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2

2003.02.20

‘北송금’ 특검 칼날 세울 수 있나

盧 당선자측 난처한 입장 오락가락 행보 … DJ-北 정권 벼랑 끝으로 내몰 중대 기로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2-14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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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송금’ 특검 칼날 세울 수 있나

    대북송금 문제가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부터) 세 사람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2003년 1월 중순까지 검찰수사를 통한 대북송금 문제 해결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송금을 시인하자(1월30일), 노당선자측의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는 이 문제를 국회로 넘기자고 했다(2월2일).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 내정자는 “문실장에게 하늘의 계시가 떨어진 모양”이라고 말했다(2월3일). 그 사이 김각영 검찰총장은 검찰수사 유보를 발표했다.

    이 시점까지 청와대와 노당선자측 행보는 손발이 맞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해법이 ‘특검제 수용’을 의미할 수 있다는 노당선자 핵심 측근의 언급이 나왔다(2월4일). 이와 더불어 “김대통령측은 국민을 향해 진상을 더 밝히라”는 요구도 당선자측에서 나왔다(2월4일 유인태 내정자). ‘국민’이라는 말이 포인트였다. ‘진상을 공개적으로 밝히라’는 뜻이 분명했다. ‘특검 시사’와 ‘진상 공개 요구’ 두 가지로 노당선자측은 청와대를 압박한 셈이다. 언론들도 “노당선자가 야당의 칼(특검)을 빌리려 한다”고 보도했다.

    盧, 출범 전 크고 작은 정치적 상처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노당선자측의 돌연한 태도 변화에 놀랐다”고 술회했다. 다음날(2월5일) 김대통령은 노당선자측의 추가적 해명 요구를 정면 거부했다. 조순용 대통령정무수석의 “현대가 망한다” 발언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청와대에선 노당선자와의 결별 불사 움직임까지 보인다.

    노무현 당선자측 입장은 또 달라졌다. “청와대도 국회도 조금씩 양보하자”는 말이 나왔다. 노당선자의 직접 언급이다(2월7일). 그는 “국회가 적정한 수준의 결정을 내려 대북송금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 주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특검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암시한 셈이다. 문희상 내정자는 이날 구체적 대안으로 국회를 통한 비공개 진상조사를 꺼내 들었다. 특검 시사와 진상 공개 요구가 3일 만에 뒤집힌 것이다. 급기야 2월9일 민주당 중진은 한나라당 원내총무에게 검찰수사를 해법으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여론이 시큰둥하자 당선자측에선 “공식 입장이 아니다”는 해명이 나왔다.



    2003년 1월 중순에서 2월 중순까지 한 달 사이를 거시적으로 보면 한나라당 태도는 ‘수사 관철’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청와대도 ‘송금내역 공개 불가’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양 극점은 확고했다. 그러나 노당선자측은 검찰 엄정 수사→국회를 통한 정치적 해결 요구→특검을 수용할 듯한 입장→공개적 추가 해명 등 청와대 압박→비공개적 추가 해명으로 후퇴→특검 불원 입장 공개적으로 시사→검찰 수사 타진 등 양극점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대북송금 문제를 빨리 털고 간다”는 게 노당선자의 최종목표였다. 노당선자 핵심 측근은 기자에게 “우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로우니까 이런 해법도 내놓아보고, 저렇게도 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노당선자는 크고 작은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검찰수사와 관련된 ‘말 바꾸기’ 논란이 대표적이다. 특히 “신구 여권이 한통속이 되어 대북송금 의혹을 은폐하려 한다”는 한나라당 공격의 빌미까지 제공했다. 혹 떼려다 다른 혹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노당선자측의 이러한 소득 없는 어지러운 행보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기자에게 “우리가 특검제 수용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권에선 “노당선자측이 ‘야박하다’는 평가를 안 들으면서도 김대중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검찰수사 대신 특검제 수용으로 초기 전략을 잡았는데 나중에 이것이 계산착오로 드러나면서 일이 전반적으로 헝클어졌다”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특검제가 몰고 올 역풍의 강도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특검제를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김대통령과 노당선자의 관계는 이제 여권 움직임을 파악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北송금’ 특검 칼날 세울 수 있나

    ▲1월30일 감사원이 현대상선 대북송금 의혹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br>▼대북송금 문제와 관련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노무현 당선자측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김한길 기획특보,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왼쪽부터).

    ▶ 특검제와 김대중 대통령의 운명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기자에게 “현대 쪽에서 없어진 돈이 모두 북한으로만 갔을까, 아니면 일부는 다른 곳으로도 갔을까. 나는 후자에 걸고 싶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특검제를 추진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계좌추적에 있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5000억원 사용내역을 감사원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대북송금 2235억원, 선박운송경비 600억원, 현대건설 기업어음 매입 1000억원, 기업어음 상환 400억원, 기업어음 상환 765억원 등이다. 5건 모두 구체적 거래내역이나 관련 입출금 계좌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현대가 기업어음을 상환했다고 한다”라는 ‘전언문체’로 되어 있다. 현대측 자료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인 5억 달러가 남북정상회담 전 현대상선, 현대건설, 현대전자를 통해 북한에 송금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월10일엔 현대상선이 금융권으로부터 지원받은 돈 중 4700억원을 축소 신고했다는 추가 의혹까지 나왔다. 특검이 계좌추적을 하면 이런 의혹을 모두 규명할 수 있으며 북한에 송금된 자금의 총액, 그 과정에서 정치권 등으로 샌 자금이 있는지 여부까지 밝힐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 주장이다. 엄의원은 “‘~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문체로 진상조사 결과가 나와야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이 되는 것이며, 바로 여기에 특검과 계좌추적이 필요한 명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의심대로 만약 계좌추적에서 뜻밖의 돈 흐름이 포착될 경우 그 파장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특검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관련자 기소(사법처리)가 최종목표다. 일단 실제 수사가 개시되면 김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인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 임동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그 대상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김대통령은 퇴임 후 남북화해와 세계평화를 위해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특검수사가 현실이 될 경우 이러한 의지는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진다. 김대통령은 IMF 사태 직후 퇴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랬듯 사실상 사저 유폐의 처지에 몰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은 ‘수단’이 아닌 ‘목표’였다. 햇볕정책 지속을 위해서라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공조 파기, 여권 왜소화까지 감수했다. 특검 수사과정에서 햇볕정책의 역사적 가치가 평가절하된다면 이 역시 김대통령에겐 회복되기 힘든 타격이다. 특검수사로 김대통령의 통치행위 주장이 입증될 여지도 있지만 김대통령이 정치권의 특검수사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이와 관련, 백종국 경상대 정치행정학부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거론되지 않은 새로운 특검 반대 논리를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백교수가 제시한 특검 반대 이유는 네 가지. 1995년~2001년 사이 남한의 매년 평균 GNP 대비 대북한 지원 비율은 0.02%에 불과하며 이는 서독의 매년 평균 GNP 대비 대동독 지원 비율 2%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 서독도 알 권리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차원에서 동독에게 비공개 지원을 한 사례(유럽은행을 통한 20억 마르크 지원)가 있다는 점, 돈 받은 쪽(북한 정부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사할 수 없는 등 수사의 한계가 명확해 공정한 수사가 어렵다는 점, 대북송금으로 이미 확보된 한국기업의 북한 내 7대 사업 독점권에 대해 북한측이 비공개 약속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파기할 경우 한국기업이 손해를 입게 된다는 점 등이다.

    ▶ 특검과 노무현 정권 초기 정국 운영

    대북송금 문제에서 노당선자측은 당사자가 아니다.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은 기자에게 “이런 이유 때문에 특검이 노당선자를 홀가분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정반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선 내치의 경우 정권 출범 초기는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국정이념을 주도적으로 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이런 시기에 야당과 특검수사가 사회적 이슈를 선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그 자체로 노당선자에겐 커다란 정치적 타격이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특검 시행에 일단 동의해줄 경우 특검이 무려 60~120일간이나 여론의 이목을 붙잡아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위험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정권 초기부터 노당선자가 추진할 정치개혁, 재벌개혁, 사회개혁에 대한 관심과 구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치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될 당시 외신은 일제히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한 노후보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대북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을 조망하는 외국에선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셈. 이미 AP통신, BBC, LA타임스, 교토통신 등 상당수 외국언론은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뇌물이 지급됐다는 의혹이 나왔다”는 등 직설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 래리닉시 보고서는 2003년 1월 최신호에서 “현대를 통해 북한으로 간 돈이 북한의 무기 구매에 쓰였다”고 강하게 암시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한 뇌물 제공 스캔들’이 특검수사를 통해 앞으로도 수개월에 걸쳐 확대 재생산되고 국제사회에서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회의가 높아질 경우 노무현 정부의 외교적 발언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대북송금 특검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관련자가 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거리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특검이 추진된다면 이는 노당선자측의 동의 내지 묵인 하에 추진되는 것이다. 특검에 의해 김정일 위원장이 받은 돈이 낱낱이 폭로될 경우 북한 당국은 분노할 것이며 노무현 정부와의 접촉에 한층 더 신중하게 나올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노당선자의 대북 3원칙 중 하나인 ‘북핵 문제의 남한 주도’ 원칙이 대북송금 특검으로 타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당선자측은 “대북송금 문제에서 핵심 포인트는 특검 수용 여부이며 특검 시기나 북핵 문제와도 연관된 사안의 성격이 우리를 난처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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