 바로 미샤다. ‘똥값’ ‘불황’이 성공 배경이 아니라면 단기필마로 ‘혁명 주체’가 된 미샤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미샤의 성공키워드를 따라가보자. 미샤는 가격은 싸되, 싸구려를 지양하고 명품을 지향한다. 미샤는 스스로를 ‘명품’이라고 규정한다. 언뜻 들으면 소도 웃을 얘기. 화장품의 원가가 상상을 초월하게 낮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상자기사 참조). 미샤는 국내 화장품의 10~20% 가격으로 컬렉션을 꾸몄다. 3300원짜리가 대부분이고 기능성 화장품은 8900원.

대신 제품 포장과 매장 컨셉트는 ‘보디숍’을 모방해 ‘세련’을 지향했다. 유럽 중산층들이 즐겨 입는 의류 중에 ‘H&M’과 ‘자라’라는 브랜드가 있다. H&M, 자라는 저가 의류. 두 브랜드가 잘 팔리는 이유는 아르마니 등 명품 바지를 입고 바지 가격의 10%도 되지 않는 H&M 윗도리를 걸쳐야 비로소 중산층 특유의 허영심과 실용주의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샤의 포지셔닝이 바로 그렇다. 미샤는 H&M과 브랜드 이미지가 비슷한 일본 의류업체 ‘유니크로’를 벤치마킹했다. 수백만원짜리 샤넬 핸드백과 동대문시장표 싸구려 핸드백 모두에서 굴러다닐 수 있는 화장품을 만드는 게 미샤의 꿈이다.

미샤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설득당한다는 것. 미샤는 회원수 150만명을 자랑하는 여성포털 뷰티넷(www.beautynet.co.kr)을 뒷배로 두고 있다. 애당초 미샤는 뷰티넷을 통해 온라인으로만 판매되는 브랜드였다. 회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제안하고 미샤가 시제품을 만들어 보내주면 회원들이 사용해본 뒤 다시 품평을 해 생산 여부를 결정하고 적정한 가격까지 매긴다. 3300원이란 가격도 이런 과정을 거쳐 정해졌다.

사정이 이러니 ‘창조적 파괴’가 저절로 이뤄진다. 뷰티넷에 ‘그 제품은 아니다’는 의견이 자주 올라오면 과감하게 생산을 중단한다. 반대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다 보니 매달 신제품이 만들어진다.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단독매장(37개 미샤 매장)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고 450여개에 이르는 저가 컬렉션을 꾸리게 된 것도 이 같은 소비자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다.

그렇다면 미샤가 주도하는 화장품 업계의 세 번째 혁명은 메이저 업체들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화장품의 질을 차치하면 인터넷포털과 단독매장을 통한 미샤의 공세는 날카롭다. 돈으로 무장한 LG생활건강의 시판 공세 때보다 더 거세다는 게 화장품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의 화장품 제조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조그만 벤처기업도 세계 수준에 버금가는 화장품을 만들어낸다. 화장품 업체별로 원가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화장품 판매는 기술력보다는 얼마나 마케팅을 잘했느냐가 좌우한다. 최근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지함피부과가 내놓은 화장품도 중소업체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가격은 일반 화장품보다 최고 10배 이상 비싸지만 제조 원가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결국 ‘이지함화장품’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덧입음으로써 화장품도 판매하고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도 성공한 것이다.

한국 화장품사(史)가 미샤 이전과 이후로 나뉘려면, 즉 혁명이 성공하려면 미샤의 마케팅 포지션이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맨손으로 시작한 미샤는 12월에만 15개의 매장을 더 연다. 다른 회사들도 하나 둘씩 ‘못 이기는 척’ 미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혁명군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메이크업 전문업체 에뛰드가 7000원짜리 루주를 내놓았고 한불화장품은 내년 4, 5월께 중저가 브랜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한불화장품 외에도 2~3개 브랜드가 내년 초부터 저가 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업계에서 “화장품 시장을 공멸시킬 미친×”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는 미샤의 서영필 사장은 “어차피 ‘잘나가는’ 화장품은 화장품을 주고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데 성공한 것 아닌가. 화장품의 제조원가가 고스란히 공개되면 소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메이저 업체에 근무했던 화장품 엔지니어로서 어떤 욕을 먹더라도 가격과 원가, 기능의 상관관계를 있는 그대로 까발리고 싶다”고 말했다.

미장원 아줌마가 파는 화장품, 유명 피부과의 화장품, 미샤의 화장품 모두 중소업체들에 의해 OEM 방식으로 만들어지기는 매한가지다. 이들이 사용하는 원료의 가격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어떻게 광고하느냐의 차이와 자신의 피부에 맞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게 있을 뿐. 메이저 업체들도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이런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글로벌화한 외국계 브랜드의 원가는 더 낮다.

다만 메이저 화장품 회사의 R&D(연구개발) 능력은 중소업체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화장품회사 연구원에 대해 1000원짜리 재료로 수만원, 수십만원짜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혹평을 하기도 하지만, 화장품 연구실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살인적인 기술개발 경쟁이 벌어지는 전장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화장품을 바르겠는가. 당신의 선택이 3차 화장품 혁명의 성패를 가늠할 것이다.





주간동아 414호 (p62~64)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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