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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오! 청계천

“청계천 商魂, 다시 뛸 밑천”

‘청계천을 …’ 이응선씨와 골목 돌아보기 … “납품 상인들 어딜 가든 살아남을 것”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청계천 商魂, 다시 뛸 밑천”

“청계천 商魂, 다시 뛸 밑천”

‘청계천을 떠나며’의 저자 이응선씨가 20년을 먹고 산 청계천 골목에서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멀리 세운상가가 보인다.

”청계천 사람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대학 졸업 후 줄곧 청계천을 무대로 장사를 해온 이응선씨(49)가 ‘청계천을 떠나며’(황금가지 펴냄)를 쓰게 된 동기다. 이씨는 20년 동안 이곳에서 화학약품 납품, 공장자동화기기 오퍼상 등을 하다 냉·난방설비 용수처리장치 수입 대리점을 끝으로 2003년 5월 장사를 ‘접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순전히 장사를 잘 못해서”다.

그에게 청계천은 애증이 얽힌 곳이다. 지난해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공약을 놓고 찬반 논란이 한창일 때, 공약하는 쪽이나 그 현실성을 따지는 쪽이나 모두 청계천에서 장사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장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그는 못내 섭섭했다. 청계천 사람들의 후줄근한 차림새, 기름때 낀 상품들, 누추한 가게들이 복원 후 산뜻해질 청계천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하지만 그는 “더럽고 복잡하게 뒤엉켜서 돌아가는 청계천도 엄연한 한국의 현실”이라는 항변 아닌 항변을 ‘청계천을 떠나며’에 담았다.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세운상가 방향 도로변과 뒷골목에 형성된 청계천이다. 주로 계측기와 이화학기기를 제조·판매하는 업체들이 골목골목 자리를 잡고, 양 옆으로 금은 보석·시계·카메라 상가와 의료기기 전문상가가 포진해 있다. 이곳이 ‘납품의 메카’ 청계천이다. 장사꾼들이 말하는 청계천이란 청계1가니 8가니 하는 청계천말고도 종로, 을지로 일대 그리고 그곳을 연결하는 뒷골목을 통칭한다. 영화 세트장에서나 봄직한 낡은 간판을 내건 구멍가게 수준의 점포, 혹은 벽과 문 틈 사이로 속이 내비치는 허술한 사무실에서 한 달 매출이 보통 수천만원, 그들 말로 ‘좀 크게 하는’ 곳은 억대가 넘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외지인들은 길을 잃을까 두려워 선뜻 들어서기가 꺼려지는 청계천 뒷골목을 이응선씨와 함께 걸어보았다.

청계천에는 돈이 흐른다



청계천에 터를 잡은 업체 사장들이 묻지 않아도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돈 벌려고 청계천에 왔다.” 젊은 직원들에게 겉멋은 집어치우고 오로지 돈 버는 일에 전력을 다하라고 던지는 충고지만, 평소 스스로 하는 다짐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청계천 사람들이 대칭점에 두는 것이 학자, 의사, 변호사 같은 ‘잘난 사람들’이다. 이씨가 들려주는 ‘청계천 업자’와 ‘잘난 사람’ 구분법이 재미있다. 무식과 유식, 조잡함과 세련, 무례와 교양, 저질과 고상함. 청계천 업자는 모욕적일 수도 있는 이런 구분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니, 개의치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옳다. 그러나 여기에도 청계천의 자부심이 숨어 있다. 잘난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세상을 더 험하고 더 솔직하고 더 화끈하게 산다는 자부심이다. 또 잘난 사람들에 대한 반감과 비아냥거림도 배어 있다. 자기들은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고 쳐도, 배웠다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면 지위나 차지하고 있을 뿐 생산성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물건 없이도 파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세운상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파리 날리는’ 가게들을 자주 본다. ‘저렇게 장사해서 밥이나 먹고 살까’ 하겠지만 이곳의 생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특히 세운상가 서쪽 지역에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체를 상대로 하는 납품 기업들이 몰려 있다. 한 달에 몇 번,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어치 단위로 물건을 모아 파는 식으로 장사를 하니 평소에는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인다.

이응선씨는 청계천의 납품업에 대해 “먼저 팔고 나중에 산다”로 요약한다. 청계천 장사는 거래처에서 견적 의뢰를 받아 가격을 조사하고, 자기 이익 붙여서 견적을 내고, 발주를 받고, 물건을 사고, 납품하는 순서로 이뤄진다. 물건도 없는 사람이, 누가 물건을 사준다면 물건을 사서 팔겠다고 영업을 하는 곳이 청계천이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있으랴. 이렇게 장사해서 건물이 3채요 100억대 재산가가 됐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밑천 없이 말만 할 줄 알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납품장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돈 벌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청계천 商魂, 다시 뛸 밑천”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화끈한 게 청계천 업자의 특징이지만 거래에서는 ‘선문답의 달인’이기도 하다. “장사가 무엇인지 안다(거래에 뇌물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 “거래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거래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뒷돈이 필히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상도를 어긴 적이 없다(나도 양심이 있다. 혼자 다 챙기지는 않는다)”는 말을 상대와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수준이 돼야 청계천에서 ‘장사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전쟁 직후 이북 출신들이 상권을 장악했지만 지금은 특별히 선거 때가 아니고는 지역색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 청계천이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충청도 사람이 많고 장사도 잘 하는 편”이라고 이씨는 귀띔한다. “말은 아끼고 눈치는 빨라야 하는 것이 청계천 장사인데 그것이 이들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그 뜻이 마흔 가지도 넘는다는 심오한 “됐시유”와 “냅둬유”가 그들의 청계천 생존법이다.

청계천의 사람 냄새

청계천 사람들은 쉽게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빈 몸뚱이로 청계천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이들이기에 손 벌리기 전에 일할 것을 강조한다. 또 직원을 쓸 때도 ‘어렵게 고르고, 가혹하게 부리고, 아니다 싶으면 단호하게 자르는’ 청계천의 비정함이 작용한다.

사실 눈으로 보기에도 험악한 청계천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마음먹고 찾아오지만 사흘을 못 버티고떠나버린다. 이 대목에서 이응선씨와 오랫동안 한 건물에서 동고동락했던 ‘가스텍’ 문진만 사장이 거든다. 가스텍은 국내 공해측정기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탄탄한 회사다. 문사장은 “골목에서 젊은 여자 보기가 힘들죠? 사람 구하기 힘드니까 아예 부부가 함께 나와 일하는 곳이 많아요.” 22년 전 청계천에 들어온 문사장도 사장 혼자 영업하고 배달하고 결재하는 ‘일인회사’로 출발했다. 여직원 한 명 채용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던지 한번은 채용한 지 사흘 만에, 한번은 일주일 만에 직원이 회사를 그만뒀다. 그래서 청계천의 ‘입사’는 알음알음 소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일단 입사 후 야무지게 일 잘하면 직원이기 전에 식구로 받아들인다. 문사장은 그렇게 8년간 함께 일한 여직원, 6년 반을 함께 한 여직원을 피붙이 떠나보내듯 시집 보냈다.

오래도록 직원의 사람됨을 파악한 후 아예 사업을 물려주는 이도 있다. 이응선씨와 같은 건물 1층에 있던 ‘화공약품’ 가게가 화제에 올랐다. 한국전쟁 때 육군 상사였다는 이북 출신 사장은 직원들을 엄격하게 대하기로 유명했지만 몇 년 전 가게를 옮기며 원래 있던 가게를 직원에게 물려주었다. 직원이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이가 차면 독립을 시키는 게 청계천의 미덕이요 인심이다. 거래선을 떼어주거나 지방에 지사를 차려 내려보내기도 한다. 어찌 청계천에 흘러 들어왔든 한번 내 식구가 됐으면 ‘남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생각이 오늘날 거대한 청계천을 만드는 데 기여했는지도 모른다.

이응선씨는 청계천의 납품장사가 이미 쇠락하고 있는, 수명이 다한 업종이라고 말한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납품장사는 청계천으로 통한다’는 시장의 집중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청계천은 사라질 수 없는 서울의 심장부라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 복원 문제가 나오자 이씨는 이렇게 말한다. “청계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 질긴 생명력이 청계천의 에너지원이다. 이씨는 “근면성, 삶의 기교라는 면에서 청계천 사람들은 절대 하찮은 인생이 아니다. ‘청계천을 떠나며’는 나의 마지막 장사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주간동아 392호 (p16~17)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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