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3

2003.12.11

탁상행정 사생아 ‘한약사의 절규’

처방 범위 좁고 조제도 한의사 독점 ‘면허증 무용지물’ … 복지부 한방의약분업 약속 ‘나 몰라라’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12-04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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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상행정 사생아 ‘한약사의 절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한약사 김정탁씨. 그는 “보건복지부의 탁상행정이 한약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약사의 양약 판매는 합법, 한약사의 한약 판매는 불법, 무원칙한 복지부….’

    11월28일 한약사 김정탁씨(36)는 정부과천 청사 앞에서 하루 종일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부터 기약 없는 1인 시위를 시작한 김씨의 요구는 “한약사에게 한약 판매권을 달라”는 것.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한약사’는 약사법에 그 지위가 보장된 전문 의료인으로 한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4년제 한약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면허증을 받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 2월 한약사(한약학과 출신) 28명이 배출된 이후 매년 80여명씩 한약사가 배출되고 있다. 굳이 이런 법적 지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약사에게 한약을 조제하고 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한약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 “한약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달라”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

    한약사들 업종 바꾸거나 실업자 전락

    김씨가 이처럼 ‘엉뚱한 시위’에 나선 까닭은 약사법상 규정된 한약사의 지위가 무늬만 ‘한약을 조제하고 파는 자’이기 때문이다. 약사법은 한약사를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한약을 조제 또는 판매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즉 한약사는 한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한약을 판매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2000년 7월1일 의약분업이 전면 실시된 양방과 달리 한방은 아직 의약분업이 도입되지 않았다. 한의사가 처방, 조제, 판매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약사에게 처방전을 발행할 한의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결국 국가고시를 통해 사회적 지위의 수직상승을 꿈꾸던 한약사들은 개업을 포기하고 업종을 바꾸거나 실업자로 전락했다.

    한약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의료행위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정한 100가지 처방(이하 100방) 안에서 한약을 조제 또는 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100방은 십전대보탕과 같이 일반인들도 약재를 사서 섞어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초적 처방일 뿐이다. 한약사에 대한 100방 조제 제한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정책인가는 한약과 관련한 정규 교육과정을 전혀 밟지 않은 한약업사(옛 한약방 운영자)들에게 전통의서 11권에 나오는 모든 약재(2만~6만여개)를 취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배출된 한약학과 출신 한약사는 260여명 정도지만 현재 한약국을 개업한 한약사는 30명도 채 되지 않는 실정. 개업한 한약국들도 속속 망해가고 있으며 전문의료인인 한약사가 서울 경동시장의 한약업사(판매상)에게 고용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개인적인 희생은 그렇다 치고도 국가적으로도 전문인력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대한한약사회 박석재 상임이사(한약사)는 “개업 한약사가 거의 없어 비개업 한약사는 현재 무엇을 하는지 신상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처방 제한 때문에 개업 한약국이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복지부는 무슨 까닭으로 자신들이 공인해준 한약사에게 처방 제한을 가한 것일까. 또 왜 한방의약분업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약학과를 신설하고 한약사 제도를 만들어 이 같은 분란을 자초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1993년 한의사와 약사 간에 벌어진 한약분쟁 과정에서 이루어진 ‘야합’에 숨어 있다. 한약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던 한의사와 약사들은 다음해인 94년 ‘한방의약분업을 3년 안에 실시한다’는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중재안에 합의했고, 정부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한약사 제도를 신설키로 했다. 처방전을 발행할 한의사는 있는데 이를 받아 한약을 조제할 한약사가 없었기 때문. 내심으론 서로 자신들만 한약에 대한 배타적 조제권을 인정받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자 양측 모두가 조제권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시쳇말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 이 합의안을 토대로 정부는 96년 경희대와 원광대에, 98년에는 우석대에 각각 40명 정원의 한약학과를 만들었고 이 한약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2000년부터 한약사 국가고시를 통해서 한약사 면허를 획득했다.

    하지만 ‘3년 후 한방의약분업을 실시한다’는 합의안은 약사법 개정에서 슬쩍 빠져버렸고 그 후 한방의약분업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약사법에 한약사의 조제범위를 100방에 한정한다는 조항만이 신설됐다. 박석재 이사는 “이는 한의사와 약사 단체의 로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못박았다. 즉 “의약분업으로 한약 조제권을 빼앗기게 된 한의사와 약사들이 내부적으로 의약분업 합의를 파기하는 한편 신설된 한약사 제도를 폐지할 수 없는 만큼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기로 밀실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탁상행정 사생아 ‘한약사의 절규’

    전북 익산시청 보건소의 한약국 단속에 항의해 집회를 벌이고 있는 원광대 한약학과 학생들.

    한약사에게 한약 조제권을 빼앗긴(?) 약사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복지부는 기존 약사를 포함한 약학대학 94학번까지는 한약조제 자격을 신설해 한약사와 똑같은 지위를, 95·96학번에게는 한약사 시험을 볼 자격을 부여했다. 철저하게 약사들의 권익(?)을 보호한 셈이다.

    이익단체 사이에 낀 복지부 무원칙 일관

    세월이 지나도 한방의약분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100방 제한이 풀리지 않자 당장 다급해진 것은 한약학과 학생들이었다. 한약사는 주로 약재로 병을 다스리는 한의학의 특성상 한방의약분업만 되면 한의사나 별반 지위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초창기 한약학과에는 수능성적 5% 이내 학생들이 모여들 만큼 인기가 높았다. 때문에 생업을 그만두고 입학한 ‘아저씨 대학생’들이 많아 학과 평균연령이 30세를 웃돌기도 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한약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은 2000년 1회 졸업생이자 1기 한약사들이 사회로 진출했다가 개업조차 하지 못한 채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항의집회, 수업거부, 시험거부로 이어지던 대정부 투쟁은 2001년 11월 폐과 신청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나타났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 학부모까지 가세한 폐과 신청은 무늬뿐인 한약학과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폭탄 제안’이었다. 전원 유급 사태에까지 직면했던 한약학과 파문은 ‘한약사의 조제범위를 2만 가지로 확대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자 잠잠해졌다.

    그로부터 2년, 복지부는 조제범위를 확대하기는커녕 당시 그런 말을 언론에 흘렸던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 복지부 한방정책관실의 담당 사무관은 “우리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으며 그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2년 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시한폭탄’에 불을 당긴 곳은 전북 익산시청 보건소. 지난 2월 익산시청 단속반은 관할 원광대 정문 앞에 위치한 모 한약국이 한의사의 처방 없이 한약을 판매했다며 해당 한약국에 과징금 90만원을 부과했다. 이 한약국은 당시 원광대 한의대 재학생들이 주문한 한약재를 팔았으나 보건소측은 해당 한약재가 100방 안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며 행정처분을 내린 것이다. 하필 이 한약국은 원광대 한약학과 대학원이 운영하는 한약국이었고, 이번 단속은 2000년 2월 한약사가 처음 배출된 후 첫 번째 단속이었다.

    “한방의약분업을 실시하지 않으면서 한의사의 처방을 어떻게 받으라는 것이며, 이 경우에는 한약사가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이용해 조제한 것이 아니라 요구한 대로 단순 판매를 한 것인데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이는 복지부의 사주를 받은 익산시청이 한약사를 말살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원광대 한약학과 학생회장 이주영)

    해당 한약국의 대표 한약사와 원광대 학생들은 복지부 항의방문과 집회를 계속하다 아무런 성과가 없자 11월6일 전주지법 행정부에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한약사 김정탁씨가 1인 시위를 시작한 것도 이 소송의 파괴력이 원광대 문제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번 소송에 대한 판결은 약사법상의 말도 안 되는 한약사 제도를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약사와 한약학과 학생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분업을 하긴 해야 하는데 ‘주변 상황’ 때문에 추진하기는 어렵고. 저희도 죽을 맛입니다. 제발 좀 조용히 있어 주십시오.”

    복지부 담당 직원이 말하는 ‘주변 상황’은 과연 무엇일까. 혹 이해단체의 압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복지부의 줏대 없는 탁상행정이 지속되는 한 올해도 많은 학생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약학과에 지원했다 낭패를 보는 일이 재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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