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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야바위’ 홈쇼핑

“앗 싸다” 나도 몰래 전화 꾹꾹

홈쇼핑 중독자들 닥치는 대로 구입 … “꼭 필요한 물건인데” 알뜰 구매자로 착각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앗 싸다” 나도 몰래 전화 꾹꾹

“앗 싸다” 나도 몰래 전화 꾹꾹
”잭필드 구김 방지 면바지 3종 세트를 4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 3만9800원에 판매합니다. 3만98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후불제 혜택까지. 이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과장된 억양으로 청산유수처럼 많은 말들을 쏟아내는 말투가 TV 홈쇼핑 광고 속 쇼 호스트와 꼭 닮았다. 그러나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울 중계동에 사는 평범한 주부 김은진씨(38·가명). 그는 이 바지 세트뿐 아니라 라꾸라쭛 침대, 슈쭛 다리미, 김쭛미 전통 꽃게장, 슬레진쭛 남녀 운동복 세트 등 케이블 TV에서 방송되는 광고의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할 수 있다.

김씨가 이처럼 광고내용을 외울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취미가 바로 ‘홈쇼핑 보기’이기 때문. 특별히 구입할 물건이 없을 때에도 김씨는 곧잘 홈쇼핑 광고에 빠져들곤 한다.

김씨의 4월 신용카드 사용대금 결제 요청서를 보면 홈쇼핑에 대한 그의 관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씨는 7일 가정용 피부미용기를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16일에는 다리미와 순간접착제를, 21일에는 다이어트 웨어와 운동기구를 샀고 22일에는 만능세척제를, 26일에는 음식물 분쇄기를, 마지막으로 27일에는 수십만원짜리 고가 화장품을 사들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홈쇼핑중독’이라며신용카드를 빼앗아 간 탓에 김씨는 요사이 홈쇼핑 채널 대신 일반 케이블 TV 채널에서 방송하는 정보성 광고(인포머셜·information+commercial)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홈쇼핑 중독자’로 여기는 남편과 주위의 시선에 불만이 많다. 자신이 구입한 물건들은 모두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쇼핑 중독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쓰지도 않을 물건을 구입해 교환과 반품을 반복하는 것이 쇼핑 중독자의 대표적 행태였다면, 요즘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중독자’들이 늘고 있다. 보석, 명품, 고가 가전제품이 아닌 생활용품과 식기 등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한 달에 수백만원을 지출하는 것이다.

“앗 싸다” 나도 몰래 전화 꾹꾹

홈쇼핑 마니아들은 불필요한 물건을 사들이면서도 자신이 꼭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려면 홈쇼핑 프로그램 시청을 줄이고, 제품 구입에 앞서 제시된 조건이 정말 좋은지를 다른 쇼핑몰 등과 비교해보아야 한다.

직장인 고은희씨(28)도 ‘홈쇼핑 마니아’다. 그의 신용카드 사용대금 결제 요청서에는 홈쇼핑에서만 판매되는 속옷과 고가 화장품, 각종 의류의 결제 내역이 빽빽이 적혀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중독자’들은 자신이 홈쇼핑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점. 홈쇼핑 출범 초기 주문과 반품을 반복하며 물의를 일으켰던 ‘얌체 쇼핑족’들이나 ‘명품족’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구매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최근의 ‘홈쇼핑족’들은 스스로를 ‘알뜰 구매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느끼지 못했던 어떤 것에 대한 필요성을 찾아내 제품을 구입하는 것 또한 쇼핑 중독의 한 양태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 구매자의 60.7%는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 채널을 접했다. 처음부터 제품을 구입하거나 제품 구입을 위한 정보를 제공받을 의도로 홈쇼핑 채널을 본 이는 전체의 30%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은 홈쇼핑 채널의 방송내용을 별로 신뢰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홈쇼핑 이용자 가운데 홈쇼핑 프로그램에서 밝히는 권장소비자가격이 믿을 만하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30.6%로, 믿을 수 없다(38.4%)고 응답한 사람보다 적었다. 쇼 호스트가 말하는 한정판매 수량이나 판매량 집계 멘트를 믿는다는 응답도 각각 11.1%와 16.3%에 그쳤다. 결국 홈쇼핑 이용자 10명 가운데 9명은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쇼 호스트를 별로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제품을 구입하고 있는 셈이다.

물건을 구입하면서 꼭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이 구입 적기”라거나 “우리 홈쇼핑을 통해 제일 싸게 살 수 있다”는 쇼 호스트의 말에 유혹을 받으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문에 답할 때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율배반적 상황. 이것이 바로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홈쇼핑 증후군’의 증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송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운영되고 있는 홈쇼핑 전문 채널은 LG홈쇼핑, CJ39쇼핑, 현대홈쇼핑, 우리홈쇼핑, 농수산TV 등 5개. 여기에 종합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 채널의 일정 시간대를 할당받아 홈쇼핑 사업을 벌이고 있는 위더스 홈쇼핑, C&Tel 등의 인포머셜 사업자 50~60개(한국통신판매협회 추정)와 유사·불법 홈쇼핑을 더하면 현재 소비자들이 TV를 통해 접하고 있는 홈쇼핑 광고는 2500개가 넘는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굳이 홈쇼핑을 원하지 않아도 수시로 이에 노출되고 유혹당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홈쇼핑에 중독되는 것이다.

소보원에 따르면 평범한 주부들은 거의 동일한 단계를 거쳐 홈쇼핑 중독에 빠져든다. 시작은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을 보게 되는 것. 여기서 많은 제품들이 시중가보다 훨씬 싸게 팔리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홈쇼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다양한 경품이 제공될 뿐 아니라 무료전화 한 통이면 대금 결제와 배달 등 모든 절차가 간편하게 끝난다는 것도 주부들에겐 큰 매력이다. 그래서 홈쇼핑을 알기 전에는 할인점과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싼 물건을 찾던 ‘알뜰 주부’들이 TV 홈쇼핑에 빠져드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TV를 안 보는 사이에 기획상품전이 열리거나 특별 경품이 제공되면 어쩌나’ 불안해져서 채널을 돌리지 못하는 단계가 되면 홈쇼핑 중독 증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홈쇼핑중독증후군을 보이는 소비자의 연령은 평균 35.7세이고 대졸 이상 고학력(72.8%) 주부가 많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소보원 소비자상담팀 이창옥 팀장은 “TV 홈쇼핑 채널의 프로그램은 오직 물건을 판매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계속 보다 보면 학력 등과 관계없이 그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충동구매를 막으려면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만 홈쇼핑 프로그램을 보고, 정말 좋은 조건인지를 다른 점포나 인터넷 쇼핑몰 등을 통해 확인해본 후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주간동아 394호 (p22~2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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