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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여성운동가 마쓰이 씨의 명복을 빌며

  • 김신명숙 / 이프 편집위원·작가
입력
2003-01-15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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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가 마쓰이 씨의 명복을 빌며

여성운동가 마쓰이 씨의 명복을 빌며
살다 보면 아주 작은 인연인데도 큰 울림으로 남는 사람이 있고 큰 인연으로 만난 것 같은데도 별 의미 없는 관계로 끝나는 사람이 있다. 상대의 됨됨이, 그리고 상호간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세밑에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한 일본여성의 죽음을 접했을 때 나는 무언가가 뭉텅 잘려나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일본 네트워크’ 대표 마쓰이 야요리가 2002년 12월27일 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8세.’

기사 속 엄지손가락 크기만한 사진에는 강인하고 신념에 차 보이는 그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도쿄에 있는 친구 Y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의 장례식에 갔었는지 물었다. 장례식 모습이 궁금해서였다.

사실 나는 그를 1990년 도쿄에서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다. 친구 Y를 통해서였는데, 일본에 지인이 많은 Y는 그 전부터 내게 그에 관한 얘기를 자주 하곤 했었다.

“아사히신문 기자인데 사회부에서 오래 일했고 아시아 여성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너도 한번 만나보면 좋을 거야.”



‘일본의 배신자’란 손가락질에도 양심 꺾지 않은 여장부

Y는 당시 내가 신문사의 잡지기자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여기자끼리 만나면 얘기가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마쓰이 씨를 일본의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대단한 선배’로 생각하며 호감을 갖고 있다가 일본 취재 길에 Y의 소개로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마 아사히신문사 근처에 있는 커피숍이었던 것 같다.

그의 인상은 내가 예상했던 이른바 ‘맹렬 여기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당시 이미 50대 중반으로 논설위원인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가 주로 내게 질문을 했는데 대체로 한국의 여성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아시아 여성들의 인신매매, 성매매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특히 한국의 성매매 현실이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나는 여성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마쓰이 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자로서보다는 여성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반면 나는 그 문제에 무지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아시아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그의 국제적 시각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마쓰이 씨에게 그 만남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내게 자신의 책 ‘여성해방이란 무엇인가’를 건넸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마쓰이 씨와의 만남을 새삼 상기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 나 역시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갖게 되고 나서였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게 된다고, 그 후부터 그의 여러 활동들이 비로소 눈에 보이고 귀에 들어왔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여성국제전범 법정이 도쿄에서 열리도록 주도해 히로히토 전 천황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냈고, 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에서 빠진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며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이런 그의 활동을 신문이나 여성계는 물론 Y를 통해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같은 페미니스트로서 할 말도 많고 같이 해야 할 일도 많을 것 같았다. 그가 추구하는 아시아적 여성운동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시간 나면 일본에 와. 오면 다시 만나게 해줄게. 마쓰이 씨도 좋아할 거야.”

수년 전부터 Y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그 시간을 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다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Y에게서 이메일 답신이 왔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했다. 두 달 전쯤인가 한일 여성관계를 위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었는데 사정이 안 돼 거절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었다. 마녀기자, 일본의 배신자, 사회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일생을 ‘여성운동의 대모’ ‘일본의 양심’으로 치열하게 살다 간 마쓰이 야요리 씨의 명복을 빈다. 비록 그는 나를 잊었겠지만.



주간동아 369호 (p96~96)

김신명숙 / 이프 편집위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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