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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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말고’ 폭로 보이지 않는 손 누구냐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10-29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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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폭로공세가 거셌다. 첫날인 10월17일 김무성 의원은 “국내에서 친북 좌익세력이 활동하고 있고 바로 이 국회에도 들어온 것 같다”며 “유시민 의원이 지난해 대선 직전 일반인 신분일 때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수차례 방문, 이회창 후보와 관련된 자료를 받아왔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이원창 의원은 SK 비자금 사건과 관련, “지금 재계 주변에선 SK 외에도 대기업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씩 당선축하금을 전달했다는 말이 무성하다”며 “이 돈의 총 규모가 500억원에서 600억원에 이르므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라고 주장했다.

    김의원의 주장은 몇 시간 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이의원도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해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대정부 질문이 수준 이하의 정치공세로 점철된 배경에는 당 지도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준비한 한나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된 의원들의 질문의 경우 해당 의원실 보좌진의 사전검증이 배제된 가운데 당 지도부의 일방적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대정부 질문을 3~4시간 앞두고 원내총무실로부터 질문에 나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이색 주문이 떨어졌다고 한다. 의원 한 사람당 20분인 질의시간 가운데 2~3분 정도를 빼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몇 의원들에게 긴급히 첨가할 질문사항이 담긴 협조문을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협조문을 보낸 이는 정의화 수석부총무인데, ‘당 지도부의 지시사항’이라는 점이 명시된 협조문에는 “이러저러한 문제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정부총무의 협조문은 주로 오전과 오후 마지막 질문자인 의원들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마지막 순서에 터뜨려야 상대방에게 반론할 틈을 주지 않고 언론의 관심도 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는 전언이다. 실제 문제 발언을 한 김의원과 이의원은 오전 오후의 마지막 발언자였다.

    김의원의 보좌진은 “문제가 된 질문의 경우 우리 방에서 사전에 준비한 원고에는 없는 내용이었다”며 “의원님이 어디선가 정보를 입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은 “수석부총무가 보낸 협조문은 대부분 당 소속 전문위원들이 작성한 것인데 이들이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그것도 질문 시간이 임박해 추가 질문해달라고 요청함으로써 해당 의원 보좌진의 사전 검증을 어렵게 하고 ‘아니면 말고’식 대정부 질문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의원 사건의 경우 솔직히 그 책임은 원내총무실과 당 지도부에 있다. 김의원 보좌진이 사전에 유시민 의원의 출입국 기록만이라도 분석할 시간을 줬더라면 그런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라고 당 지도부의 안일한 대처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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