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4

2003.07.24

“양심에 굵은 털” … TV 홈쇼핑 맛 좀 볼래?

허위·과장에 가격 속이고 표시 위반 비일비재 … 솜방망이 행정처분 속임수 부추겨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3-07-1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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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에 굵은 털” … TV 홈쇼핑 맛 좀 볼래?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광고 덕분인지 주요 홈쇼핑사는 연매출 1조원에 육박하는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구매가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소비자들은 홈쇼핑에 빠지기 쉽다.

    Scene #1 “연평도 앞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게로 만들었습니다. 간장게장 4kg을 9만9900원에 판매합니다.”

    40대 주부 김모씨는 한 TV홈쇼핑을 시청하다가 군침 도는 게장 광고를 보게 됐다. 화면 속의 출연자들은 속이 꽉 찬 게의 속살을 보여주며, 게 등껍질을 그릇 삼아 맛있게 게장에 밥을 비벼 먹는 중이었다. 쇼 호스트는 “이렇게 신선한 게는 처음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면에 비친 게 한 마리면 밥 한 공기는 뚝딱일 것 같았다. 김씨는 문득 최근 식욕이 없어 고생하는 고등학생 아들을 떠올렸다. 아들 녀석에게 먹이면 금세 입맛을 되찾을 거란 생각에 그는 망설임 없이 게장 한 통을 주문했다.

    이틀 후 김씨는 배달된 게장 용기를 들어 올리다 ‘제조년월일 라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갓 잡은 싱싱한 게로 만든 게장’은 사실 지난해에 만들어졌던 것. 분통이 터지는 일은 또 있었다. 게장 국물이 게보다 더 많은 무게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무게를 달아 보니 게의 무게가 1.3kg, 게장 국물의 무게가 2.7kg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홈쇼핑 업체에 항의전화를 걸었지만 “국물도 게장의 일부분이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Scene #2 “시중에서 130만원대에 판매하는 에어컨을 저렴한 가격, 단돈 79만원에 판매합니다.”

    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에어컨을 장만하기로 결심한 50대 주부 남모씨는 거실용 에어컨이 79만원이란 쇼 호스트의 설명에 귀가 번쩍 뜨였다. 평소 백화점을 둘러보며 봐둔 기종과 똑같은 에어컨을 홈쇼핑에서 훨씬 싼 가격에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뜰하게 상품을 구입했다고 뿌듯해하던 남씨는 에어컨 생산업체의 직원으로부터 홈쇼핑에서 파는 상품과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듣고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엄밀히 말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에어컨은 130만원짜리이고 홈쇼핑에서 파는 에어컨은 79만원짜리가 맞죠. 홈쇼핑용 에어컨은 정확히 79만원짜리에 맞는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겉모양은 같을지 몰라도 속의 부품은 가격에 맞게 선택된 거죠. 누가 밑지는 장사 하겠어요?”

    유통단계가 상대적으로 간소하기 때문에 TV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가격이 싸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할인점과 비교해보면 동일한 물건을 오히려 비싸게 파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홈쇼핑 업체들의 납품수수료는 25% 내외로 알려져 있는데, 할인점의 경우는 20%가 안 되는 곳도 많다.
    “양심에 굵은 털” … TV 홈쇼핑 맛 좀 볼래?


    “양심에 굵은 털” … TV 홈쇼핑 맛 좀 볼래?

    천연화장품 공방으로 법적 소송을 진행중인 화장품 수입사 ㈜게비스코리아(위)와 로뎀 화장품을 독점 판매해 지난해 300억의 매출을 올린 CJ홈쇼핑의 인터넷 홈페이지.

    Scene #3 “이 트레이닝복 자체에 콜라겐 성분이 함유돼 있어 피부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줘요.”

    다이어트와 미용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이모양은 TV홈쇼핑에서 늘씬한 여성들이 피부에 수분을 공급해준다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을 보며 구매 충동을 느꼈다. 운동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피부관리를 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솔깃한 것. 하지만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양은 쇼 호스트의 광고 멘트를 곰곰이 곱씹어봤다. 콜라겐 성분은 동물 뼈에 있는 단백질의 일종인데 이것이 수분 공급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쇼 호스트는 전문용어를 사용해가며 제품의 효과를 역설했지만, 그의 설명에 ‘과학적 입증’은 없었다.

    Scene #4 “M** 파리 링클 커버 크림, 피부의 주름을 확실히 감춰줍니다.”

    피부관리에 관심을 갖고 있던 50대 여성 송모씨는 TV홈쇼핑에서 눈길이 가는 광고를 보게 됐다. 브랜드 이름은 낯설지만 주름 개선에 좋은 새로운 프랑스제 기능성 화장품이 출시된 모양이었다. 화면에 등장한 모델 여성은 얼굴 한쪽에 이 크림을 바르고 나머지 한쪽은 바르지 않았다. 크림을 바른 얼굴 쪽이 훨씬 더 탱탱해 보이는 것이 효과가 그만인 듯 보였다.

    하지만 송씨는 주문한 물건을 받고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겉포장엔 ‘Paris’와 ‘Wrinkle Cover Cream(링클 커버 크림)’이란 단어가 적혀 있건만, 개봉해보니 제품은 한국산이다. 더욱이 ‘이 제품은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이 아닙니다. 본 제품은 1개 이상 개봉시에 반품이 불가하오니 유념하여 사용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설명서는 송씨를 기막히게 했다. 그는 프랑스 제품 같은 그럴싸한 포장에 속아 넘어갔지만, 이미 화장품 1개를 개봉하고 난 뒤라 반품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300억원어치 팔린 천연화장품서 방부제 논란

    위 장면들은 TV홈쇼핑 광고방송이 범하는 대표적인 잘못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첫번째 장면은 ‘허위·과장 광고의 잘못’, 두 번째는 ‘가격 속임수의 잘못’, 세 번째는 ‘품질 미확인의 잘못’,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표시 위반의 잘못’이다. 소비자들이 TV홈쇼핑 광고의 계산된 전략에 현혹돼 제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배달된 물건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홈쇼핑 업체들은 반품이 보장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개봉한 물품이나 일부 사용한 제품의 경우엔 구제받을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위에 언급된 4가지 거짓말 사례는 홈쇼핑 전문채널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문제는 승인받은 업체들 외에도 수천개의 홈쇼핑 업체들이 난립하며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품 대금만 받아놓고 사라지거나 건강보조식품을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는 유사 홈쇼핑 업체들도 허다하다.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 관계자는 “일부 유사 홈쇼핑 업체는 야바위꾼이나 약장수에 가깝다”고 말했다.

    최근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TV홈쇼핑의 과장광고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은 ‘천연화장품’ 논란 때문이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소시모)이 한국화학시험연구원에 의뢰한 검사에서 CJ홈쇼핑이 판매해온 한 천연화장품에서 방부제가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 화장품은 지난해에만 300억원어치가 팔린 인기상품으로, 쇼 호스트는 화장품이 천연성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킨을 직접 마셔 보이기도 했다.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소시모의 발표를 듣고 발끈한 것은 당연지사.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CJ홈쇼핑은 즉시 ‘과장광고’ 부분에 대한 사과방송을 내보내고 반품·환불 조치에 들어갔지만, 화장품 수입사인 ㈜게비스코리아측은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동 연구소와 한국의약품시험연구소에 재검사를 요청해 소시모와 반대의 결과를 얻어냈다. 천연화장품 3종에서는 방부제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 소시모와 생산업체 간의 ‘방부제’ 공방은 법적 소송으로까지 치달을 전망이다.

    그러나 ‘방부제 공방’은 뒤로 하더라도 이 제품의 과대광고가 정도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인터넷 사이트 ‘로뎀사태대책모임카페’(cafe.daum.net/ro111)에서‘진실은 밝혀진다’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 네티즌이 “유럽에서 유명하다는 로뎀이 프랑스 화장품 수백 종을 모아놓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왜 빠졌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게비스코리아측은 “로뎀 화장품이 ‘파니스 안젤리쿠스’사에서 생산돼 적법한 절차를 통해 팔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 광고에서 쇼 호스트는 제품을 소개하며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선진국 여성들이 화장품의 효능을 체험하고 인정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 여성이 인정한 명품 화장품’이란 문구는 ‘100% 천연화장품’이란 문구와 더불어 시청자들의 소비심리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이 화장품을 구입했다는 우모씨(28·서울 노원구 중계동)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씁쓸해했다. “화장품이 천연임을 증명하기 위해 쇼 호스트가 스킨 속에 금붕어를 집어넣었던 장면을 기억한다”며 “환불을 받긴 했지만 홈쇼핑사의 과대광고에 속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소시모 송보경 이사는 “방송위의 솜방망이 같은 행정처분탓에 홈쇼핑 업체가 허위·과장 광고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며 “현재 ‘500만원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인 처벌규정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홈쇼핑 업체가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를 한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업체 스스로 검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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