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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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에이즈 감염 우려 혈액 유통

‘부적격 혈액’ 70여 차례 공급 혈액원 자료 입수 … 수혈 대상자·혈액제제량 파악조차 못해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9-03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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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 에이즈 감염 우려 혈액 유통

    혈액원 자료에서는 헌혈유보군(DDR)표시‘TI’가 선명하고 혈액 상태가 ‘부적격’으로 표시되어 있는 혈액이 병원으로 공급된 것을 볼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 혈액원의 에이즈 자체 검사 결과 ‘유통 부적격’으로 판명된 혈액이 수년간 70여 차례나 수혈용과 의약품의 원료로 불법 공급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전체 혈액의 유통을 관리 감독하고 책임져야 할 국립보건원과 보건복지부가 이를 관리하지 않거나 아예 방치해 혈액 유통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최근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60대 에이즈 환자의 경우도 이런 난맥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혈액원 자료에 따르면 혈액관리법상 유통이 절대 금지된 ‘부적격 혈액(에이즈 양성 반응 유경험자의 혈액)’, 즉 ‘헌혈 일시 유보군(DDR)’ 헌혈자의 혈액이 수혈용과 의약품(글로불린, 알부민) 제조용으로 전국의 각 병원과 제약사로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부터 2003년 최근까지의 혈액 관련 정보를 담은 이 자료에는 5년간에 걸친 헌혈자의 혈액 상태와 이동경로가 고스란히 정리돼 있으며, 총 60여명의 에이즈 양성 반응 유경험자의 혈액이 70여 차례나 병원과 제약사에 불법 공급된 것으로 적시돼 있다. 헌혈로 들어온 혈액은 통상 적혈구와 혈소판, 혈장으로 분리돼, 적혈구와 혈소판은 환자의 수혈용으로 쓰이고, 혈장은 제약사로 보내져 혈액제제로 만들어진다.

    수년간 유통과정 방치 … 보건원·복지부 책임 소홀

    ‘헌혈 일시 유보군’이란 혈액관리법상 적십자사 산하 혈액원 자체 검사(효소면역 검사법)에서 한 번이라도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인 적이 있는 사람들로, 이들은 별도의 해제 절차를 밟지 않는 한 헌혈이 금지돼 있다. 따라서 효소면역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온 혈액은 그 즉시 모두 폐기해야 하며, 설사 일시적으로 음성 반응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들의 혈액은 ‘부적격 혈액’으로 묶여 일체 유통이 금지된다. 이중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에이즈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의 혈액은 헌혈 영구 유보군으로 지정돼 혈액 유통시 더욱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적십자사 혈액원은 검사 결과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경험이 있는 헌혈 일시 유보군의 혈액을 일시적으로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대로 유통시켰다. 불법 유통시킨 혈액에 관한 혈액정보 자료에는 분명히 헌혈유보군 표시란에 유보군에 해당하는 표시 ‘TI’가 명시돼 있으며, 혈액의 상태를 표시하는 란에는 ‘부적격’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씌어져 있다. 이중에는 2년에 걸쳐 네 차례나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의 혈액이 음성 반응이 나왔다는 이유로 각 병원에 공급된 사례도 있었다. 물론 이 자료에도 헌혈유보군 표시가 돼 있었으며 혈액의 상태는 부적격으로 돼 있었다. 심지어 검사 결과가 음성, 양성을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도 음성 판정이 나올 때는 헌혈유보군의 혈액(부적격 혈액)을 유통시켰다. 이러한 부적격 혈액은 전국 각 병원으로 보내져 과거에 양성 반응으로 나온 환자에게 수혈됐다.

    충격! 에이즈 감염 우려 혈액 유통

    2000년 12월 적십자사의 불법 혈액 판매 의혹과 관련해 규탄집회를 하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부적격 혈액이 병원에 환자 수혈용으로 공급될 뿐만 아니라 혈장 분획을 통해 제약사에 공급된 경우도 부지기수. 내부 자료에는 혈액원 자체 검사 결과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지 6~7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헌혈유보군 대상자의 혈액을 혈장 분획을 통해 제약사로 내보낸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측은 “헌혈유보군에 속해 있어도 자체 검사 결과 음성 반응이 나오면 얼마든지 혈액을 공급할 수 있다. 해당 혈액은 헌혈유보군 해제 절차를 거친 혈액들”이라고 반박했다. 또 “이름이 잘못 입력되면서 발생한 전산착오일 가능성이 높고, 올 5월에 시스템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산오류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혈액관리법과 혈액원 자체의 헌혈유보군 관리지침은 유보군 등록 후 6개월이 경과한 헌혈자로, 2종의 시약 검사를 실시해 2종 모두에서 음성 반응이 나올 때에 한해 6개월 후 2차 검사를 실시해 다시 음성이 나와야 유보군에서 해제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등록 후 12개월 이상 경과한 헌혈자는 2차 검사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검사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떠나서 시기적으로만 보아도, 양성 판정이 나온 지 1년이 지나야 헌혈유보군에서 해제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 그런데 혈액원 내부자료에 나타난 유보군 대상자들은 양성반응이 나온 지 1년 이내에 혈액이 공급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두 가지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고 6개월 이상 지나 2차 검사를 받은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자료에 유통된 혈액이 이미 ‘부적격 혈액’이고 ‘헌혈유보군’임이 명시돼 있어 적십자사측의 해명을 궁색케 하고 있다.

    물론 적십자사의 주장처럼 헌혈 일시 유보군 대상자의 혈액이 모두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적십자사 혈액원에서 헌혈한 사람 중 효소면역 검사법에 의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에이즈에 대한 확진은 국립보건원에서 정밀검사를 통해 ‘진(眞)양성’ 판정을 받아야만 에이즈 환자로 확정되기 때문. 하지만 거꾸로 일시 유보군의 혈액이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확증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보통 적십자사의 자체 검사(효소면역법) 결과 에이즈 양성으로 나온 사람 중 2~5%(혈액원 주장 1%)가 국립보건원에서 에이즈 확진자로 판정되는 상황이고, 이중에는 잠복기에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혈액원이 헌혈유보군 관리 규정에서 최종적으로 에이즈 확진 판정이 난 사람들(헌혈 영구 유보군) 외에도 일시 유보군의 혈액도 부적격 혈액으로 구분하고 절대 유통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즉 헌혈유보군의 혈액은 영구나 일시를 막론하고 모두 수혈용으로는 쓰이지 않는 ‘부적격 혈액’들이며 적십자사 자체 검사에서 에이즈 양성 반응이 나온 에이즈 ‘위(僞)양성자’는 에이즈 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은 ‘고(高)위험군’인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공급된 혈액 중에 에이즈 진성 환자가 없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셈.

    이런 상황에서 유출된 헌혈 일시 유보군의 혈액은 보통 한 사람이 헌혈한 혈액이 2~3명에게 수혈되고, 거기에서 걸러진 혈장이 수천 병의 알부민이나 수천kg의 글로불린으로 제조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부적격 혈액의 유출은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는 적십자사가 부적격 혈액의 유통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이 혈액이 누구에게 공급됐는지, 혈액제제가 얼마나 어디로 팔려나갔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역학조사와 전산망 조회를 통해 충분히 혈액 유통 사실을 알 수 있는 국립보건원이 왜 이를 방치했는지도 의문이다.

    혈액원은 어떻게, 무슨 이유로 부적격 혈액을 무작위로 내보내게 된 것일까.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측은 “헌혈유보군들은 바코드가 부여돼 헌혈시 검사결과와 혈액의 이동경로 등 모든 것이 전산상으로 관리되고 있으나 때때로 전산착오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십자사의 다른 관계자는 “전산자료 상에 ‘부적격’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혈액을 유통시킨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전산착오라기보다는 ‘혈액만 공급하면 그만’이라는 혈액원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안전 불감증, 국립보건원·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 소홀이 가장 큰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적십자사의 검사결과가 모두 국립보건원으로 보내지는 상황이고 국립보건원이 적십자사의 혈액정보시스템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건원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강력 대처 … “형사고발 대상”

    현행 에이즈관리법은 혈액원은 에이즈 검사 결과 감염자를 발견한 경우 즉시 관할 보건소장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최종 보고토록 되어 있으며 국립보건원은 혈액원의 보고를 받아 지체 없이 확인 검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에이즈 감염 우려 혈액의 시중 유통 사태를 부른 것은 보건당국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총체적 직무유기라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이와 관련 각 시민단체들은 혈액원과 국립보건원, 보건복지부 등 범정부 차원의 혈액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이에 강력 대처키로 했다. 일부 법조계에서는 적십자사와 국립보건원, 보건복지부를 형사고발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건강세상 네트워크는 9월1일 기자회견을 갖고 부적격 혈액 유통과 관련 책임자 문책과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한편 부적격 혈액의 유통 실상은 에이즈에 한정되지 않는다. 2001년까지 10여년간 적십자사 혈액원에서 근무했던 한 의사는 자신이 근무할 당시 B형 간염과 매독에 대해 양성 판정이 나온 헌혈유보군 대상자의 부적격 혈액을 유출했던 기록들을 내보이며 “적십자사 혈액원이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급해서는 안 될 혈액들을 마구 내보내고 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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