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4

2003.05.15

바로크 음악과 춤의 세계로 초대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5-07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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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크 음악과 춤의 세계로 초대

    르네상스 시대의 춤을 선보이는 메리 콜린스(왼쪽)와 위르겐 슈라페. 이들은 춤 속에서 당시 귀족들이 구애하는 방식까지 선보여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영화 ‘1000일의 앤’에는 영국왕 헨리 8세(재위 1509~47)가 앤 볼린과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앤 볼린과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 위세 당당한 국왕이면서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 안달하는 헨리 8세. 두 사람의 춤에서는 사랑의 줄다리기가 한창인 이들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귀족 노릇 제대로 하려면 춤도 잘 춰야 했겠구나 싶다.

    5월1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사랑과 설득의 힘’은 마치 400년 전의 영국 궁정을 공연장에 잠깐 빌려온 듯한 무대였다. 르네상스,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인 비올 4중주단 ‘판타즘’이 윌리엄 버드, 오를란도 기븐스, 매튜 로크 등의 음악을 연주한 이 무대는 단순한 원전음악 연주회가 아니었다. 두 명의 댄서가 등장해 이들의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바로크 댄서인 메리 콜린스와 위르겐 슈라페는 르네상스 음악에 맞춰 16세기의 춤을, 그리고 바로크 음악을 배경으로 17세기의 춤과 극장 코미디를 선보였다. 가끔씩 원전연주 단체가 내한해 고악기 연주를 들려준 적은 있었지만 춤까지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서양 기악곡의 기원은 춤곡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보트나 미뉴에트, 지그 등도 모두 춤곡이죠. 그러나 현대의 음악애호가들은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가보트와 미뉴에트를 그저 음악으로만 듣고 있지요. 하지만 춤과 음악이 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주를 보면, 바로크나 르네상스 음악에 대해 보다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한양대 음악연구소 강해근 소장의 설명이다.

    수준급 원전연주 놓치면 후회

    사실 과거의 춤을 연구하는 것은 과거의 음악을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는 연주, 즉 원전연주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무리 악보를 들여다보아도 300~400년 전의 악사들이 이 음악을 어떻게 연주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당시의 음악이 녹음되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으로 익히는 춤의 원형은 몇 백년의 시간이 흘러도 비교적 잘 전해지고 있다. 원전음악의 대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춤은 과거의 음악 연주방식, 템포, 강세 등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의 샘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공연 제목이 ‘사랑과 설득의 힘’일까? 연주자들에게 물으니 “춤은 사랑을 표현하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대답해준다. 보통의 연주회와는 달리 네 명의 연주자들은 무대 오른편에 바싹 붙어 앉았고 왼편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사뿐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두 명의 댄서. 르네상스 시대의 기사와 귀족 숙녀처럼 우아하게 차린 모습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와 그녀를 흠모하던 귀족 청년이 무대 위에 나타난 것 같았다.

    1부 ‘르네상스 시대의 구애 예법’은 귀족 신사 숙녀가 처음 만나 춤을 통해 사랑을 속삭이는 과정을 그렸다. 판타즘 4중주단의 음악도 훌륭하고 아름다웠지만 객석을 휘어잡은 것은 마치 우아한 연극처럼, 느리지만 절도 있게 펼쳐지는 르네상스의 춤동작들이었다. 절제된 동작들 속에서 댄서들은 기민한 발놀림과 강렬한 눈빛을 선보였다. 2부의 주제는 ‘바로크 수사학의 예술’. 도입과 서술, 명제제시 등 수사학의 정의를 춤동작으로 표현한 철학적인 춤이다. 느리고 우아하게 움직였던 르네상스의 춤에 비해 한층 빠르고 정교해진 동작은 이 춤을 통해 클래식 발레가 태동할 것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마지막 3부는 ‘바로크 시대의 극장 코미디’. 당시 극장에서 단골로 공연되는 ‘판탈로네’와 ‘할리퀸’이 등장했다. 어리숙한 구두쇠 상인 판탈로네와 판탈로네를 골려대는 어릿광대 할리퀸은 바로크 시대의 대중스타였다고 한다. 마지막 3부는 춤이라기보다 짧고 경쾌한 무언극 같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연주가 진정한 원전연주, 즉 300~400년 전의 사람들이 음악을 가지고 무엇을 했나, 그리고 그들에게 춤이 어떤 의미였나를 알려주었다는 데에 있다. 고답적이고 단순하게 들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은 춤이 실리자 훨씬 밝고 경쾌해졌다. 이날의 관객들은 가장 ‘원래 상태’에 가까운 원전연주를 보고 들은 셈이다. 비록 홍보 부족으로 언론의 주목은 크게 받지 못한 공연이었지만 금호아트홀을 찾은 관객들은 단 한 번의 기침소리나 소음, 휴대폰 벨소리도 내지 않는 진지한 태도, 그리고 다섯 번의 커튼콜로 연주에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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