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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월드컵의 추억

어찌 잊을까, 6월 ‘붉은 감동’을

너무 쉽개 식은 열기 되살리기 다양한 행사 … '축구'로 행복한 기억 해마다 반복될 것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어찌 잊을까, 6월 ‘붉은 감동’을

어찌 잊을까, 6월 ‘붉은 감동’을
승리를 추억하는 것은 항상 즐겁고 짜릿하다. 1년 전 한반도는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들끓었고 전 국민은 모두 하나가 됐다. “대~한 민국, 짝짝짝 짝짝.” 전 국민의 외침 속에 경제는 장밋빛 전망으로 물들었고, 축구 4강은 경제 4강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흥에 취해 태극기를 휘날리며 거리로 모여들었다. 서울 광화문, 부산 남포동, 광주 금남로, 대구 범어 사거리…. 전국 방방곡곡은 온통 붉은 함성으로 뒤덮였다. 승리의 기쁨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멀리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열린 광장에서도,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래에서도, 프랑스 퐁피두 광장에서도 한국팀의 승전을 기원하는 응원구호가 터져 나왔다.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한 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단군 이래 가장 기쁜 날”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꺾으며 승전보가 잇따르자 거리의 촌부에서 상아탑의 역사학자까지 입을 모아 “승리의 역사가 없던 한스러운 민족이 처음으로 ‘개선문’을 통과한 날”이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이후 1년은 너무도 급박하게 흘렀다. 월드컵의 열기는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급격히 식어갔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월드컵의 엔도르핀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너무 빨리 그때의 감동이 사라졌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우리는 잊었을지라도 외국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대한축구협회 송기룡 차장(39)은 요즘도 컴퓨터를 켜면 유럽 동남아시아, 심지어 중앙아시아에서 온 흥분 섞인 메일을 받곤 한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기념품이나 T셔츠를 사고 싶다. 2002년 한국대표팀의 경기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내 생애 최고의 명승부였다. 거기에 군중들의 붉은 물결….” 이런 메일을 읽노라면 그때의 흥분이 오롯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다행히 월드컵 개최 1주년을 맞아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려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펼쳐진다. 6월 초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던 ‘동아시아컵 대회’가 ‘사스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갑작스레 취소됐지만 5월31일 도쿄에서 월드컵 공동개최 1주년을 기념해 한·일 대표팀 간의 경기가 열린다. 또한 6월8일과 11일에는 각각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와의 국가대표팀 간 A매치가 벌어진다. 특히 6월8일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축하공연이 열려 월드컵 당시 열광적인 ‘붉은 응원’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또 5월31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는 조수미, 윤도현 밴드 등이 출연하는 ‘평화콘서트’가 열리며 인천(문화축전), 광주(빛고을축제) 등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려 그날의 추억을 되새길 예정이다.

이 행사들 속에서 우리는 낯익은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월드컵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들이 여전히 영광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승승장구하면서 그 분야의 최고로 우뚝 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노리는 이들도 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들도 있다. 이들의 ‘현재’를 통해 월드컵 당시의 감동과 1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어찌 잊을까, 6월 ‘붉은 감동’을
1995년 창립돼 30만명의 정예회원을 자랑했던 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모임인 ‘붉은 악마’는 월드컵을 기점으로 W세대를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거대 집단으로 자리잡았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월드컵 슬로건 역시 붉은 악마가 안겨준 부수적인 선물이었다.

그러나 뜨거운 열광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졌다. 끊임없이 기업과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순수성이 훼손됐다는 비난도 받았다.

신인철 전 붉은 악마 회장(35)은 최근 “유학을 준비중”이라며 “이제 전 국민이 ‘붉은 악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 붉은 악마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올 초 중앙조직을 완전히 없애버려 지역 단위의 소모임만 남은 완전히 열린 조직으로 거듭 태어났다. 폐쇄적 조직인 소모임만 유지해가며 역사적 성과에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는 붉은 악마들의 결의인 셈이다. 서울지부의 한 회원은 “중앙조직은 처음부터 해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축복 속에 사라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붉은 악마’라는, 젊은 세대의 열정과 거리의 소통을 상징했던 붉은색 물결은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바뀌었다.

국민가수로 태어난 윤도현·하루아침에 뜬 미나

어찌 잊을까, 6월 ‘붉은 감동’을
월드컵이라는 축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중문화인은 다름 아닌 가수 윤도현(31·오른쪽)과 미나(26). 로커 윤도현은 월드컵 때 가수활동 10여년 만에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오~ 필승 코리아’는 그에게 국민가수를 넘어 ‘민족가수’라는 영예로운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지난해 9월 평양에서의 감격적인 공연, 올 초 미국에서 펼쳐진 이민 100주년 무대, 6월 초 재일동포가 주최할 예정인 6·15선언 3주년 기념무대에서도 모두가 그가 불러주기 바라는 노래는 ‘오~ 필승 코리아’였다. 때로 ‘필승’이란 말은 ‘통일’로 바뀌었다.

하지만 가수로서 좀더 완성도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그는 ‘월드컵 가수’라는 수식어가 달갑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월드컵 응원가를 더 이상 부르지 않을 작정이다. 그러나 그 역시 ‘월드컵’이란 말에 “그때 광화문에서 함께 함성을 지르면서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느꼈다”고 회고한다.

그가 거리에서 각광받았던 이유는 록의 통쾌함이 축구라는 열린 스포츠와 화학적으로 결합했고, 열정과 거리의 문화라는 W세대의 문화적 코드를 그가 선도했기 때문. 이후 그는 ‘효선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는 촛불시위나 정치 관련 거리집회에 자주 참석해 ‘참여가수’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붉은 탱크톱 상의와 태극기 치마를 입은 모습이 외신을 타면서 유명해진 미스월드컵 미나(25). 그야말로 ‘자고 나니 유명해진’ 그는 지난해 가을 ‘전화 받아’라는 곡을 내놓으며 가수로 데뷔해 월드컵 특수에 기댄 ‘반짝 스타’라는 이미지를 씻고 ‘가수 4강’의 자리에 오르겠다며 벼르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의 국제적 매니지먼트 회사인 ‘글로벌 아티스트’와 계약한 그는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며 “5월31일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전 응원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 꿈이 있다면 앞으로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발령 나 2006 독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을 뒷바라지하는 겁니다.”

허진 전 한국 축구대표팀 미디어 담당관(40)은 올 초 외교안보연구소 교무과장으로 승진했다. 월드컵 이전 외교통상부 러시아 담당관으로 일하다 축구에 일가견이 있다는 이유로 월드컵조직위원회에 파견됐던 그다. 외교관으로서의 경력 관리에는 불리했지만 어릴 적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그는 1년 반 동안 전 세계를 상대로 원 없이 일했다. 말 그대로 인생이 바뀔 만한 역동적인 경험이었다.

“히딩크와 23인의 전사들에게 정이 흠뻑 들었어요. 지금도 가끔 그들과 만나면 그때의 동지애가 떠올라 애틋한 기분에 젖곤 합니다.”

이갑진 월드컵대표선수단 단장 및 23명의 스태프와는 1년에 한 번씩 날을 정해 반드시 모일 계획이다. 그가 월드컵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선물은 다름 아닌 월드컵 4위 메달.

“FIFA가 스태프에게도 월드컵 메달을 줘서 깜짝 놀랐습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저로서는 가보로 삼아야 할 메달이지요.”

어찌 잊을까, 6월 ‘붉은 감동’을
축구사랑 해박한 입담 장원재 모르면 외국인

“월드컵의 감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자극할 거대한 광맥이지만 아직도 가려져 있어 아쉽습니다.” 전 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위원이자 대한축구협회 기획위원. 월드컵 기간에 시쳇말로 ‘뜬’ 사람이 축구광 숭실대 장원재 교수(37·문예창작과)다. 방송에서 구수한 입담으로 축구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낸 그는 하나같이 붉은 악마가 된 전 국민들에게 축구사랑에 대한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본래 연극을 전공한 그의 눈에는 ‘축구는 살아 있는 신화’였다.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던 지난해 5월부터 6월 사이 그가 각종 토론회와 해설을 위해 방송에 출연한 횟수만 200여회에 달한다. 그 덕에 지난해 10월부터 MBC 라디오에서 ‘MBC 초대석 장원재입니다’(오전 11시10분)라는 인터뷰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어찌 잊을까, 6월 ‘붉은 감동’을
시련 겪은 비운의 박항서 감독 그라운드 복귀

“작년 6월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죠.”

포항 스틸러스 박항서 수석코치(56)는 수줍은 듯 낮은 목소리로 월드컵의 흥분을 되새겼다. 대표팀의 어머니 역할을 자임하며 히딩크 감독과 함께 월드컵 신화를 이끈 주역이었던 그에게 월드컵 이후 반 년간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비록 3위에 그쳤지만 대표팀을 맡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뒤 9월에 있었던 축구협회와의 갈등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군요.” 히딩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욕심에 박코치를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 축구협회의 강공에 밀려 ‘항명파동’을 겪어야 했던 그에게는 월드컵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러나 그에게 축구는 삶의 전부다. 고민 끝에 다시 축구 현장으로 돌아왔다. 포항 스틸러스가 그에게 손을 내민 것.

“최순호 감독이 한참 후배지만 그런 것은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축구공을 바라만 봐도 배부른 걸요.”

그는 얼마 전 부친상을 당했다. 소식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도와준 축구인들에게 그는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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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51)은 현재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동북아 정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평소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뼈대는 경제인이고 피는 정치인이며 팔다리는 체육인”이라고 말해왔을 정도로 다방면에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왔다. 정치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외교관이기도 했던 그는 한때 월드컵 성공 개최의 가장 큰 수혜자로 통했다.

지난해 가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월드컵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지지율 1위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그 거품은 오래가지 못했다. 게다가 곤두박질치는 지지율과 그것을 반등시키려는 그의 안간힘은 세인들에게 묘한 안타까움을 안겼다. 급파된 브라질 대표팀도 꾸준히 한국을 찾았던 히딩크 감독도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대선 막판 대반전의 조연으로 전락하며 미국에서 야인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최근 그에게는 월드컵 개최 1주년과 관련해서 언론의 접촉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다. 조만간 정계로 완전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숨은 주역 남광우 前 사무총장 안타까운 타계

정몽준 회장은 4월 초 갑작스레 귀국해야 했다. 남광우 전 축구협회 사무총장이 53세의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 남 전 총장은 월드컵의 숨은 주역이면서도 그 성과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그는 월드컵 기간에도 몇 차례나 가슴통증을 호소했으나 제대로 병원 한번 가지 못할 정도로 일에 파묻혀 지내야 했다. 중계권 협상에서, 대외마케팅, 홍보에 이르기까지 한 달간의 축제를 위해서 꼬박 6년을 준비했다. 정회장과 함께 월드컵의 모든 실무를 진두지휘해야 했던 그는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라는 압박감 속에서도 강한 추진력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킨 진정한 월드컵의 주인공이었다.

히딩크와 23인의 월드컵 전사, 그리고 한민족 전체가 ‘붉은 악마’로 하나 돼 즐겼던 2002 한·일월드컵은 녹색 그라운드에서 벌어진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라는 어느 CF의 표현대로 승리의 감동은 집 안에 갇힌 사람들을 광장이란 신천지로 끌어내는 마력을 발휘했다.

소설 ‘축구전쟁’을 쓴 김별아씨(34)는 “아름다운 6월을 승리의 기억 속에 파묻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즐겁다”며 “이런 기억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의 단초가 된다는 점이 축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제 해마다 6월은 ‘축구의, 축구를 위한, 축구에 의한’ 감격의 시기가 될 것이다. 승리를 추억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므로.







주간동아 386호 (p12~15)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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