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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규제 정책 따로 노네

다단계 통해 카드 발급 가능 법개정 논란 … 카드사 건전성 회복 감독 강화 우선돼야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신용카드 규제 정책 따로 노네

신용카드 규제 정책 따로 노네
무분별한 카드 발급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카드 빚을 갚기 위한 범죄가 늘어나면서 신용카드 남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정작 이를 위한 정부 대책이 겉돌고 있는 데다 그마저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여론에 떼밀려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다 보니 각 부처가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는 최근 ‘신용카드 회원 모집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취지에서 여신전문금융업법(이하 여전법) 개정 법률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YMCA 등 시민단체에서는 여전법 개정안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카드 남발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등 정부 일각에서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래저래 중간에 낀 재경부 입장만 난처해진 상황.

문제가 된 대목은 여전법 개정안 중 새로 신설되는 제14조 제3항. 신용카드 회원이 신용카드의 약관 내용을 명확히 알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이 조항은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발급할 경우 그 약관을 서면으로 교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다만 방문판매·전화권유판매·다단계판매에 의해 카드를 발급하는 경우에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하 방판법) 제7조 및 제16조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덧붙인 부분이 논란의 대상.

여론에 밀려 ‘땜질식’ 처방에 급급

재경부 보험제도과 관계자는 “현재 다단계 판매원을 통한 신용카드 회원 모집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이런 상황에 소비자 보호를 위해 삽입됐을 뿐 다단계를 통한 신용카드 발급을 합법화하려는 차원은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방판법 제7조 및 제16조는 방문판매로 계약을 체결할 경우 교부해야 할 계약서와 약관에 대해 11개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다단계 판매원이 카드 회원을 모집할 경우 이들의 의무를 강화하는 것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신용카드 규제 정책 따로 노네

카드사들이 길거리 모집을 통해 회원 늘리기에 급급하자 금감원은 카드 모집인 등록제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시민단체나 다단계 업체의 불법행위를 수사해온 검찰 쪽에서는 “재경부의 목적이 약관 교부 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다단계를 통한 신용카드 발급을 허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오랫동안 다단계 업체의 불법행위를 수사해온 대구지방검찰청 이종근 검사는 “그렇지 않아도 7월부터 개정 방판법이 시행되면서 다단계를 통한 신용카드 발급을 막을 길이 없어졌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데, 여전법 개정안은 다단계를 통한 신용카드 발급 허용을 명문화하는 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정 방판법에는 구방판법의 “다단계 판매조직의 위탁판매, 알선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사라져, 사실상 신용카드를 비롯한 타업체의 물품을 다단계 업체가 위탁 또는 알선 판매 할 수 있게 됐다.

재경부는 여전법 개정안에 대해 논란이 일자 뒤늦게 시행령을 통해 다단계를 통한 카드 발급을 막겠다고 밝혔다. 재경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단계 판매원은 신용카드 모집인이 될 수 없고 신용카드사와 다단계 업체가 제휴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시행령을 마련할 계획이기 때문에 다단계를 통한 카드 남발의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재경부의 이 같은 계획이 법적 모순을 낳아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상위법이 다단계를 통한 신용카드 발급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행령으로 막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여기에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여전법 개정안이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11월15일 한미은행이 한국암웨이와 제휴카드 발급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금감원 비은행감독국 김병태 여전팀장은 “다단계 업체와 신용카드사의 제휴는 신용카드 발급 자체가 무분별해질 수 있고, 발급된 카드가 다단계 업체 제품 구입에 사용될 경우 피해 규모가 커질 우려가 있다”며 “금융 피라미드 피해가 엄청난 상황에서 다단계를 통한 신용카드 발급을 가능케 한 여전법 개정안은 그 위험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LG카드는 속옷과 정수기 등을 판매하는 다단계 업체 앨트웰과 지난해부터 제휴해왔지만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았다. 한미은행 입장에서는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할 만하다. 이와 관련, 한 은행 관계자는 “일부 카드사들이 이미 다단계 업체와 제휴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한미은행에만 중단을 요구한 것은 다단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론에 떼밀려 갑자기 브레이크를 건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용카드 규제 정책 따로 노네

5월16일 참여연대 회원들이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폐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과 시민단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는’ 신용카드 업체와 다단계 판매 회사의 ‘제휴’를 막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지적이다. 오히려 잘만 활용하면 카드업계의 경쟁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정위 특수거래보호과 관계자도 “다단계는 하나의 유통 체계로, 별도의 모집인을 동원하기 어려운 중소 규모의 업체가 다단계 업체와 제휴해 카드업에 진출하도록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카드업계의 경쟁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 ‘제휴’ 막을 근거 없어

공정위 쪽은 한마디로 다단계 업체를 ‘두들긴다’고 해서 카드 남발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부 규제가 늘면 늘수록 불필요한 유착관계만 발전시키고, 카드업계나 다단계 업체가 건전해지기보다는 기형적인 형태를 띠게 마련이므로 정부는 카드사 스스로 카드 남발을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들은 여전법 개정 작업 과정에서 공정위가 카드업계에 ‘우호적’인 것으로 ‘오해’받은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실제 재경부나 법무부, 금감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여전법 개정안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공정위의 요구에 따라 다단계 회사 관련 문구가 뒤늦게 삽입됐다”고 공정위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여전법 개정안 논란을 보면 결국 정부의 신용카드 남발을 막기 위한 대책이 주먹구구식임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등한시한 채 여론에 밀려 일관성 없는 정책과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하며, 카드 발급 남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카드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전문가는 “연체율이 높고 부실이 많은 신용카드 회사는 시장 압력으로 퇴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놓기만 하면 신용카드사들은 말 그대로 철저한 ‘신용’ 검증을 거쳐 회원을 모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후 일정 기간 동안 신용을 쌓고 세금 납입 증명이 있어야만 신용카드가 발급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길거리 회원 모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상명대 백웅기 교수(경제통상학부)는 “가계 부채가 급증하고 카드 연체율이 급등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서민 경제와 카드업계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파생적으로 나오는 문제를 막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362호 (p40~42)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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