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우리문화 우리풍수 | ‘혼불’ 작가 최명희의 묘

불꽃 같은 삶 ‘초롱불’ 안식처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불꽃 같은 삶 ‘초롱불’ 안식처

불꽃 같은 삶 ‘초롱불’ 안식처

작가 최명희의 묘소

몇 년 전 작고한 최명희 선생(1947~98)의 무덤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전주의 어느 나지막한 야산에 있다. 무덤 앞에 서면 최선생의 모교인 전북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바로 그 옆에는 그의 대작인 대하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덕진연못이 있다.

최선생의 묘소가 이곳에 자리한 데에는 풍수와 관련된 사연이 있다. 몇 년 전 최선생의 동생 대범씨(46)가 필자를 찾아왔다.

“누님이 위독하여 장지를 마련하고 있는데, 전주시에서 고맙게도 묘지로 쓸 땅을 내주겠다고 합니다. 이미 전주시가 후보지를 제시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왔습니다.”

마침 당시 필자는 ‘혼불’에 푹 빠져 있던 참이었다. 특히 작가가 풍수에 대해 묘사한 대목은 그 어떤 풍수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의 인생에도 역시 혈이 있을 것인즉, 그 혈을 찾고 다루는 일이 정신에 그리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제 인생의 맥 속에서 참다운 혈을 못 찾은 사람은 헛되이 한평생 헤맬 것이요, 엉뚱한 곳에 집착한 사람은 헛살았다 할 것이다… 만일에 정신이나 인생에 그 혈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설혹 안다 해도 못 찾고, 또 찾았대도 그 자리를 그냥 방치하여 비워둔 채 쓸모없이 버려둔다면, 이는 제 정신이나 제 인생을 눈먼 문둥이로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혼불 3권)



풍수의 최종목적은 혈을 찾는 것이다. 혈이란 무덤의 경우 시신이 안장되는 곳이며, 도읍지의 경우 왕이 머무는 궁궐이 들어서는 자리를 말한다.

작가 최명희는 땅의 혈을 찾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고향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행위를 혈을 찾는 것에 비유했다. 이제껏 이보다 더 깊이 풍수를 이해하는 이는 없었다. 풍수에서 땅을 보는 안목이 일정한 경지에 오른 것을 ‘개안(開眼)했다’고 한다. 개안하면 땅으로 인해 인간에게 미칠 길흉화복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작가 최명희는 일찍이 개안한 것이다.

불꽃 같은 삶 ‘초롱불’ 안식처

최명희의 묘소 입구, 생가터의 비석(위부터).

필자는 평소 작가 최명희가 어떻게 그렇게 풍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최선생의 동생이 찾아온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분과 전주시에서 추천한 장지와 그 외 여러 곳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른바 묘지를 소점(터를 잡는 일)하는 일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소점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우선 사람과 땅이 부합하는 곳이어야 한다. 땅의 성격뿐만 아니라 고인의 인생관이나 고인이 평소 선호한 지형지세를 알아야 한다. 이를 알기 위해서 최선생의 동생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둘이 함께 땅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둘이서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고 술도 많이 마시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가의 취향이며 가정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최선생 형제는 2남4녀다. 여자 형제들은 문학에 재능을 보여 세 자매가 모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막내 여동생도 국문학과에 입학하려 했으나 세 언니들이 작가가 배고픈 직업이라며 극력 반대하여 전공하지 못했다. 최선생이 풍수에 조예가 깊어지게 된 것은 외조부 허완(許晥)을 통해서였다. 선생의 외조부는 예학뿐만 아니라 주역과 풍수에도 능하여 작가가 ‘혼불’을 집필할 때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최선생 동생과의 대화를 통해서 최선생이 좋아할 만한 땅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찾아 선생의 묘소로 정하게 되었다. 그가 다녔던 전북대가 내려다보이고 가까이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덕진연못이 있는 곳, ‘혼불’의 풍수 관련 대목에서 묘사하는 것과 의미가 상통할 수 있는 곳을 찾은 것이다.

현재 최선생의 묘소는 그렇게 해서 정해졌다. 작가가 결혼하지 않아 자녀가 없기 때문에 자손의 발복을 고려하지 않는 대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찾아와 작가를 기릴 수 있도록 하는 자리다. 선문대 풍수학 강사인 최낙기씨는 “최선생의 무덤 터는 멀리서 보면 마치 초롱불 같다”고 했다. 무덤은 거기에 안장된 사람을 그대로 반영한다. ‘혼불’이 터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주간동아 2003.12.04 412호 (p102~102)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40

제 1240호

2020.05.22

“정의연이 할머니들 대변한다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