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3

2003.10.02

여자가 스포츠 아냐고? 똑소리 난다

스포츠뉴스 진행 男과 다른 3인방 … 탄탄한 전문성+신선함 시청자들 호응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9-25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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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 때로 화면 너머로 살짝 비치는 애교, 그러나 만만치 않은 전문성. 그동안 남자 아나운서들의 ‘성역’이던 스포츠뉴스에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자가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니 믿음이 안 간다” “남자만 스포츠뉴스를 하란 법 있냐. 신선하고 기분 좋다”는 찬반론이 팽팽히 맞서지만, 대체적으로 시청자들은 여성의 스포츠뉴스 진행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프로그램 인기의 잣대인 시청률 역시 여성 진행자들에게 호의적인 편.

    그렇다면 남자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스포츠뉴스 진행자의 자리를 따낸 여성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그들이 말하는 ‘선구자’로서의 힘든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뉴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본다.

    전문성으로 무장한 선수들의 ‘누나’ - 이은하

    여자가 스포츠 아냐고? 똑소리 난다

    이은하(32). 1993년부터 라디오 리포터로 활동. 2002년 4월부터 MBC FM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 진행.

    “안녕하세요?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입니다.” 매일 오후 9시35분이면 어김없이 MBC 라디오 FM(95.9 MHz)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스포츠 전문 리포터인 이은하씨(32)가 진행하는 스포츠 프로그램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다. 2002년 4월 신설된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는 최초로 여성 단독 진행자를 내세운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인 이씨는 1998년부터 스포츠 전문 리포터로 활동해왔다. 오랜 현장경험으로 쌓은 전문성과 선수들과의 끈끈한 친분이 이씨의 가장 큰 무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생방송을 했어요. 추석연휴 때도 매일 생방송이 나갔죠.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아이 러브 스포츠’의 가장 큰 강점은 생생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선수들과의 인터뷰. 청취자들은 한참 라디오를 듣다가 “저는 축구선수 송종국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를 듣고 계십니다” 하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곤 한다. 100명 이상 ‘저장’돼 있다는 이 선수 인터뷰들은 모두 이씨가 경기 현장을 쫓아다니며 직접 녹음한 것. 야구선수인 조용준(현대), 정민철(한화) 등은 이씨를 아예 ‘누나’라고 부른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절 거절했던 이천수도 이씨만은 따로 만나 단독 인터뷰를 했다고.

    “운동선수들은 순진하고 착해요. 따스하게, 인간적으로 대하면 그들은 곧 마음을 열어요. 하지만 동시에 선수들에게는 아무리 어려도 존경할 만한 점이 있어요.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거든요. 한창 나이에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다 참고 묵묵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고 안쓰럽죠.”

    운동선수들에게도 ‘아이 러브 스포츠’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이씨가 경기장에 가면 ‘나도 인터뷰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선수도 있다고.

    이씨는 올해부터 성균관대 스포츠과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선수들을 테크닉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선수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 전문 인터뷰어가 이씨의 꿈이다.

    여자가 스포츠 아냐고? 똑소리 난다

    채진(25). 1997년 미스 월드 유니버시티 한국 대표. 케이블 TV에서 VJ로 활동하다 올해 3월부터 SBS TV의 심야 스포츠뉴스인 ‘스포츠와이드’ 단독 진행.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미소천사 채진’이라는 카페가 있다. SBS TV의 심야 스포츠뉴스인 ‘스포츠와이드’(매일 밤 12시45~55분) 진행자 채진씨(25)의 팬클럽이다. 미스 월드 유니버시티 출신인 리포터 채진씨는 올해 3월 ‘스포츠와이드’의 단독 진행자로 전격 발탁된 케이스. 그 전까지 채씨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보통 여자들 수준이었다고. 면접을 볼 때도 “복싱 세계 타이틀매치는 몇 회전까지 하나”라는 질문에 “한 선수가 KO될 때까지요” 하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같은 발랄함이 제작진에게 어필, 스포츠뉴스 단독 진행자가 될 수 있었다.

    “TV 사상 첫 여성 스포츠뉴스 진행자라는 것에 대한 파장이 상상 이상으로 컸어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의 수업주제로까지 등장했다고 해요. 방송 시간이 늦어서 그 시간에 누가 TV를 볼까 싶지만 의외로 밤 시간 시청자 중에는 스포츠 마니아들이 많아요.”

    파격적인 스포츠뉴스를 지향하는 SBS의 정책상 채씨는 트레이닝복이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을 상품화한다’고 비난하는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올 때는 정말 난감했다고. 원래 명랑한 성격이라 뉴스 중간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같은 채씨의 웃음은 이제 시청자들에게 ‘스포츠와이드’만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채씨가 프로그램을 끝내고 퇴근하는 시간은 오전 1시. SBS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지만 오전 9시면 다시 출근한다. 낮 시간 동안 경기장에 가거나 스포츠국 기자들이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아직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 잘 알아요. 스포츠국 선배들도 ‘알고 말하는 것과 모르고 말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시청자들이 그 사실을 먼저 안다’고 말씀하시죠.”

    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온 고3 수험생들이 ‘스포츠와이드’를 보면서 피로를 푼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기쁘다는 채씨. “시청자들이 ‘스포츠와이드’ 덕분에 행복하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게 최고의 칭찬이에요. 그렇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게 스포츠뉴스의 매력이죠.”

    여자가 스포츠 아냐고? 똑소리 난다

    이정민(26). 2002년 11월 MBC 아나운서로 입사. 올해 5월부터 MBC TV 주말 스포츠뉴스 단독 진행.

    MBC 이정민 아나운서(26)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면 통화연결음으로 MBC 스포츠뉴스의 시그널 음악이 힘차게 흘러나온다. 과연 ‘스포츠 우먼’답다. 이 아나운서는 5월부터 MBC의 주말 스포츠뉴스(주말 오후 9시35~45분)를 단독 진행하고 있다.

    “저는 2002년 11월에 아나운서로 입사한 새내기예요. 봄 개편 전, 주말 스포츠뉴스 진행자 자리를 놓고 사내에서 오디션이 있었어요. 저도 참가 권유를 받아 응했는데 오디션에 선발되어 정말 기뻤어요. 평소 스포츠뉴스나 스포츠 중계를 꼭 하고 싶었거든요.”

    173cm의 큰 키가 시원스런 이 아나운서는 스키, 수영, 스노보드, 스쿠버다이빙에 재즈댄스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 우먼. 여기에 더해 약간 낮은 톤의 목소리와 털털한 성격까지 갖추었으니 스포츠뉴스 진행자로서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는 남성 아나운서들을 보면 박력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저도 처음 한두 달은 그렇게 해보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스포츠뉴스는 박력’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제 나름대로 즐겁고 유쾌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과감하게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죠.”

    5개월여 간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면서 아직까지 큰 실수는 없었다. 다만 첫 방송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몇 초간 ‘방긋’ 웃고만 있었다고. 또 ‘컨페더레이션스 컵’이라는 발음이 입에 붙지 않아 쩔쩔매기도 했다.

    “앞으로는 뉴스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 중계를 꼭 해보고 싶어요. 경기 중계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스포츠 아나운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경기종목은 축구. 성실한 플레이가 돋보이는 최태욱 선수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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