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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정치 브로커

변칙과 반칙의 거래 … ‘검은 로비’ 판친다

연고주의 한국 풍토가 정치 브로커 양산 … 법과 원칙 무시 ‘국가 경쟁력’ 좀먹는 주범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변칙과 반칙의 거래 … ‘검은 로비’ 판친다

로비스트들 1호 공략 대상은 현직 대통령 아들

변칙과 반칙의 거래 … ‘검은  로비’ 판친다
최고 권력자와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로비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최고권력자를 직접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로비스트들은 권력 2인자나 대통령의 친인척들에게 눈을 돌린다. 국민의 정부 핵심실세였던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등의 이름이 대형 의혹사건과 관련해 항상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창열씨가 재기를 위해 만든 ‘A-프로젝트’에는 DJ의 동생 대현씨 활용방안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실세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들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국민의 정부 당시 관광-숙박업계에서 고속성장한 A씨. 그의 고속성장 배경에는 사업파트너인 B씨를 통해 친분을 나눈 DJ 정부 핵심인사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반대급부로 거액의 정치자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소문도 뒤를 잇고 있다. 이 사건이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금전관계로 알력을 빚던 A씨와 B씨가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공개, 구속된 직후였다. 지난 5월 구속된 A씨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참여정부 핵심인사인 ·#52059;·#52059;·#52059;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기자들은 이 사건의 은밀한 부분을 취재하는 데 열을 올렸고 A씨는 얼마 후 금보석으로 석방됐다. 문제는 격분한 B씨였다. 그는 “죄 없는 나는 묶어두고 왜 A씨만 석방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고 주변에는 “A씨와 국민의 정부 핵심인사와의 검은 거래 및 로비와 관련한 제2의 폭탄선언을 준비중”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현재진행형인 이 문제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국은 굿모닝게이트에 이어 또 한 번 로비스캔들에 휘말릴 가능성이 많다.

성공률 100% 김홍업씨? … 돈과 술 그리고 여자



권력의 흐름을 면밀히 파악, 근접성을 발휘한 대표적인 사람이 대북 비밀송금 특별검사팀이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돈세탁했다고 밝힌 김영완씨다. 김씨를 잘 알고 있는 로비스트 K씨의 기억이다.

“김씨는 권력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접근한다. 김영삼 정부 때 군 및 정보기관 실세였던 K씨, 정보기관 핵심간부 O씨를 수시로 접촉했다. 김대중 정부 때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과도 가깝게 지낸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K씨에 따르면 김씨 뒤에는 80년대까지 모 정보기관 국장을 지냈던 장인 A씨와 두 명의 형들이 있다. K씨는 “이들이 지난해 중순부터 이회창-노무현 후보 진영의 실세들과 교분을 쌓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일부는 실행에 옮겼다”고 전했다.

그는 DJ 정권의 실력자들과의 교분을 통해 대북사업에 관여하는 한편, 한번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는 무기거래사업을 재개하려 했다고 K씨는 기억한다. 그의 로비에는 보통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거액의 ‘베팅술’이 숨어 있다.

“그는 벤츠와 스타크래프트를 탄다. 팔걸이 수납함에는 항상 수표 다발이 가득 차 있다. 누군가를 자기 차에 태운다는 것은 이 수납함을 열고 거액을 전달하겠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어느 정권이든 대통령의 아들은 로비스트들의 1호 공략대상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DJ의 차남 홍업씨가 이를 증명한다. 2001년 5월, 서울 강남의 R호텔 룸살롱.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과 마주앉은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은 연신 홍업씨에게 양주를 권했다. 2000년 12월 무역금융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이 전 부회장은 홍업씨에게 5억원을 전달,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상황. 홍업씨 도움으로 ‘저렴하게’ 일을 끝낸 이 전 부회장이 앞날을 위해 ‘보험’용 술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홍업씨의 로비 행적을 보여주는 이 사례는 그 후 조금씩 소문이 났고, 일부 기업인들 사이에서 홍업씨를 ‘성공률 100%의 전문 로비스트’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홍업씨도 서울 강남 역삼동에 개인 사무실을 차리고 기업가, 재벌 2세 및 고위 공직자 등과 전방위 회합을 하는 ‘역삼동클럽’을 결성, 본격 로비스트의 길로 접어들었다. 집사이자 친구인 김성환씨가 물건을 ‘찍어’오면 홍업씨는 대통령의 아들이란 특수신분을 활용, 로비에 나섰다. 국민의 정부1급 로비스트 홍업씨는 지난해 구속돼 지금도 감옥 신세를 지고 있다.

각종 사업이나 사건의 처리 과정에 개입, 뜻한 바를 이루게 해주고 금전적 반대급부를 취하는 한국형 로비스트들은 수시로 합법과 불법의 영역을 넘나든다. 이 때문에 한국의 로비스트들은 브로커와 구별하기 어렵다. 의회의 로비를 드나들며 특정 단체·그룹의 이해를 대표하여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로비스트 개념과 상충하는 이런 로비문화 때문에 홍업씨처럼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굿모닝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윤석헌씨가 2년 전인 2001년에 구속된 것도 합법과 불법 사이의 교묘한 줄타기 로비에서 비롯됐다. 흥미로운 것은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람이 같은 로비스트인 강귀희씨(프랑스 알스톰사 공식 로비스트)라는 점이다. 윤씨는 1999년 7월, 서울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벙커시유와 물을 이용해 개발한 획기적인 대체에너지인 ‘에멜전 오일’의 유럽 독점 판매권을 주겠다”며 강씨에게 2억380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세계적인 무기상인 강씨는 어이없는 ‘실수’에 분개했고 결국 법을 통해 윤씨를 처벌한 것이다.

2000년 4월 고위 공직자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김철우 전 CPP코리아 대표에게서 현금 2억원을 받는 등 CPP코리아와 코오롱TNS측에서 모두 9억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재기 전 관광협회중앙회장도 로비스트와 브로커의 영역을 오간 대표적인 인사로 볼 수 있다. 김상현 의원(민주당),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함께 한국의 ‘3대 마당발’로 통하는 그는 주택·외환은행장, 주택사업공제조합 이사장, 한국씨름연맹 총재 등을 역임,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그가 구속되자 지인들은 ‘설마 그가…’라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종이 한 장보다 못한 로비와 브로커의 불분명한 경계선을 김씨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말년의 불운으로 이어진 셈이다. 김씨는 지금도 자신의 행위가 불법적 브로커 행위가 아닌 합법적 로비임을 주장하고 있다.

로비스트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과장한다. 굿모닝시티의 또 다른 로비스트 윤봉근씨도 한국형 로비문화가 얼마나 왜곡, 과장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굿모닝시티 관계자들에게 ‘육사를 나와 대령으로 예편한 중앙정보부 고위직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는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취재진의 확인 결과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60년 말(10대 중반), 당시 중앙정보부 모 지부에 사환으로 들어가 4년여 근무한 것이 정보기관 이력의 전부였다.

로비스트들의 활동공간에는 돈과 술, 그리고 여자가 빠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홍업씨의 로비 스타일이 전형적인 예. 국산양주 윈저와 중저가의 로비드를 좋아했던 홍업씨는 신인 탤런트, 여대생 등이 시중을 드는 것으로 알려진 강남의 고급술집 ‘지안’을 수시로 출입했다. 이 때문에 지안의 마담 A씨는 지난해 홍업씨 문제로 검찰에 나가 조사받는 수모를 겪었다. 몇 달 전 청와대를 방문하고 나온 정대철 민주당 대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권한대행,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이 술집을 찾아 호화판 술판을 벌여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변칙과 반칙의 거래 … ‘검은  로비’ 판친다
1999년, 장관 출신으로 사회적 성공을 거둔 한 중년 남자가 로비스트 린다김에게 쓴 연서(戀書)가 공개돼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너의 붉은색이 감도는 눈망울과 눈물을 보고 너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나의 가정, 가족관계도 그러한 숭고한 과정을 거쳐 이뤄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신만을 사랑한다.”

이 중년 남자는 사랑한다고 믿은 그 여자를 위해서 자기 권력과 지위를 모두 동원하여 도와주려 했고, 부인과 가족마저 부정하는 격정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린다김은 “그만의 일방적 주장일 뿐 사랑은 없었다”고 말해 중년 남자의 숭고한 사랑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로비스트들은 문제가 될 경우 ‘딜’을 시도한다. 특히 불법으로 진행된 로비 과정의 ‘전모’가 로비스트들의 신변을 지켜주는 수단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굿모닝시티 사건에 연루된 민주당 정대표는 최근 묘한 정보를 입수했다. 측근이 밝힌 정보의 내용이다.

“윤창열과 윤봉근, 윤석헌 등 굿모닝시티 핵심 3인방이 검찰조사를 앞두고 ‘무조건 정대철에게 줬다고 불자’고 입을 맞추었다는 진술이 조사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집권여당의 대표 이름이 나오면 검찰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들이 입을 맞춘 것이라는 게 정대표측의 판단이다. 정대표는 측근 L의원 등을 통해 이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중이다. 지난해 최규선씨는 검찰의 수사망이 자신을 압박해오자 홍걸씨를 통해 DJ와 이희호 여사를 협박하는 대담한 딜을 시도했다. “잘못하면 홍걸씨가 다친다. 청와대가 나서 무마하라”는 그의 협박에 결국 사직동팀에 근무했던 최성규 총경이 “함께 밀항하자”고 최씨를 달래고 나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2000년 옷 로비사건과 관련해 DJ는 “무시하지 못할 사람들을 동원, 신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고 ‘로비 천국’ 대한민국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로비스트들은 군수물자를 사고 파는 군납시장을 최고로 친다. 몇 천억원대를 육박하는 무기거래 특징상 2~3%로 책정된 리베이트는 로또복권 당첨을 능가하는 돈벼락이다. 이에 비해 천만원대의 명품시계(롤렉스)와 굿모닝시티 점포 특혜 분양, 라면박스에 담긴 현금 등을 무기로 로비에 나선 굿모닝시티 로비 규모는 초라하다. 그렇지만 검찰 수사가 전개될수록 로비금액은 커지고 있다. 현재 검찰은 윤창열씨의 로비금액을 최대 300억원, 최소 40억원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로비자금 대부분이 음성적으로 정치권과 정부기관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형 로비문화는 사회 경쟁력을 좀먹는다. 본업이 아닌 옆길로 돈이 새고, 원칙이 아닌 변칙과 반칙의 문화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로비스트들의 역할이 점증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음습한 비밀주의와 돈보따리로 무장한 한국형 로비 스타일로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외국의 로비스트들과 대결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국익을 다투는 게임에서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는 1999년 린다김 로비사건 때 ‘공익로비에 관한 법률’(가칭)을 국회에 입법 청원했다. 그러나 학연·지연 등 각종 연줄이 거미줄처럼 얽힌 연고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 브로커들은 요즘도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





주간동아 396호 (p10~13)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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