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6

2003.08.07

전국은 지금 박물관 건립 붐

국고보조금 지원받아 지자체 ‘너도나도’ … 일부는 건물에만 초점, 빈약한 전시물 ‘빈축’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7-30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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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은 지금 박물관 건립 붐
    지금은 박물관 시대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박물관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거나 건설중이고,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박물관들도 편의점만큼이나 많아졌다.

    아예 ‘박물관도시’를 표방한 부천시는 ‘박물관 콤플렉스’ 프로젝트를 추진중이고, 강원도처럼 읍·면마다 1개 이상의 박물관을 짓겠다고 발표한 곳도 있다. 청주시는 기초 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의 박물관을 보유한 도시답게, 7월23일 20개의 청주시내 박물관과 미술관을 묶어 ‘마음을 채우는 공간을 찾아’라는 단행본을 펴내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샀다.

    박물관 설립 붐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지자체. 1998년 정부가 새로운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2011년까지 현재 276개인 국·공·사립 박물관 수를 500개로 늘리기로 한 데다 2004년 국제 박물관 서울대회를 앞두고 박물관 수를 선진국 수준에 맞추기 위해 박물관을 설립하려는 지자체에 엄청난 국고보조금(건축비의 30%)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박물관은 예산 부족 ‘허덕’

    올해 지자체의 박물관 설립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은 전체 34개관에 286억원으로 전체 공립박물관 건립 비용만 1000억원대인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개인 소장가들이 늘어나면서 소규모의 사립 ‘전문’ 박물관들도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의 수는 늘어나는데 박물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박물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박물관에 가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박물관의 운명은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박물관을 단지 ‘웅장한 건축물’로 생각하는 데서 이미 결정돼버린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문을 연 한 지자체 박물관의 경우를 보자. 건설비만 230억원이 넘는 대형박물관 건설 계획을 발표한 것이 전임자였고, 신임 단체장은 “연 12억원이 넘는 운영비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들떠서 결정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7년 간의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이 완공되자 이젠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대형박물관이 공무원과 외부 전시업체가 만든 것으로, 관장과 학예사들은 개관 직전에 계약 임용돼 이제야 시설을 파악하는 중이라 박물관의 핵심 업무인 기획전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는 바가 없다는 것.

    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박물관 관장은 “건물만 터무니없이 크게 지어놓고 내용물을 채워내라고 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에선 건설비만 지원할 뿐 운영비는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 예산으로는 건물을 유지하기도 힘겹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립박물관들은 순전히 개인의 소장품 관리의 필요성과 열의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된다. 사립박물관의 경우 100점의 소장품과 일정 요건을 갖추면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 등록 박물관이 되고 법적으로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돼 있지만 실제로 지원을 받은 예는 없다고 한다. 약간의 세금 면제가 문광부 등록 박물관이 받는 혜택의 전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립박물관이나 전시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전국은 지금 박물관 건립 붐

    박물관도시를 표방한 부천시는 국고 지원 없이 다양한 소규모 박물관을 운영해 다른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부천시가 종합운동장 내부에 설치한 유럽자기박물관, 만화박물관, 교육박물관(왼쪽부터).



    전국은 지금 박물관 건립 붐

    청주시의 대표적인 공립박물관인 ‘고인쇄박물관’, 소규모 테마 사립박물관인 ‘아시아 성 박물관’,독특한 외관만큼이나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서울 대학로의사립 ‘쇳대박물관’(위 부터 시계방향).

    ‘성문화’라는 테마로 화제가 된 서울 소격동의 ‘아시아 성 문화박물관’ 김영수 관장은 “개인적으로는 불교나 농경문화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싶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일단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것도 입장객이 한 명이라도 더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립박물관의 문제점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는 등록 박물관 1호인 ‘홍산박물관’이다. 한 소장가의 의지로 설립된 ‘홍산박물관’은 사립박물관으로는 드물게 가야와 삼국시대 토기를 무려 832점이나 문광부에 등록했지만, 모기업의 재정이 어려워져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러다 최근 검찰이 ‘홍산박물관’ 유물이 서울 인사동에서 거래된다는 첩보에 따라 수사에 나선 것이 언론에 보도됐으나, 그 후 소장가의 가족은 유물이 창고에 있다고 검찰에 알려왔다. 문광부나 문화재청 모두 전시물의 가치나 보존 상태에 대해서는 완전히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문광부 도서관 박물관과에서는 “공립박물관의 운영은 지자체에서 할 테고, 사립박물관은 개인 재산이라 국고 지원은 부적절하다. ‘홍산박물관’ 전시물 중에 일부 문화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 진흥법은 ‘권장법’이라 어겨도 제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인 소장자의 유물을 사회의 공유자산으로 전환하자는 박물관 등록제의 취지가 무색한 셈이다. 이처럼 사립박물관의 운영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지기 때문에 일부 사립박물관들은 ‘키치’화한 싸구려 물건을 판매하는 공예상품점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수적으로 늘어난 박물관들이 날림 운영으로 죽은 공간이 되어간다는 비판이 일면서 박물관을 ‘건축물’이 아니라 내용과 운영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반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양한 문화이벤트로 다른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부천시의 경우 종합운동장 내부 공간을 살려 만화박물관과 교육박물관, 유럽자기박물관을 만들었고 이곳에 3개 박물관을 더 만들 예정이다. 또한 SBS 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 옆에 ‘박물관 콤플렉스’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부천시 소재 박물관들은 모두 소규모로, 콘텐츠와 이벤트 중심으로 운영된다.

    각종 이벤트 등으로 활성화 꾀해야

    또한 부천시와 청주시는 기초 지자체로는 드물게 박물관 설립과 운영을 별도 법인화했다. 아직 전시 기법이나 프로그램 운영 면에서 미숙한 점이 많이 발견되지만 공무원들이 아니라 문화 전문가들이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게 제도화한 것 자체가 큰 변화다. 한대수 청주시장은 “사실 문화재단을 만들 때 그거 뭐 하는 거냐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며 공무원들의 ‘밥그릇 지키기’를 은근히 꼬집기도 했다.

    정부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사립박물관의 경우 대중들의 욕구를 반영한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여는 코리아나 화장품의 ‘뮤제 드 라 보떼’의 경우 화장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지만 건물 내에 스킨케어 살롱을 두어 여성 관람객들을 유인하는 박물관 마케팅을 도입했다.

    또한 대학로에서 올가을 문을 여는 자물쇠를 테마로 한 ‘쇳대박물관’은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이벤트실과 자물쇠라는 남성적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플라워숍을 두었다. 최홍규 관장은 “박물관 프로젝트를 완성한 다음 공사에 들어갔다. 소장품 수로 보면 박물관 면적을 더 늘릴 수도 있었지만, 기획전을 자주 열기 위해 직접 디렉팅할 수 있는 만큼만 전시실을 확보했다”고 말한다. 그는 “시각적, 개념적으로 ‘즐거움’을 준다면 입장료만으로도 흑자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덧붙였다.

    박신의 교수(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는 “현재 우리나라 박물관은 전시공간이 너무 넓다. 이는 박물관을 단지 유물을 나열하는 공간으로 생각한 결과다. 전시공간을 전체의 30% 정도로 줄이고 서비스와 교육 프로그램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 현대박물관의 추세”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물쇠든 휴대전화든,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그것들을 통해 삶을 성찰한다. 현대미술관이 너무 특수하다면 박물관은 훨씬 이해하기 쉽다는 점에서 더 실천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용산에 개관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를 대표해야 할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나치게 기념성과 규모를 강조한 박물관’이란 논란을 낳고 있고, 국립자연사박물관은 부지 선정에서 추진위원회 인선까지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상태다.

    박물관 프로젝트는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아까운 국고를 축내가며 짓고 있는 박물관들이 이러한 기준에서 멀어져 있다면, 우리는 텅 빈 공간들을 만드는 데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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