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1

2003.07.03

“온라인 책시장 분명히 승산 있다”

‘예스24’ 인수한 한세실업 김동녕 사장 “종합쇼핑몰 전환 계획 없어 … 매출보다 수익 중점”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6-25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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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책시장 분명히 승산 있다”

    김동녕 사장(58)은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아버지부터 사촌들까지 집안 식구 가운데 20여명이 학자요 교수일 만큼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덕분에 “책과는 꽤 인연이 있는 편”이라고.

    5월11일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 ‘예스24’(www.yes24.com)가 한세실업에 매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출판계는 술렁였다. 한세실업은 예스24 지분 428만2000주와 전환사채 22억원어치를 221억원에 인수해 12월 주식으로 전환될 전환사채분을 포함 총지분 53.8%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당장 출판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의류업체가 예스24를 인수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한세실업은 의류 수출을 한다는 것 외에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업체. 머지않아 예스24가 서점 영업을 포기하고 종합쇼핑몰로 바뀔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언론과의 접촉을 아끼던 한세실업 김동녕 사장(58)을 서울 양재동 예스24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사장은 예스24 인수 후 줄곧 오전시간은 여의도 한세실업에서, 오후는 양재동 예스24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한 달 동안 충분히 업무 파악을 끝낸 까닭일까. 소탈한 학자풍 외모의 김사장은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또박또박, 솔직하게 예스24 인수 경위를 설명했다.

    -출판계는 의류업체가 무슨 목적으로 예스24를 인수했는지 궁금해한다.

    “몇 년 전부터 한세실업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국내 패션업체 인수를 계획했고 실제 쌍방울과 세계물산은 인수 직전까지 갔었다. 특히 쌍방울은 100% 다 된 줄 알았다가 실패해 실망이 컸다. 그 후 생각을 넓혀서 미래산업이라는 이커머스(e-commerce) 쪽을 연구했다. 패션 쇼핑몰을 시작해 화장품, 포털사이트를 공부하다가 인터넷 서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사장은 자신이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과 고모부와 조카 사이라고 밝혔다. 덕분에 인터넷 서점의 경영여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편이지만, 예스24 인수는 우연이라고 강조한다. “신문에 포털사이트 다음이 예스24를 인수한다는 기사가 나 관심 있게 지켜보았는데 협상이 결렬해 곧바로 우리가 뛰어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왜 한세실업은 적극적으로 사업 다각화를 도모했을까. 1982년 설립한 한세실업은 미주지역에 OEM 방식으로 의류를 수출하는 회사로 사이판, 니카라과, 베트남에 생산기지(현지법인)를 두고 갭, 시어즈, 타겟, 월마트, 브룩스 브라더스 등 미국 유명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에 납품을 하고 있다. 지난해 3800만장의 의류를 수출해(올해 목표 4600만장) ‘미국인 7명 중 1명은 한세 옷을 입는다’는 광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IMF 외환위기 때도 20%의 성장세를 유지해 저력 있는 중소기업으로 인정받았고 올 예상매출액은 3000억원에 이른다. 1993년 코스닥 등록 후 2000년 증권거래소로 옮겨 한세실업의 주식은 늘 투자 유망종목으로 꼽혀왔다.

    -의류 생산 외길을 걸어왔고 부채 없는 경영으로 유명한 한세실업의 경영원칙은 무엇인가.

    “1972년에 창업했으니 아주 젊은 시절이었다. 79년 한 번 실패를 하고 82년에 다시 시작해 20년 넘게 이 길을 걸었다. 물론 그때도 의류 수출을 했지만 은행에 기대지 않고 규모에 관계 없이 이익을 많이 내는 회사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부도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본인의 좌절감과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사람들까지 괴롭히는 일이다. 82년부터 지금까지 이익을 적게 낸 일은 있어도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은 없다. 이익을 내면 공장 재투자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상당한 이익을 내서 사내 유보금이 조금 생기자 사옥을 사야 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해외에 공장 짓는 데만 주력했다. 그러나 상장회사이다 보니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들이 그 자금을 은행에만 두지 말고 신규투자를 해야 한다고 요구해서 등 떠밀린 감도 없지 않다.”

    “온라인 책시장 분명히 승산 있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의 경영상황은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당장 예스24만 해도 지난해 매출 998억원에 93억원의 손실을 기록하지 않았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인터넷 서점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경영 패러다임을 바꿀 수만 있다면 굉장히 밝다. 특히 물류 인프라 측면에서 인터넷 서점은 종합쇼핑몰을 능가한다. 인터넷 쇼핑몰들이 규모는 커도 대개 직배송에 의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인터넷 서점은 자체 물류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내부의 인적자원도 어떤 기업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검소하게 운영해왔기 때문에 거품도 없다. 이것을 기반으로 매출 위주의 경영이 아닌, 이익을 낼 수 있는 경영 쪽으로 방향을 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일을 추진할 생각이다.”

    -예스24를 종합쇼핑몰로 만들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인수 계획이 있는가.

    “종합쇼핑몰 계획은 없다. 기왕에 국내 최고의 인터넷 서점이니 그 이미지를 계속 가져갈 생각이다. 예스24가 온라인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능을 살려 문화상품에 주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당장 새로운 인수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다. 이미 우리 식구인 와우북(2002년 합병)의 콘텐츠를 차별화할 생각이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들은 출혈을 감수하면서 규모의 경쟁을 벌여왔다. 그것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나.

    “우선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 올해부터 실시된 도서정가제가 경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서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격할인을 많이 해서 매출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면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예스24나 알라딘 모두 가격경쟁을 하지 않고도 성장이 가능하다. 과거처럼 2배씩 성장하지 못할 뿐, 매년 20~30%씩 성장하고 있지 않나. 그만큼 고성장을 하는 비즈니스가 어디 있나. 그 정도만 유지하고 경쟁을 완화해나가면 이익을 낼 수 있다. 도서정가제로 온라인 서점이 피해를 보고 오프라인 서점이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고 하지만 온라인 서점도 분명 도움을 받고 있다. 다만 예스24는 좀더 효율적인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1년에 2배씩 늘어나는 회사이다 보니 사람을 늘리기 바빴다. 20~30% 성장에 머물면 인원 늘리는 일은 조심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예스24 정상우 부사장과 주세훈 홍보팀장이 거들었다. 주팀장은 “99년 설립 이후 예스24는 불패신화에 사로잡혀 있었다”면서 “주인이 바뀐 후 수익성에 대한 인식, 업무 긴장감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정사장도 “냉정하게 말해 회사가 돈을 잘 벌었다면 팔릴 리 없지 않느냐”며 “과거에는 인원 확보에 주력했지만 각 사업본부가 독립채산제로 가면서 지금은 최소 인원으로 어떻게 손익을 맞출 것인가 경영마인드로 무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예스24는 경영지원본부, 도서사업본부, 멀티사업본부, 고객만족본부, IT본부 등 5개 본부로 나뉘어 있다. 이강인 전 대표가 물러난 후 나머지 인력은 변동이 거의 없는 상태. 7월 초 주주총회에서 김동녕 사장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기업을 인수하면 모회사에서 점령군처럼 요직을 장악하지 않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김사장은 “예스24에 혼자 왔다”고 답했다.

    -최근 한세실업이 예스24에 운영자금 50억원을 대출했다고 알려졌는데 그 돈을 어디에 썼나.

    “예스24의 오프라인 서점인 골드북이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서점이라고 하는데 책값을 어음으로 주는 형편이었다. 온라인 서점은 현금결재를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판단해 그 부분부터 정리했다. 어음 나간 것을 다 현금으로 바꿔주고 대출도 정리했다. 일단 자금을 확보해놓고 필요한 부분에 쓸 계획이다.”

    -예스24의 구조조정 계획은 없나.

    “뉴콘텐츠팀이라는 동영상사업은 분사(分社)하려 한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물론 같은 건물 안에서 우리의 기자재를 가지고 일을 하지만 독립회사가 되는 것이다. 나머지 사업들은 계속 한다. 특히 콘텐츠 강화, 커뮤니티 강화는 매우 중요하다. 단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과 관련한 모든 문화가 결집된 공간이 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

    김동녕 사장은 1년에 25권 가량의 책을 읽는다. 시집 한 권은 꼭 읽고, 미술 관련 책, 소설, 경영서, 물리학, 인류학 분야의 책에 이르기까지 독서의 영역이 매우 넓다. 불황이라고 아우성치는 출판 시장에 대해서도 그는 매우 낙관적인 입장이다.

    “출판 시장은 2조원쯤 된다는 게 정설이다. 얼마 전 민음사 박맹호 사장을 만났는데 ‘책 시장은 항상 불황이라고 하지만 돌아보면 계속 성장해왔다’고 말씀하셨다. 단지 성장에 기복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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