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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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인형 장수 비결은 ‘끝없는 변신’

얼굴 몸매 의상 등 시대 흐름 따라 ‘바꿔 바꿔’ … 90년대 들어 건강미인 스타일로 정착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7-02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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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비인형 장수 비결은 ‘끝없는 변신’

    마텔사가 새로 내놓은 인형 ‘마이씬’(맨 왼쪽·가운데)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변신한 바비인형(맨 오른쪽).

    어린 여자아이가 있는 집에는 대개 한두 개 이상의 바비(Barbie)인형이 있다. 비정상적인 몸매로 아이들에게 미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든지, 여성성을 지나치게 극대화했다는 비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바비인형은 여전히 여자아이들의 다정한 친구다.

    그러나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이 조그만 인형 바비는 코카콜라나 나이키, 맥도널드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브랜드다. 바비인형의 제조사인 마텔(Mattel)사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56개국의 지사를 통해 매년 3억개의 바비를 판다. 지금도 매 초당 3개씩의 바비인형이 전 세계 어딘가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다른 완구회사들이 바비와 유사한 패션 인형을 출시한 경우도 많았지만 이들은 바비의 아성을 위협하지 못한 채 3, 4년을 못 버티고 시장에서 사라지곤 했다.

    1959년 탄생 이래 40년이 넘도록 ‘인기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바비인형에는 어떤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일까. 마텔 한국지사의 폴 크리스토퍼슨 지사장은 “마텔은 초창기 TV를 이용한 마케팅 활동으로 큰 효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바비가 소비자들에게 알려진 60년대 초반은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TV 아동물 시리즈가 막 등장했을 때죠. 이때 마텔사는 파격적으로 TV 광고를 내보내 시청자들에게 ‘세계 최초의 패션 인형’이라는 바비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최근 들어 완구업체들은 영화 등 미디어 산업과 손잡고 전략적인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 ‘해리 포터’의 개봉과 동시에 해리 포터 비디오게임 등 관련 신상품을 일제히 출시하는 식이다. 마텔은 미디어 마케팅의 위력을 이미 반 세기 전에 안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만수 부연구위원은 “‘인형 하면 바비’ 하는 식으로 최초 선점효과가 컸던 것이 바비인형이 지금껏 인기를 얻고 있는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에서 매 초당 3개씩 팔려



    바비인형 장수 비결은 ‘끝없는 변신’
    그러나 이처럼 차별화한 마케팅 전략이 바비의 인기를 전부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왜 소비자들은 바비라는 단일 아이템에 대해 40년이 넘도록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일까. 완구는 어느 산업 못지않게 유행에 민감한 분야다. 예를 들면 90년대 ‘닌자 거북이’가 인기를 얻었을 때 가방과 연필, 옷과 신발, 게임기 등 아이들이 쓰는 모든 제품에는 닌자 거북이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어디서나 눈에 띄는 닌자 거북이에 곧 싫증을 냈고, 닌자 거북이의 매출은 급격히 감소하고 말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하나의 브랜드 컨셉트를 중간에 바꾸지 않은 것이 바비의 인기 비결”이라고 말한다. “한창 유행하는 댄스음악을 하는 가수들의 음반은 나오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팔려나가죠. 하지만 2, 3년만 지나면 대중은 그 가수의 이름조차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반면 비틀스의 음반은 항상 많이, 그리고 꾸준히 팔려나갑니다. 오래가는 브랜드들에는 대개 비틀스 같은 특성이 있죠. 좋은 품질과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 성향이 그것입니다.”

    바비인형 장수 비결은 ‘끝없는 변신’

    ‘마이씬’런칭쇼에 등장한 인형들(위)과 인형수집가 박찬씨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은 바비인형.

    실제로 바비인형은 언제나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소비자들의 착각이다. 바비는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했다. 얼굴 역시 네 번 정도 변화했고 헤어스타일과 몸매는 수없이 바뀌었다.

    바비는 시대의 변화에도 민감하다. 비틀스가 유행하던 60년대에 바비는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차림을, 디스코 열풍이 분 70년대에는 화려한 반짝이 패션을 선보였다. 90년대 들어서는 스포츠를 즐기는 건강 미인 스타일로 변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21세기 들어 바비를 비롯한 인형들이 더욱 서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비는 금발에 푸른 눈인 백인 모델 외에도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의 네 가지 종류가 있다. 한복을 입은 바비인형이 국내에 출시된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비자들은 더욱 백인 바비인형을 찾는 추세라고. 완구업체인 ‘지나월드’의 유영대 사장은 “오히려 90년대에는 서양 인형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으나 이제 그런 거부감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신호에서 ‘거대 완구업체들이 그동안은 나라와 지역별로 머리, 피부색을 달리한 인형을 판매해왔다. 그러나 이제 전 세계 아이들은 똑같은 인형을 좋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완구업체들의 장난감 디자인도 더욱 규격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마텔이 21세기를 맞아 전 세계에 출시한 프리틴(pre-teen) 대상 인형 ‘마이씬(My Scene)’은 각기 메디슨, 바비, 첼시라는 이름을 가진 전형적인 뉴요커 스타일의 인형들이다. 이 인형은 한국의 사전 시장조사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이들 인형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의 세계에서조차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위력이 새삼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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