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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음지의 정치자금, 양지로 꺼내라

  • 강원택 / 숭실대 교수·정치학

음지의 정치자금, 양지로 꺼내라

음지의 정치자금, 양지로 꺼내라
또다시 정치자금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선거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그때마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많은 정치인들이 돈을 써야 표를 얻을 수 있고 돈을 많이 쓸수록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원인은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정치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연루돼 있어서 결코 전모가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 탓이다. 공멸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 내역을 전부 밝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동안 있었던 정치자금 관련 수사에서도 ‘몸통’이 밝혀진 적은 없었고 ‘정치자금 불패’ 신화는 계속 유지되어왔다.

기업과 정당 불투명한 회계 바로잡아야

그런데 이 같은 공모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공급하는 재계의 도움도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정치자금 문제가 터져 나오게 된 것도 SK 비자금 수사에서 비롯된 것이고 재계 주요 기업들의 이름도 이미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불법인 줄 알면서 거액의 자금을 지원한 까닭은 재계 역시 정치자금 문제는 쉽사리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재계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사실 그러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당비나 후원금을 납부하고 당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이나 후보들이 소액 후원금에 의존하여 선거비용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소액 후원금에 의존해 거액의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손쉽게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으로부터의 거액 지원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법정 후원금의 상한액이 실제로 선거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할 때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어서 기업이 법으로 허용한 한도 내의 후원금만으로 정당이나 후보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군이 아니면 적군이 되어버리는 선거 와중에 유력 정당의 ‘실탄’ 지원 요구를 기업이 거부하기는 어렵다. 민주화되었지만 과거의 관행으로 볼 때 소위 ‘괘씸죄’에 걸릴 우려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자금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의 적군으로 인식되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재계 역시 공모의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렵다. 설사 정치권의 압력에 의해 기업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일은 돈을 제공한 기업과 받은 정당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라도 회계가 투명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회계가 투명했다면 정치권에 거액을 제공하기 위한 비자금을 조성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정당 혹은 후보자의 선거비용 관련 회계가 투명했다면 법정 한도 이상의 정치자금을 요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지금 온 나라를 들쑤셔대고 있는 정치자금 문제의 해결책은 돈과 관련된 다른 사안의 경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서 그 해법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누구로부터 얼마를 받았고 그 돈을 어디에 지출했느냐를 밝히면 된다.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이전부터 추진돼왔고 이번 사건도 그 과정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정당과 정치인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그동안 마련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정치자금 사건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앞으로의 제도개혁이 과연 정치권의 격렬한 반대를 뚫고 정치자금에 대한 제도적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 햇볕이 드는 곳에서는 곰팡이가 피지 못한다.



주간동아 409호 (p100~100)

강원택 /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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