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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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야, 너 언제쯤 살아날래

1·4 분기 10억7600만 달러 사상 최대 적자 … 비메모리 육성 ‘선택과 집중’ 절박한 과제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5-22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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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야, 너 언제쯤 살아날래

    반도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는 만성적인 무역적자로 인해 골치를 썩고 있다.

    ”앞으로는 수출용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수입 통계에서 빼겠다.”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김종갑 차관보는 기자가 반도체 무역적자에 대한 대책을 묻자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휴대전화 수출이 늘어나는 바람에 반도체 수입이 늘어나는 것을 두고 무역적자 운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김차관보는 “반도체 무역적자는 한마디로 ‘미스리딩(misreading)’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의 수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러한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입이 덩달아 증가하면서 반도체 무역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통에 무역수지 통계를 내는 산자부 관계자들이 골치를 썩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분기 반도체 분야 무역적자 규모는 10억7600만 달러. 1월까지만 해도 400만 달러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었으나 2월중 4억 달러, 3월중 6억 달러로 적자폭이 늘어나면서 석 달 만에 10억 달러를 훌쩍 넘게 된 것이다.

    D램 반도체 폭락 결정적 이유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출입 불균형이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을 때를 2001년으로 본다. 당시 연간 누적적자는 12억8800만 달러. 올 들어 3개월간의 무역수지 적자가 2001년 1년간 무역적자 규모에 육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적자폭이다.

    4월 들어서도 수출은 0.8% 늘었지만(4월 말 추정치) 수입은 16.4%(4월20일 기준) 늘어나 상황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적자는 1980년대 말 이후 흑자 기조가 유지돼왔다는 점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분야에서 무역흑자국으로 돌아선 것은 88년 6월이다. 어쩌다가 월별 적자를 기록한 적도 있었지만 우리 반도체산업은 이 당시를 기점으로 흑자행진을 이어왔다. 이러한 흑자행진은 2001년 5월까지 무려 13년 동안이나 계속돼왔다. 그러다가 2000년 4·4분기 D램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2001년 6월, 적자 구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반도체가 우리나라의 무역적자 규모를 메워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무역적자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반도체 무역수지가 이처럼 적자를 면치 못한 것은 올 들어 D램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고 세계적인 IT(정보기술) 경기 침체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격여건은 크게 악화한 반면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등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이나 소모품을 충당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수입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수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수입이 더 크게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무역적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건 업계건 반복하는 이야기는 결국 비메모리 분야에 대한 투자와 국내 반도체산업 전략의 수익 위주로의 전환이다. 메모리 반도체가 정보저장을 목적으로 생산 판매되는 데 비해 비메모리 반도체는 정보처리를 목적으로 생산된다. 또한 비메모리 반도체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야만 하는 분야. 그만큼 일단 개발에 성공하면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비메모리 업체들의 수준은 영세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대형 반도체업체와 하청·협력업체 간의 고질적인 불평등 거래 관행이 비메모리 홀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반도체야, 너 언제쯤 살아날래

    과거에는 반도체가 전체 무역적자를 메워주는 역할을 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무역적자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비메모리 분야가 불모지라는 사실은 우리 반도체 수출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고부가가치 첨단 반도체에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들 산업에 직접 지원하는 것은 하이닉스 상계관세 부과 건에서 보듯 경쟁업체들 사이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위반 논란을 빚을 수밖에 없다. 결국 비메모리 분야의 개발인력 양성이나 생산 인프라 구축 등의 간접적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메모리 투자라고 해서 수많은 종류에 모두 집착할 수는 없는 법. 결국 문제는 선택과 집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성원 박사는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디지털 TV나 PDP TV, LCD TV처럼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디스플레이 분야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제품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비메모리 분야가 워낙 종류도 다양하고 기술 개발에 많은 노력이 드는 만큼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메모리 분야에 편중된 반도체산업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주문형 설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발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 또 개발 완료 후에는 대만의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들에 생산을 맡겨도 되기 때문에 자체 라인을 갖춘 대규모 업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는 분야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개발인력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2·4분기를 기점으로 반도체산업이 서서히 회복 국면에 접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지난 1·4분기에는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업적자를 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같은 경우는 9분기째 연속 적자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단 3·4분기를 기점으로 반도체산업이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물론 지금이 PC의 대대적인 세대교체기냐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신형 PC의 성격상 수요를 견인할 만한 요인 역시 적지 않다. 우리증권 최석포 수석연구위원은 “PC 판매수량이 한꺼번에 크게 늘지 않더라도 PC 1대당 메모리 용량이 늘어나고 다양한 부가기능이 첨가되면서 반도체 수요가 확장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5월20일 인텔의 ‘스프링데일’ 출시는 국내 D램업체들의 기대감을 결정적으로 부풀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CPU와 메모리 반도체를 연결하는 부품인 ‘스프링데일’ 칩셋은 PC당 메모리량을 기존의 256MB에서 512MB로 늘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스프링데일 출시는 하반기 D램 경기 상승을 점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 물론 스프링데일이 당장 반도체 수요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성원 박사는 “스프링데일 출시가 어느 정도 수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수요 창출로 이어지는 데는 1∼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동안 호재가 거의 없었던 반도체업계에서 스프링데일 출시가 수요를 환기시키는 대형 이벤트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

    반도체야, 너 언제쯤 살아날래


    반도체야, 너 언제쯤 살아날래

    국내 반도체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삼성전자가 개발한 나노반도체.

    그러나 전체적인 하반기 수요 예측 역시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는 데다 특히 D램 시장 전망이 긍정적이어서 업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퀘스트는 올 D램 시장은 2·4분기까지는 1∼2% 정도의 공급과잉 현상을 보이겠지만 3·4분기에는 2%, 4·4분기에는 3% 정도의 공급 부족 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덩달아 주식시장에서도 반도체 종목에 대한 추격매수는 곤란하지만 중·장기적 투자는 해볼 만하다는 분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경기가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더라도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기주기도 불규칙적일 뿐만 아니라 수요 기기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등 경기 패러다임 자체가 크게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조만간 윤진식 산자부 장관과 업계 간담회를 열고 수요 확대에 대비한 일부 국내업체의 라인 증설 허가 등 대정부 건의사항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국내업체들도 서서히 ‘제2의 랠리’를 준비하며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반도체 시장에는 ‘하이닉스’라는 중환자실의 장기 고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메모리 일변도의 고질적 구조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하반기 반도체 회복론’에만 관심을 쏟을 것이 아니라 무역수지 적자 개선, 비메모리 개발 투자 등 중·장기적 대책 마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적으로 보자면 전체 수출에서 10%대를 차지하는 반도체의 뒤를 이을 새로운 효자산업을 하루빨리 발굴하는 과제도 게을리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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