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1

2003.07.03

‘민주당 사수 작전’ 노병의 파워

구주류 정균환 박상천 의원 주축 호흡 척척 … 신주류 기선제압 주도권 잡기 성공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06-25 14: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민주당 사수 작전’ 노병의 파워

    민주당 사수를 외치는 사람들. 박상천 최고위원(오른쪽 사진 맨 오른쪽)이 민주당 구파의 핵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정균환 총무, 의외로 능력 있는데….”

    신·구주류를 막론하고 이렇게 말하는 민주당 당직자들이 적지 않다. 5월17일 신주류 주도로 ‘신당추진 의원모임’을 구성할 때만 해도 민주당 발 정계개편은 곧 현실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아니었다. 신당을 창당하고 민주당을 해체하겠다는 신당 추진파의 로드맵이 공개되자 구주류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무회의 등 각종 모임에서 신·구주류는 어김없이 충돌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구주류는 한때 신주류에게 빼앗겼던 주도권을 사실상 되찾는 작은 승리를 쟁취했다. 승패를 결정짓기엔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민주당의 운명이 신주류 구상대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신주류의 공세를 치밀하게 막아내고 대책을 세우며 역공을 주도한 몇몇 인사들의 역할이 있다. 정균환 원내총무와 박상천 최고위원, 그리고 강운태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정균환 총무는 2000년 총선 이후 두 차례 원내총무 경선에서 당선된 구주류 중진. 한때 당내 최대계보 모임인 중도개혁포럼(이하 중개포)을 이끄는 등 활발한 계파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구주류 및 중도파 의원 대부분이 중개포 멤버로 활동한 바 있다. 소속의원들의 상임위 배정권을 갖는 원내총무라는 직위도 사그라들지 않는 정총무의 정치적 영향력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당 대응논리 ‘전당대회 소집론’



    하지만 정총무측은 “그런 평가를 인정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는 반응이다. 원내총무실의 박상병 정책연구위원은 “밖에서는 모르지만 정총무는 대단히 치밀한 사람이다. 하나의 사안에 대처하기 위해 오랜 시간 심사숙고한다. 신당론에 대한 대응논리를 마련할 때도 주위 조언자 그룹과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등 철저하게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정총무는 언론 인터뷰에 각별히 신경을 쏟고 있다. 민주당 신당론과 관련, 치열한 논전(論戰)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에 자신의 말 한마디가 국민에게 알려지는 과정도 꼼꼼히 챙긴다는 것.

    박상천 최고위원은 탁월한 이론가다. 박 최고위원은 야당시절 원내총무로 대여투쟁을 이끌었던 인물. 박 최고위원측은 스스로를 “협상가이지 투쟁가는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정치적 생존문제를 두고 신당추진세력과 당내 투쟁을 벌이면서 현장 전투 지휘자로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5월17일 신당추진 모임이 결성된 뒤 박 최고위원은 ‘민주당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이하 정통성 모임)이라는 구파 중심의 대응조직을 만들고 이 모임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박 최고위원은 6월12일 정통성 모임 회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신당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박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이란 민주당 내에서 민주당을 죽이고 만들려는 것”이라며 신당 창당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는데, 이 같은 주장은 신주류의 기세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민주당 구주류 당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박 최고위원은 나아가 “신당문제를 처리하려면 임시전당대회를 소집해야 한다”는 맞불작전으로 맞서고 있다. 전당대회 소집론에 대해 신주류측도 대응논리가 없어 한동안 막막해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성명서는 그 후 구주류의 신당 대응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신주류 내부에서도 “논리에서는 우리가 한 방 먹었다”는 자평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박 최고위원은 최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산악회를 만들고 있다. 산악회는 당권을 노리는 중진들이 즐겨 활용하는 조직 확대 방식. 구주류 모임을 이끌면서 한편으로 산악회를 만들고 나서자 일각에서는 “신당 반대 운동을 당권 도전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통성 모임에는 현재 20여명의 의원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하지만 모임측은 회원의 이름을 밝히길 꺼리고 있다. “그때그때 모임에 나오는 의원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뚜렷하게 이 사람이 회원이라고 정하기가 곤란하다”는 게 그 이유. 이처럼 느슨한 조직으로 신주류와 제대로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쉽게 모임을 이탈할 인사들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열성적으로 이 모임에 참석하며 구주류 활동을 펼치는 의원은 정균환, 이윤수, 유용태, 장성원, 김경천 의원 등이다.

    구주류의 반(反)신당 연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한 사람이 강운태 의원이다. 그가 이끄는 중도파의원 모임은 사실상 구주류의 외곽조직 역할을 하며 신당론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박 최고위원과 강의원은 수시로 만나며 신주류에 맞설 대응전략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신·구주류 모두가 탐내는 연대세력으로 한화갑 전 대표를 꼽을 수 있다. 한 전 대표는 최근 신당 불참을 선언하는가 하면, 민주당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한 전 대표 측근들이 최근 당무회의 충돌 과정에서 구주류측과 행동을 함께하면서 사실상 박 최고위원, 정총무와 연합전선을 형성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류측 한 인사는 “한 전 대표와는 별도의 채널이 없지만 그가 끝까지 우리와 함께 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 진영은 이런 구주류의 장담이 거북하다는 반응이다. 한 전 대표의 측근은 “한 전 대표는 민주당을 깨는 데는 반대하지만 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구주류와 보조를 같이하는 것은 전술적 제휴지 전략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부의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신당론에 맞서는 구주류의 일사불란한 대응이 정가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해 “오랜 세월 야당으로서 싸워온 구주류의 저력”이라는 평가도 있고 “생존의 위기에 몰린 절박한 몸짓”이라는 평가도 있다. 어느쪽 주장이 맞든 구주류의 단결력과 결단력이 돋보이는 요즘 정국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