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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 재외동포운동 ‘동포들만 수난’

“국적 회복” “동포법 개정” 등 목소리 제각각 … 조선족 국내에서 쫓겨나고 중국에선 배신자 몰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엇박자 재외동포운동 ‘동포들만 수난’

엇박자 재외동포운동 ‘동포들만 수난’

중국동포들 가운데 일부는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고(왼쪽) 일부는 재외동포법 개정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에게 국적을 선택할 권리를 달라.”

11월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구로구 구로동 서울조선족교회를 방문하면서 2400여명의 중국동포들이 16일간의 단식농성을 철회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는 상황이다. 이들의 요구는 여전히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달라는 것.

이날 현재 중국동포 5553명이 법무부에 국적회복을 신청했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낸 상태다. 조선족교회측은 농성을 철회한 뒤 헌법소원 신청자 명단에 오른 5553명이 정부당국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당하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발급한 주민등록증 크기의 헌법소원 접수증을 배부했다.

헌법소원을 낸 이들은 자신들이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따라 한국 국민이 된 사람들”이라며 한국 국민 자격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는 만큼 자신들의 국적회복 요구는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7일 농성장에서 만난 김모씨(45)는 “같은 재외동포인데도 우리를 버린 자식 취급하는 것이 서럽다”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기한 투쟁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위태로운 싸움을 벌여온 이들의 앞날은 여전히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노대통령은 29일 “마음으로는 중국동포 문제를 빨리 풀고 싶지만 법질서가 있고 국가간 주권문제가 있어서 대통령으로서도 어려움이 많다”며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적 회복 움직임에 중국측 반발 메시지

조선족교회측은 “소송중이거나 파경으로 인해 추방 위기에 내몰린 이들, 취업관리 대상자지만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불법체류자가 된 이들 등에 대한 특별구제 방안에 대해 법무부측의 긍정적인 답변을 전해들었다”면서도 “애초 농성을 시작한 이유가 중국동포에 대한 법적 지위문제 개선이기 때문에 앞으로 해결방안 마련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중국동포들이 중국정부 수립일인 1949년 10월1일을 기준으로 자동적으로 중국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 이전에 출생한 중국동포는 한국국적 소유자였기 때문에 국적회복을, 이후 출생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중국국적을 갖게 됐기 때문에 귀화를 신청해야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불법체류 중국동포들이 30∼40대이므로 귀화신청을 통해서만 한국국적 취득이 가능한 셈.

하지만 우리 정부의 논리는 궁색하다는 견해도 많다. 정지석 변호사는 “우리나라 국적법은 자진해서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 한해 국적을 상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1992년 한중수교 때 중국동포들이 스스로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경과조치를 해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의견은 현실논리와 상충될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측이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에 중국동포의 국적회복 움직임과 관련해 “조선족은 엄연히 중국인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며, 이들의 한국국적 취득 등을 돕기 위해 한국정부가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해와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게 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크다는 점이다. 재외동포연대추진위원회(대표 임광빈 목사·이하 재외동포연대)측은 중국국적 포기 및 한국국적 회복운동으로 인해 중국에서 조선족들이 배신자 취급을 당하는 등 조선족 사회에 풍파가 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족 출신 기업인인 리동춘씨(현 녹색기술대학 설립이사장)는 10월 말 서경석 목사에게 편지를 보내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리씨는 이 편지에서 “한국국적 회복운동이 정치문제로 비화해 중국에 사는 80% 이상의 주류 조선족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며 “(이 운동은) 100년 이상 현지화돼 중국 내 우수한 소수민족으로 재등장할 준비를 마친 조선족 전체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국내에서 국적회복운동이 시작된 이후 중국에서는 국내에서 불법체류자로 머물다 중국으로 귀국한 이들에 대해 10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사라졌던, 한족들 사이에서 조선족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인 ‘고려방망이’란 말이 다시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고 한다.

우려의 목소리는 국내에 머물고 있는 중국동포들 사이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11월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100주년기념회관과 기독교연합회관에서도 340여명의 불법체류 중국동포들이 농성중이었지만 이들의 요구는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가 아니라 ‘재외동포법 개정과 불법체류자 사면’이었다. 임광빈 재외동포연대 대표는 “11월16일 재외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는데 그것이 신문에 국적회복운동으로 소개되면서 사진이 실린 사람들의 중국 거주 가족들이 곤란을 겪은 것으로 안다”며 “국적회복 요구가 한국에 머물고 있는 조선족 전체의 의견이 아닌데도 마치 전체 의견인 것처럼 알려져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재외동포법 개정안 국회 파행으로 표류

지난해 옌볜자치주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조선족이 급속도로 한족화되는 것을 보고 국적회복운동을 펴기 시작했다는 서경석 목사는 “재외동포법에 의거해 중국동포들을 돕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국적회복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라면 정공법을 택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같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옳다.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재외동포법으로 풀든, 국적법으로 풀든 정부의 선택에 맡기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외동포연대측은 국적회복운동이 사실상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의 대오를 흩어지게 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배덕호 사무국장은 “중국동포의 한국국적 회복은 정부가 외교적 협상을 통해 내놓을 수 있는 카드인데 조선족교회측이 여론을 등에 엎고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며 “법률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원회에 한 달 동안이나 계류중인 상황에서 힘을 합쳐 법개정운동에 매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임대표는 “국내 불법체류 조선족 동포의 문제는 대통령의 전면적인 사면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재외동포법 개정을 통해 재외동포의 범위가 확대되고, 자유왕래가 가능해지면 불법체류자도 없어지므로 이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외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외로 나간 사람들로 규정한 현행 재외동포법은 2년 전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올 12월31일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재외동포법 자체에는 손을 대지 않고 11월20일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이 개정안에서는 호적이 있는 사람과 그 직계비속 2대까지를 재외동포로 인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호적제도가 1922년부터 일제에 의해 시행됐으므로 재외동포의 범위가 크게 확대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서 중국 등 불법체류가 많이 발생하는 국가 출신 동포는 단순노무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규정을 신설해 결과적으로 크게 나아진 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 국회 법사위원회에는 조웅규 한나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55명이 발의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계류중이다. 또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는 재외동포기본법 및 재외동포위원회법 제정안과 재외동포재단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이들 법안은 현행법 규정에 더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자로 외국국적을 취득했거나, (외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채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자 및 그 직계비속까지를 ‘재외동포’에 포함시켰다. 최종시한이 한 달밖에 남아 있지 않고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외동포법 개정문제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413호 (p64~65)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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