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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태풍의 눈 ‘2003 춘투’

‘현대차’ 춘투 뇌관에 불붙일까

비정규직까지 가세 ‘파워 업그레이드’ … 임단협 결과 타사업장에도 영향 불 보듯 ‘시선 집중’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현대차’ 춘투 뇌관에 불붙일까

‘현대차’ 춘투 뇌관에 불붙일까

5월1일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노동계는 올해 춘투에선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조의 경영 참여 등을 핵심 쟁점으로 들고 나왔다.

5월9일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아산공장에서는 현대차 노동조합 아산지부 주최로 ‘임단투 완전 승리를 위한 출정식’이 열렸다. 출정식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현대차와 도급계약을 맺고 있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 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임단투(임금 및 단체협약 투쟁) 승리를 다짐했다. 출정식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현대차 노조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노조가 주관하는 출정식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을 때도 사업장을 지키며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을 더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어정쩡한 관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 아산공장엔 3월28일 ‘금속노조 충남지회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란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됐다. 현대차의 13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한데 뭉쳐 상급단체인 전국금속산업연맹 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 산하의 노조로 등록한 것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현대차 아산공장의 2800여명의 노동자 가운데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8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중 몇 명이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했는지는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노조 경영 참여·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에 사측 난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에 성공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지난 3월 발생한 ‘식칼 테러’의 영향이 크다. 식칼 테러는 월차휴가 문제로 상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다쳐 병원에 입원한 하청업체 노동자 송모씨의 아킬레스건 부위에 이 회사 상사인 임모씨가 자상을 입힌 사건이다. 임씨는 사측의 개입을 부인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월차휴가도 마음대로 못 쓰냐”며 사측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사내하청 노조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요즘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친다. 울산공장에서도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데다,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올 임단협의 핵심 이슈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사내 하청 노조 관계자는 “대통령이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흐름으로 변했다”며 “닳고 닳은 비정규직 문제가 올 임단투를 기점으로 크게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주변환경이 어느 때보다 노동계에 유리해 보이는 올해 춘투(春鬪)에서 현대차는 ‘태풍의 눈’으로 부각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규모 사업장인 데다 현대차 노조가 다른 제조업체 노조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올 춘투에서 현대차를 주목하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국

노동조합총연맹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현대차의 임단협 결과는 향후 노사관계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처음 맞는 올해 춘투는 ‘노사관계 새 판 짜기’의 양상을 띠고 있다. 노동계는 ‘친(親)노동계 성향’을 공공연히 밝힌 새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례 없는 강공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가 향후 5년간의 노사관계를 가늠할 중요한 시기”라고 규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노동계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화물연대와 철도노조가 사실상 화주(貨主)측과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 춘투 뇌관에 불붙일까

4월16일 열린 ‘금속노조 충남지회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의 설립보고대회.

현대차를 비롯해 노동계는 임금인상에 초점을 맞췄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 △주5일(40시간) 근무제 △노조의 경영 참여 등을 임단협의 핵심 쟁점으로 들고 나왔다(상자기사 참조). 임금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노동계 관계자들은 “비정규직 문제 등 핵심 쟁점은 올해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현재 기업들이 노동계가 내세운 이들 쟁점을 수용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비정규직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할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정규직에 대한 과잉보호가 비정규직 문제를 일으킨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차 노조는 인력 배치·전환 과정에서 노조의 동의를 구하던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경영진의 고유영역으로 생각해왔던 장기 투자계획까지 노사 공동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안엔 해외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할 때는 반드시 노조와 합의해야 하고 이사회에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와 감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현대차측은 노조의 이런 요구를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힘 겨루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를 비롯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 자본 이동 감시 등 핵심 요구사안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산별노조 전환 문제도 현대차 노조 참여 여부 관건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산별노조 전환 문제에서도 현대차 노조의 참여 여부는 중요한 사안이다. 산별 교섭은 개별 기업의 노조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산별노조가 사용자 대표들과 교섭을 벌이는 방식으로, 여기에서 타결된 내용은 산별노조에 가입한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노조는 산별 교섭을 통해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다. 4만여 조합원을 거느린 대표적 강성 노조인 현대차 노조의 산별노조로의 전환 추진은 기업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현대차 노조는 현재 산별노조 전환을 목표로 노조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6월 말 열릴 조합원 투표에서 노조의 바람대로 산별노조 전환에 성공할 경우,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차 대우조선 등 대공장 노조가 금속노조에 참여하게 되면 향후 금속노조의 산별 협상이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은 자명하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노사 협상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통해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을 완벽하게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정규직을 압박해왔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춘투 뇌관에 불붙일까

‘식칼 테러’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 조직화에 성공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현대차 경영진은 재계로부터 노조의 투쟁 수위나 요구 수준이 예년에 비해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도 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대(對)노조 전략을 담당할 최고책임자가 없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더구나 현대차 김동진 사장에 대해서는 “엔지니어 출신이어서인지 노조에 끌려다니기만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작년 여름 울산공장 내에서 라인 조정문제가 제기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2공장은 산타페, 에쿠스, 다이내스티 등 ‘인기 차종’을, 반면 5공장은 테라칸과 갤로퍼 등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차종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2공장은 밀린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특근을 계속한 반면 5공장 쪽에서는 ‘일감’이 없어 불만이 쌓여갔다.

그러나 이 문제는 김동진 사장의 ‘결단’으로 의외로 쉽게 풀렸다. 김사장이 노사 협상장에 들어서려는 노조 집행부를 막아서고 농성을 하고 있는 5공장 노조원들 앞에 나서 “5공장에도 라비타 라인을 설치해 생산물량을 확보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실무진에서 노조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김사장이 갑자기 회사측 ‘카드’를 내놓아버려 허탈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사장의 이런 태도는 두고두고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무엇보다 회사의 협상력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조가 이 사건 이후 회사측 실무진과는 협상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김사장과만 담판 지으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회사 임원들도 노사문제에 관한 한 김사장에게만 미루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더욱이 올해 임단협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부 임원들은 몸을 사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관계자는 “노사 협상장에서 노조측은 미리 작전을 짜온 듯 여러 사람이 떠드는 반면 회사측 관계자는 사장과 부사장 외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괜히 나섰다가 노조 관계자들의 집중 성토를 받으면 나중에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

현대차의 올 임단협은 정몽구 회장(MK) 경영능력의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많다. 현대차는 그동안 수출과 내수에서 호조를 보이면서 창사 이래 최대의 경영실적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는 MK의 능력이라기보다는 환율이나 경쟁 회사의 ‘몰락’ 등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재계 안팎에서는 MK가 올 임단협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벌써부터 주시하고 있다.







주간동아 386호 (p48~51)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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