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1

2003.07.03

이태섭 “북한에도 라이온스클럽 생겼으면…”

국제라이온스협회 회장 취임 앞둔 이태섭 전 의원 “봉사맨·민간외교관 1인2역 감당할 터”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6-26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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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섭 “북한에도 라이온스클럽 생겼으면…”
    7월4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리는 국제라이온스협회(이하 라이온스) 제86차 총회에서 세계회장에 취임하는 이태섭 내정자는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계 최대의 비정부기구(NGO)이자 봉사단체인 라이온스 86년 역사를 통틀어 한국인으로는 첫번째, 동양인으로는 세 번째 회장이라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데도 그가 쑥스러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내정자는 이미 2년 전인 2001년 7월 국제 담당 제2 부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사실상 다음번 회장직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라이온스는 관행상 임기 2년의 국제이사를 거친 33명 중 선출된 제2 부회장이 제1 부회장을 거쳐 세계회장으로 자동 선출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렇게 따지면 “축하한다”는 인사는 이미 2년 전에 이 내정자에게 건넸어야 마땅한 셈이다.

    한국인 최초, 동양인으론 세 번째 영예

    “라이온스는 191개 국가에 140만명의 회원이 있는 세계 최대의 NGO입니다. 우리나라는 미국, 인도,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회원이 많은 나라고요.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는 라이온스 활동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내가 회장이 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통해서 라이온스 활동이 한국에 좀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라이온스(LIONS)’는 ‘자유(Liberty), 지성(Intelligence), 우리(Our), 국가(Nation’s), 안전(Safety)’의 영문 이니셜을 각각 따서 만든 약자. 1917년 미국 시카고에서 멜빈 존스가 창설한 이후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1925년 장애인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는 헬렌 켈러 여사가 라이온스 대회에 참석해 “라이온이여, 어두운 암흑의 문을 여는 십자군 기사가 되어다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이후로는 시각장애인의 개안(開眼)수술을 위해 세계 각국에 안과병원을 짓는 등 시각장애인 지원 활동에 힘쓰고 있다. 평양에도 내년 6월 준공을 목표로 80병상 규모의 ‘평양 라이온스 안과병원’을 짓고 있다. 라이온스 역사상 첫 한국인 회장인 탓에 평양 사업에 거는 이 내정자의 기대 또한 각별하다.



    “지구상에서 라이온스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쿠바와 북한 정도밖에 없습니다. 중국에서도 지난 6년간 250만명에게 개안수술을 해준 뒤 지난해 처음으로 라이온스가 생겨났습니다. 봉사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 20명만 있어도 만들 수 있는 것이 라이온스예요. 중국의 경우를 보면 북한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지요.”

    물론 라이온스 회장이라는 역할이 모국(母國)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모국에 국한되기는커녕 임기 1년 중 가족들과 함께 집에 머물 수 있는 날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 이 내정자는 “역대 라이온스 회장들의 활동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자국에 머문 기간이 1년 중 20일을 채 넘지 못하더라”고 전했다. 나머지 345일은 세계 각국 라이온스클럽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회장의 가장 큰 역할이다.

    이태섭 “북한에도 라이온스클럽 생겼으면…”

    이태섭 차기 회장은 “한국이 라이온스클럽 회원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나라인데도 라이온스 활동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한 봉사단체이기는 하지만 방문국에서의 예우도 상당하다. 라이온스 회장이 방문하면 그 국가의 수반은 해외 체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면담에 응해주는 것이 관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도 한국을 방문한 라이온스 회장들을 반드시 청와대로 불러 면담을 했다. 이 내정자 역시 “이러한 지위를 십분 활용해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내정자가 라이온스 세계회장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그가 지난 28년 동안 회원으로서 봉사해온 경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회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무언가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중간중간 우연찮은 계기로 중책을 맡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게 그의 설명. 1993년 한국에서 라이온스클럽 동남아대회를 개최할 당시에는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갑자기 집안 사정으로 그만두는 바람에 ‘얼떨결에’ 떠밀리듯 ‘대타’로 대회를 치러내기도 했다. 또 회장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제이사 역시 그 당시 선임이 유력시되던 한 인사가 공금을 유용해 구속되면서 ‘총대’를 메게 된 경우.

    그러나 일단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 각종 라이온스 행사를 빼놓지 않고 쫓아다니는 등 열과 성을 다했던 것이 이 내정자의 오늘을 있게 했다. 80년대 중반 과학기술처 장관 재직 당시 그는 라이온스 전국 복합지구 의장도 겸임하고 있었다. 4∼5월 집중적으로 열리는 각 지구별 연차대회를 순회하던 중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전주와 부산에서 행사 일정이 잡혔다. 물리적으로 두 군데 모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청와대 경호실에 협조를 요청해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두 군데 행사에 모두 참석하는 ‘고집’을 부렸다.

    이러한 ‘사건’은 그 후 이 내정자가 라이온스의 주요 임원에 추천될 때마다 그를 천거하는 회원들이 단골로 애용하는 사례가 됐다. 공익적 봉사활동에 적합한 인물로서 그만한 열정과 적극성보다 더 큰 자산은 없었다.

    그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말이 ‘엘리트’라는 ‘수식어’다. 경기고 1학년 때 대입 검정고시 합격, 메사추세츠공과대(MIT) 최연소 최단기 박사학위 취득 등 그의 이력 앞에는 늘 ‘수재’ 또는 ‘우등생’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오죽하면 지난해 펴낸 자서전에까지 ‘한국의 우등생’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게다가 4선 의원까지 지냈으니 정치적으로도 꽤나 성공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마무리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2000년 총선 때 경기 수원 장안에서 자민련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시 수서 사건과 관련해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대상에 올랐던 게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이 내정자가 총선에서 탈락하자 이를 반기고 나선 사람도 있다. 바로 라이온스의 국내외 주요 임원들이다. 그의 총선 탈락은 곧 라이온스 업무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낙선하자 해외에서 그의 낙선을 ‘축하하는’ 전보가 쇄도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2001년 제2 부회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회장 준비작업에 들어가는 데도 국회의원에 떨어진 게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며 그는 껄껄 웃었다.

    이태섭 차기회장 내정자는 내년 5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는, 현재 맡고 있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직도 내놓을 예정이고, 자민련 수원 장안지구당 위원장이라는 정치인으로서의 ‘마지막’ 타이틀도 마땅한 사람이 나타나면 미련 없이 넘겨줄 생각이다. 국제라이온스협회장은 1년 내내 외국을 돌면서 생활해야 하는 ‘숙명’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밝히는 ‘정치인 이태섭’의 표정은 비장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새로운 일에 들떠 있는 청년 같았다. 7월4일 국제라이온스협회장에 취임하는 그는 10일 일시 귀국한 뒤 14일 일본으로 출국해 해외 활동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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