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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들의 유쾌한 반란

‘퀴어문화축제’ 종로에서 성황리에 개최 … 편견과 차별 뛰어넘어 세상 속으로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동성애자들의 유쾌한 반란

동성애자들의 유쾌한 반란

탑골공원을 출발한 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 행렬

동성애자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 K씨는 6월 중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동성애자 활동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두 명의 레즈비언과 계약결혼할 게이 남성 커플을 찾는다’는 게 주된 용건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두 명의 레즈비언이 ‘결혼하라’는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마음에도 없는 이성과 결혼하기보다는 ‘계약결혼’을 택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것. 그들은 ‘게이와 레즈비언이 계약결혼을 한다면 서로의 숨겨진 고통을 이해하고 각자의 사랑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동성애 커플’에 대한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은 말 못할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특이한’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 우리나라의 동성애자들이 거리로 나와 ‘멈춰진 것, 숨죽인 것, 외면당한 것’에 대해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성적 소수자들의 특별한 축제, ‘퀴어문화축제-무지개 2003’이 6월20일부터 서울 종로 일대, 이태원, 광화문 등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대표 홍기훈·이하 퀴어문화제 조직위)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등 20여개의 성적 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을 비롯 1000여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는 4년 전 20~30여명이 참가했던 1회 축제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수치다. 종로거리 퍼레이드, 토론회, 영화제, AIDS 포스터 전시회 등 다채로운 이벤트로 구성된 퀴어문화축제는 아직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우리 사회에 유쾌한 ‘반란의 장’을 마련했다.

다양하게 분장하고 거리 퍼레이드

동성애자들의 유쾌한 반란

이동무대에 올라선 동성애자들의 화려한 분장은 종로를 지나던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번 축제의 슬로건인 ‘움직여!’는 ‘침묵은 죽음이며, 사회에 끊임없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동성애자들의 인식을 담고 있다. 눈 막고 귀 막아 벽장에 가두어둔 그들의 ‘움직임’을 세상 모든 편견과 억압, 두려움에 맞서도록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이 축제의 목표인 것. 지난해부터 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기 시작한 퀴어문화축제는 한층 안정된 모습으로 성적 소수자들을 북돋웠다.



퀴어문화축제의 포문을 연 행사는 ‘스톤월 항쟁 기념 토론회’. 20일 오후5시 반, 고려대 이공계 캠퍼스 과학도서관 5층 강당에서 ‘스톤월 항쟁과 반전운동’ ‘왜 동성애자는 억압받는가’ ‘한국 동성애자운동과 미래’라는 세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이 이뤄졌다. 중앙대 ‘레인보우피쉬’의 대표 지혜씨는 ‘왜 동성애자는 억압받는가’라는 발표문을 통해 “동성애에 무지한 한국 사회는 동성애를 억압해 결국 한 10대 동성애자를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동성애는 윤리적 혹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금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혹은 ‘동성애자는 에이즈의 주범이다’라는 식의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동성애자를 ‘비정상’으로 구분짓게 한다는 것.

이번 축제의 절정은 바로 6월21일 오후 4시부터 종로 일대에서 벌어진 ‘퀴어 퍼레이드’였다. ‘종로’는 동성애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탑골공원 뒤쪽 종로3가, 즉 파고다 극장에서 허리우드 극장을 지나 비원 앞길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업소가 밀집해 있다. 숨어서 은밀히 만나던 동성애자들은 이곳을 행진하며 마침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종로를 ‘동성애자들의 거리’로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유쾌한 반란

‘친구사이’의 ‘마린보이’ 팀은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율동을 선보였다.

탑골공원에서 시작해 국세청 건물을 거쳐 한미은행 앞까지 행진한 퍼레이드 행렬로 이 일대는 무지개 깃발과 1000여개에 달하는 분홍색 풍선의 물결로 뒤덮였다. 무지개 깃발은 동성애자 사회의 다양성을 표현한다. ‘마린보이’ ‘마녀’ 등 재기발랄한 분장을 한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 힘찬 걸음을 재촉했다. ‘I am gay.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너보다 더…’라고 씌어진 피켓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불행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하는 듯했다.

행사에 참가한 퀴어문화제 조직위의 송승민씨는 “헤테로(이성애자)인 나도 이 퍼레이드에 누구보다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며 “동성애자 이성애자 구분 없이 모두 유쾌하게 즐기자는 것이 바로 이 퍼레이드의 의미”라고 말했다. ‘친구사이’의 김병석씨는 “퍼레이드를 통해 동성애자들은 맘껏 즐기며 슬픔을 씻어낸다”면서 “이 사회에서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즐겁게 논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에이즈 포스터展 큰 관심 끌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행사는 ‘세계 HIV/AIDS 포스터 전시회-With or Without HIV/AIDS’다. 23일부터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 역내 활력연구소와 광화문 흥국생명 일주아트하우스에 전시된 에이즈 포스터는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전시회를 준비한 iSHAP(Ivan Stop HIV/AIDS Project)의 김현구 팀장은 “지금까지 부정적이고 불쾌한 질병으로 인식돼 왔던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고 싶었다”면서 “사람들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AIDS란 질병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재치 있는 각국의 AIDS 예방 포스터를 한자리에 망라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곳에 전시된 포스터들은 ‘구명조끼 모양의 콘돔’을 보여주는 등 발랄한 상상력을 자랑한다. 김팀장은 이 전시회를 통해 동성애자들과 AIDS의 상관관계에 대한 일부의 오해를 풀고자 했다.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AIDS를 전파하는 주범”이라고 치부해버리지만, “사실 AIDS 바이러스의 감염은 콘돔의 사용을 통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는 “HIV 감염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동성애자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먼저 사라져야 AIDS의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행사를 총지휘한 홍기훈 위원장은 “퀴어문화축제는 퀴어 커뮤니티를 사회에 알리고 확대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동성애자 사회 내부의 단합을 이끌어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면서 “이번 행사가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391호 (p42~43)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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