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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盧대통령, ‘코드’를 당장 버리시오”

이만섭 전 국회의장 … “진정한 개혁은 신-구 조화돼야 가능, 지금 쓴소리 삼킬 때”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盧대통령, ‘코드’를 당장 버리시오”

“盧대통령, ‘코드’를 당장 버리시오”
11월25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용일씨(72)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사건과 관련해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정부 내 혼선을 시인했다. 듣고 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전씨와 동년배이자 사관생도 출신(공군사관학교 3학년 중퇴).

“이게 정부냐. 국방부, 국가정보원, 외교통상부가 서로 책임을 미뤘다. 노무현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조장관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한번 터진 이 전 의장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장관, 북한은 국군포로 생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이런 집단에게 쌀과 비료를 막 퍼주어도 되느냐?”

이 전 의장은 매사에 ‘깐깐한’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그 깐깐함 속에는 합리와 원칙이 배어 있다. 그는 이 깐깐함으로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면서 꼬인 상황을 곧잘 풀어 내곤 했다. 때문에 이날 목소리를 높인 그에게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11월28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았을 때 이 전 의장은 그 배경을 국가가 지켜야 할 원칙으로 설명했다.



경륜과 경험 있는 원로 도움받기를

“그 노병은 국가를 지키다 적군에게 포로로 잡힌 사람이다. 그를 찾기 위해 외교적 협상을 벌여도 시원치 않은데, 스스로 탈출한 사람을 우리 정부가 외면했다. 정말 심각한 것은 관계기관 실무자들의 안이한 근무태도가 노병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속였다. 만약 그 노병이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한다면 이후 누가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목숨을 버리겠는가. 미국은 한국전쟁 때 사망한 전사자의 유골을 찾기 위해 수십만 달러를 아낌 없이 내놓는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목숨을 버리면, 국가는 그 가족에게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국가다.”

국회의장 시절(2000년 6월~2002년 5월) 여당인 민주당의 날치기 통과 요구가 날아들었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전방위 로비가 이 전 의장을 향했다. 견디다 못한 이 전 의장은 “내가 의장으로 있는 한 날치기는 없다”며 정면으로 맞섰다. 당 지도부는 그런 그에게 ‘고집불통’이란 별명을 선사했지만 일반 국민과 네티즌들은 ‘만섭이 오빠’를 연호하며 팬사이트를 만들어 화답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잠시 이 전 의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50대 대통령과 이른바 ‘386세력’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들고 정치실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전 의장은 지난 9개월간 노대통령과 참여정부, 그리고 참여정부 핵심인사들의 정국운영과 정책집행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 핵심은 “원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 참여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모든 혼란은 대부분 아마추어적 발상으로 인한 정책운영이 빚은 비극이므로 중진과 원로들의 경륜과 경험을 국정에 반영하라는 조심스러운 충고였다. 이 전 의장은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1월27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 전 의장 등이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를 놓고 제출한 헌법소원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제안일 뿐 헌소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5대 4로 이를 각하했다. 이 전 의장은 이런 헌재 결정이 매우 못마땅한 듯했다. 그리고 매서운 비판이 이어졌다.

“盧대통령, ‘코드’를 당장 버리시오”
“대통령이 위헌인 재신임 국민투표를 입에 담은 것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초유의 일이다. 헌재가 각하 결정만을 내린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외면한 무책임한 일이다. 만일 노대통령이 투표일을 정식으로 공고해 재신임 투표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위헌이냐, 합헌이냐?”

헌재가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지 않고 편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는 게 이 전 의장의 생각이다. 그는 4명이 위헌 결정을, 5명이 각하 결정을 내린 이번 헌재의 판단이 말 그대로 ‘위헌’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다른 현안인 특검문제에 대한 그의 태도 또한 명쾌하다.

“대통령의 측근비리에 대해 특검을 하자는 것 아닌가. 노대통령은 마땅히 특검을 받았어야 했다. 더구나 국회 재적 3분의 2가 넘는 의원들이 찬성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다. 국회 표결에 앞서 노대통령은 대선자금 문제는 일반 검찰의, 측근비리 문제는 특검의 조사를 받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노대통령은 검찰 조사 후 미진하면 정부가 특검안을 스스로 내겠다고 밝혔는데….

“모순된 이야기다. 그때 가서 받을 것이면 지금 받으면 되지, 무슨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하나.”

-특검을 거부한 노대통령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노대통령이 잘못하는 것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오기와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한 것도 오기와 감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이제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해야 한다. 국회를 대결과 투쟁의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겸손하게 국회에 와서 협력할 일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얘기해야 하는데 국회에 지지 않겠다고 대드니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청와대는 야당이 떼를 쓰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도 잘한 것이 없다. 한나라당은 군소정당이 아니라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제1당이다. 원내 1당의 원내전략은 당당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국민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큰 정치를 해야 한다. 야당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울분을 터뜨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예산국회를 보이콧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등원거부는 성급한 결정이자 전략 미스다.”

-최병렬 대표의 단식 등 투쟁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말이 많은 노대통령과 맞서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국민을 보고 폭 넓은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인은 때로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모든 결정에 신중해야 하지만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파병문제가 그렇다. 노대통령은 빨리 결정을 내려 불필요한 국론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

-전투병 파병에 찬성하는가.

“한미관계 북핵문제 남북문제 등 모든 문제를 감안해 파병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러나 현지사정을 잘 살핀 후에 결정해야 한다. 최근 이라크 내 테러는 단순한 반미 수준을 넘어 반외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전투병보다 비전투병을 보내는 것이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전 의장은 부안문제, 과격한 노동 및 농민 시위 등 최근 시위가 확산되는 데에 대해 ‘정치권의 역할 부재’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책임은 노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9선 의원인 이 전 의장은 노대통령에게 주는 조언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코드정치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지나치게 코드를 강조하니 코드가 다른 사람들은 참여정부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시대정신에 부합한 노-장-청년의 조화 속에서 나와야 한다. 전문적인 식견과 경륜을 갖춘 사람이 국정 운영에 나서야 한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가려서 써야 한다. 태풍 매미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대통령이 오페라를 보러 갔고, 측근들 비리가 터졌는데 노대통령은 또 다른 측근과 골프를 쳤다. 그런데 왜 ‘지금 그런 곳에 가면 안 된다’고 직언하는 참모가 없었나. 대통령의 말은 천금 같은 무게가 있어야 한다. 말을 줄이는 것이 천금의 무게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주간동아 413호 (p34~35)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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