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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태풍의 눈‘2003 춘투’

올빼미 운전, 새우잠, 쥐꼬리 임금

화물차 운전사와의 1박2일 동행기 … 뽕짝으로 졸음 쫓고 끼어드는 승용차에 화들짝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빼미 운전, 새우잠, 쥐꼬리 임금

올빼미 운전,  새우잠, 쥐꼬리 임금

장시간의 화물차 운전은 상당한 체력을 요하기 때문에 시간 안배가 중요하다. 운전사 임준경씨(오른쪽)의 설명을 들으며 일정에 맞춰 지도를 체크하고 있는 기자.

5월13일 오후 7시 경기 의왕시 경인 내륙컨테이너기지. 육중한 몸매의 컨테이너들만 줄지어 있을 뿐 인적은 드물었다.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 사무소 앞엔 운전사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물류를 막아 세상을 바꾼다’ ‘사수! 생존권, 철폐! 화물악법’ 등의 선동적 내용의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화물연대 경인북부지회장 임준경씨(39)는 인상이 좋았다. 검게 그을은 얼굴과 날씬하고 탄탄한 체구에서는 운동선수와 같은 강인함이 엿보였다.

“정말 올라올 때까지 계속 동행할 겁니까?” 인사를 나누자마자 임씨가 대뜸 물었다. 취재야 여기서도 충분한데 굳이 동행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밀착취재로 화물차 운전사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는 기자의 설명에도 임씨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출발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갑작스레 지회장 대책회의가 열렸기 때문. 밤 10시 대책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임씨의 표정엔 결의와 피곤함이 뒤섞여 있었다.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는 그에게 운전이 버겁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임씨의 차는 1996년식 풀카고(full cargo). 16m 대형 화물차에 3m 정도의 물건 싣는 차가 딸려 있는 차종이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파업중인 상황에서 일을 나가는 임씨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화물차는 생각보다 비좁았다. 엄청난 덩치에 비해 탑승석은 승용차보다 불편했다. 굉음을 내며 차가 움직이자 몸이 한 번 붕 떴다가 내려앉았다. 깜짝 놀라 손잡이를 잡자 임씨가 씩 웃었다. 주행시 반동 때문에 화물차 운전사들의 허리가 대부분 좋지 않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흔들림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계기판의 속도는 ‘겨우’ 75km/h. “대형 트럭은 보통 80km/h 이상 속도를 안 냅니다. 한번 사고 나면 대형사고니까 조심도 하지만 기름값 한 푼이 아쉬운 판이라 연비가 좋은 70~80km/h 정도를 유지하죠.”

어지간한 차들이 모두 임씨의 차를 앞질러 갔다. 승용차 운전자들은 화물차를 피해 가는데도 화물차 운전사가 가장 겁내는 게 승용차라는 임씨의 말이 다소 이상하게 들렸다.

3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충북 영동군 황간휴게소. 기자는 벌써 다리에 힘이 빠지고 속까지 울렁거렸다. 임씨가 처음 타는 이들은 다들 그렇게 힘들어한다며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휴게소는 화물차로 가득 차 자리가 모자랐다. 임씨 말로는 밤에 잠깐 눈이라도 붙이려는 운전사들이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넘쳐나 그냥 휴게소를 빠져나오는 일도 많다는 것. 그런 상황에 갓길에 차 세운다고 성토하는 뉴스를 보면 정말 속이 상한다고 했다.

올빼미 운전,  새우잠, 쥐꼬리 임금

운송물품은 도착지에 인도될 때까지 화물차 운전사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송장 내용과 물품이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임준경씨와 기자. 교통혼잡 때문에 화물차 운전사들은 야간운전을 선호한다.(위 부터)

“갓길에 차 세우면 위험한 거 다 압니다. 근데 이 큰 차를 몰면서 졸음운전 하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닙니까? 정말 쉴 곳이 없어서 휴게소를 늘려달라는 겁니다.”

휴게소에서 만난 화물차 운전사 김윤종씨(27)도 휴게실 부족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았다. 김씨는 임씨의 ‘동행’.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조를 이뤄 내려가는 것은 화물차 운전에선 일반적이다. TRS(주파수공용통신)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가며 졸음을 쫓기도 한다. 30여분간 쉬었다 차에 오르자 임씨가 피곤하면 음악이나 듣자며 틀어준 음악은 디스코. ‘나 항상 그대를’에서 장나라, 에미넴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뽕짝 박자에 뒤섞어 만들어낸 ‘고속도로 버전’이다. 임씨도 원래 조용한 음악을 좋아하지만 운전중에 발라드를 듣는 것은 금기라고 했다.

음악까지 흥겹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도 가벼운 쪽으로 흘렀다. 임씨의 첫사랑 이야기부터 남자들의 이런저런 ‘즐거운’ 이야기들. 이 틈에 “‘박카스 아줌마’는 어딜 가야 볼 수 있냐”고 묻자 “파업 이후 손님이 없어서 요즘은 자취를 감쳤다”고 했다.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번 준 적이 없다는 임씨를 은근슬쩍 떠봤지만 임씨는 펄쩍 뛰었다.

“아이들에게 살면서 쓰러질 일이 많아도 오뚝이처럼 일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중1인 큰딸이 핸드폰 사달라고 졸라서 ‘아빠는 부자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말하고 나니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씁쓸합디다.”

임씨가 한 달에 버는 돈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했다(표 참조).



휴게소 주차장 초만원 … “갓길 정차 어쩔 수 없어요”

“일주일에 5일은 밤새워 일하는데 그것밖에 안 되는 직업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잘못된 제도 때문에 안 나가도 될 돈이 나가고 있는 게 더 문젭니다.”

화물연대가 이번 파업에서 경유가 인하와 함께 쟁점으로 삼은 지입제를 두고 하는 얘기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는 화물차 운전사들은 지입료를 내고 운송회사의 영업 넘버를 받는다. 지입제의 가장 큰 문제는 차 소유주인 운전사들이 자신의 차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

“지입료는 물론이고 차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래도 난 차량 할부금은 나가지 않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죠.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 할부금을 내는 운전사들이 많습니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넘어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울한 이야기가 이어진 탓일까. 한동안 대화가 끊겼다. 새벽 5시가 다 돼서야 울주 쭛식품 물류센터에 다다랐다.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더니 임씨가 어이없어했다. 화물차 운전사들은 대부분 차 안에서 잠을 해결한다는 것. 그제야 좌석 뒤 조그만 공간에 있는 침낭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잠깐 졸고 있으면 아침에 센터 직원들이 와서 깨운다고 했다. 괜찮으니 들어가 자라는 임씨를 억지로 침낭 속으로 밀어넣고 조수석에 쪼그려 기대자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오전 8시30분. 문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물류센터는 그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역작업을 하는 동안 운전사가 할 일은 거의 없지만 물품이 제대로 운송됐는지를 체크하고 다시 실을 짐을 살펴야 한다.

낮 12시가 가까워서 아침을 먹으러 근처 식당을 향했다. 동행했던 김씨는 무슨 일이 생겼다며 짐만 내려놓곤 서울로 떠난 상태. 표정이 좋지 않은 임씨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겨우 입을 열었다.

“화물연대 소속 몇몇이 돌격대를 만들었대요. 운송하는 화물차는 모조리 부셔버린다고 했답니다. 그런 식의 행동은 지도부가 원하는 바가 아닌데….”

지난해 결성된 화물연대는 역사가 짧아 아직 지도부의 지도력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탓에 화물연대 내에서 의견 충돌이 잦다. 보름째 일을 못해 초조한 데다 파업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물리력을 써서라도 주장을 관철하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김씨는 경인지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갈 길을 재촉했다고 한다.

오후 3시. 원래 해가 지면 출발하기로 했던 임씨가 갈 길을 서둘렀다. 그 역시 상황이 궁금해 애가 탔기 때문. TRS를 통해 격론이 계속되다 급기야 욕설까지 오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속상했던지 임씨는 결국 볼륨을 낮춰버렸다.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가 든 적도 있어요.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일하는 편이거든요. 그래도 스스로 권리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도와줄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는데….”

답답했던 탓일까. 임씨는 올라가는 길에는 민중가요를 택했다. ‘단결 투쟁가’ ‘철의 노동자’ 등 대학시절 친숙했던 음악이 흘러 나왔다.

“아이들 앞에 떳떳해지고 싶습니다. 개인택시처럼 내 차 내 맘대로 굴리면서 말입니다. 집에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가면서 돈도 못 벌어 오고, 화물차 운전사라고 하면 사회에선 무시하고…. 자부심도 돈도 없으니 무슨 낙으로 일합니까?”

화물차는 80km/h의 속도로 쉬지 않고 내달렸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엔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다. 무지개라도 떴으면 좋으련만 무심한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주간동아 386호 (p52~53)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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