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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지방박물관도 할 말 있다

  • 박영복 / 국립경주박물관장

지방박물관도 할 말 있다

지방박물관도 할 말 있다
며칠 전 ‘주간동아’ 기자로부터 대단히 곤혹스러운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기자는 5월 일어난 국립공주박물관의 문화재 강탈사건과 관련해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몇몇 지방 박물관장들에게 부탁해보았으나 모두 거절하더라면서 필자마저 손사래 치면 안 된다고 하여 필자를 더욱 난처하게 했다.

사실 그렇다.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공주사건은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전대미문의 불상사이며 천번 만번 사죄해도 모자랄 부끄러운 사건이다. ‘지방박물관도 할 말 있다’고 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죄인들이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반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실 국립박물관에서 문화재를 도난당한 사건은 그동안 두어 번 있었다. 하지만 모두 단순 절도범에 의한 단독범행이었고 도난품도 고스란히 되찾았다. 그러나 공주사건은 사정이 다르다. 2인조 강도가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중 공주박물관의 경비 상태가 가장 허술하다고 판단, 몇 차례의 치밀한 현장 사전답사 끝에 일반적인 범행시간보다 이른 밤 10시를 조금 지난 시각을 노려 침입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들의 치밀함과 대담성에 소름이 끼친다. 당시 출입문을 잠그지 않은 사실이 보도되었지만 범인들의 수법으로 미루어 볼 때 잠긴 문을 부수고서라도 침입했을 것이다. 근무중인 직원을 전기충격봉과 완력으로 제압하고 의자에 묶어놓은 뒤 유유히 전시실 유리를 깨고 문화재를 강탈했으니 외국 범죄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장면이 아닌가.

우리 속담에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한 놈을 못 당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자는 속셈이 아니다. 세상이 이렇게 난폭해졌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일, 지방박물관 관계자들은 공주사건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정신무장을 강화하고 박물관 설비를 보강하여 다시는 국민들로부터 걱정과 질책을 듣지 않도록 대처하고 있다.



공주와 청주 박물관장을 거쳐 현재 경주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이 기회에 지방박물관의 사명과 현실을 잠시 짚어보려 한다. 지방박물관의 담당 업무는 국립중앙박물관 담당 업무의 축소판이다. 사업의 규모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으나 종류는 거의 비슷하다. 각 지방박물관은 그 지역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관리, 전시하는 고전적인 업무는 물론, 예술을 통한 감수성 개발을 위한 사회교육 강화 기능도 맡고 있다. 어린이 박물관학교, 청소년 문화강좌, 박물관 대학, 문화체험 교실 등을 운영하며 명절에는 윷놀이, 떡 빚기, 널뛰기, 줄넘기, 팽이치기 등의 판을 펼친다. 직원들은 관람객들과 어울려 놀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고단한 신세다.

공주사건 자성 … 좀더 많은 관심과 애정 기대

이처럼 지방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문화정체성의 근간인 문화재를 지키는 최일선 기관이다. 그러나 연구인력은 그나마 규모가 큰 박물관의 경우 6~8명, 그 밖에는 3~5명에 지나지 않는다. 연구인력이 100여명에 이르는 국립중앙박물관도 인원이 부족한 실정인데, 11개의 지방박물관을 모두 합해야 겨우 중앙박물관 인력과 비슷한 수준이니…. 지방박물관의 학예연구실 직원들은 직원 중 출장이나 발굴조사 중인 직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2, 3일이 멀다 하고 숙직을 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성장 정도로 보아도 다른 분야에 비해 문화 면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지방의 국민들도 골고루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미래는 인간의 삶의 기준이 경제적·물질적 ‘양’의 확충에서 정신적 가치, 즉 ‘질’의 향상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필자는 이 바탕에 민족문화유산이 있음을 확신한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그 위에 어떤 것을 세워도 결국 내실이 없어 무너지게 되는 법이다.

죄책감 속에서 지내던 공주사건 당시의 당직자는 안타깝게도 암에 걸려 8월11일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 국립박물관 직원들 역시 모두 속죄하는 심정이다.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국민들의 애정 어린 성원 덕분에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찾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 고유의 문화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세계만방에 알리는 일일 것이다.



주간동아 398호 (p96~96)

박영복 /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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