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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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비디오에 담은 ‘그때 그 시절’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7-18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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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비디오에 담은  ‘그때 그 시절’

    ‘추억록’ 슬라이드 쇼 중의 한 장면.

    디지털카메라와 카메라폰, 캠코더가 너무나 흔해진 시대지만 우리에게는 사진 한 장 찍을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어쩌다 피사체가 되면 우선 ‘기념’할 만한 배경을 정한 뒤 멋진 포즈를 취하고는 ‘하나, 둘, 셋!’ 하는 순간에는 숨까지 멈췄다. 그것도 모자라 구경하는 사람들로부터 한두 마디 충고까지 들었다.

    그래서 1970~80년대의 앨범 속에는 위인들의 동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그렇게 많으며, 남의 ‘포니 자가용’에 슬쩍 손을 얹고 포즈를 취한 사진도 그처럼 많았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하는 작가 임흥순(35)의 세 번째 개인전 ‘추억록’(7월22일까지, 일주아트하우스)은 바로 그 시대를 추억하는 작업이다.

    ‘추억록’-제대하는 군인에게 주는 사진첩에서 모티브를 따온-은 ‘사진집Ⅰ’ ‘사진집Ⅱ’ ‘가족사진’으로 이뤄진다. ‘사진집Ⅰ’은 어머니의 사진들을 통해 한국의 70~80년대를 들여다본다. 그 시절 여성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살림에서 벗어난 순간을 기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껏 멋을 부린, 그러나 늘 조신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어머니는 때로 급하게 나왔는지 ‘쓰레빠(슬리퍼)’를 꿰어 신고 있다. ‘사진집Ⅱ’는 아버지의 사진이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평생 노동의 짐을 진 그는 남자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또 이상하게 그 시절엔 음식을 앞에 두고 찍은 사진이 많아 아버지는 때로는 맥주와 치킨을 들고, 때로는 막걸리를 들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전시장 정면 오른쪽 화면에서 ‘사진집Ⅰ’ ‘사진집Ⅱ’가 슬라이드 쇼로 보여지는 동안, 왼쪽 화면에서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가족사진’이 상영된다. ‘가족사진’은 2003년 작가의 가족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 상황을 연출한 작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진관 직원의 까다로운 요구에 아무 소리도 못한 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인내심과 덤덤한 표정은 젊은 시절의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Ⅰ’ ‘사진집Ⅱ’와 묘하게 어울리며 너무나 강렬하게 관람객의 마음을 자극한다. 기념사진을 찍는 상황을 통해 관람객은 70년대 근대화의 ‘산업역군’이기를 강요당하며 희생된 청춘들의 창백한 시체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미대생들은 대개 2학년 때부터 내가 누구인지를 묻고, 그 주제를 작품으로 풀어내려고 하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시대상에서 찾기도 하는데, 제 경우 가까이에서, 가족에게서 그 뿌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지요.”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개인의 일상’을 낯설게 하는 방식을 통해 미술로 구현한다. 임흥순도 그 맥락에 닿아 있지만, 그의 특별한 힘은 가족과 자신을 구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노골적으로 미술의 신비주의 전략을 폭로한 데 있다.

    그는 지하 단칸방에서 임대아파트로 이사하는 작가 가족의 모습(‘내 사랑 지하’)을 비디오로 찍은 작품으로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같은 비디오 다큐멘터리들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찍어 메시지를 전하는 다큐멘터리보다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삶을 사회와 역사적 상황 속에 실존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추억록’이 보여주듯, 너무나 깊고 생생하다.

    미술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임흥순의 전략은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미술은 텍스트 없이 자기 언어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이미 그는 이 문제와 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네 번째 개인전을 기다려보기로 하자. 문의 02-2002-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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