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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올 상반기 대작들 줄줄이 참패 … 어설픈 할리우드 따라잡기 피하고 관객 공감대 신경 써야

  • < 김경욱/ 영화평론가 > nirvana1895@hananet.net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영화를 만들던 한국영화는 무언가 합리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전근대적인 한국영화가 이제야 비로소 산업으로서의 자리를 찾아가는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역시 젊은 제작자들이 다르다는 말도 나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92년에 개봉한 ‘결혼이야기’의 흥행 성공 이후 마침내 ‘기획영화’ 시대가 찾아왔다. 감독 한 사람에 의존해 영화를 찍던 시대에서 기획자가 영화의 아이디어에 맞는 감독을 선택해 영화를 제작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 1999년 ‘쉬리’의 엄청난 흥행 성공은 기획영화의 흐름 속에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쉬리’의 제작발표회에서 공개한 27억원의 제작비는 당시 한국 극영화로는 최대 규모였기 때문에 그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순 제작비 29억원이 투입된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제작자로부터 서울관객 50만명이 손익분기점이라는 말을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작비 폭등 … 수십억원은 기본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그러나 블록버스터의 환상에 사로잡힌 한국영화의 제작비는 우려와 걱정을 뒤로한 채 가파르게 상승해 갔다. 수십억대 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이제 몇 십억쯤 들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 것 같지도 않다”는 말이 나온다. 합리성은 비합리성을 끌고 들어왔고, ‘자본주의적 이성’은 이윤에 대한 히스테리가 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지향한 영화들의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더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실패의 순간 벌어지는 경제적 연쇄반응들이 영화시장에서 ‘참혹할 정도로’ 크다는 사실이다.



‘비천무’ ‘단적비연수’ ‘천사몽’ ‘무사’에 이어 올해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 같은 대작영화가 흥행에서 차례로 재난을 맞았으며, 이 실패로 회사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순 제작비 100억원이 들어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전국 350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 계산에는 현재 한국영화의 평균 마케팅비용 20억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올해 상반기 개봉작 가운데 ‘친구’ 같은 대박 영화가 없고, 대작들이 계속 흥행에 실패하자 영화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측은 “영화는 성공 확률이 너무 낮다”고 평가한다. 투자의 위험부담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벌써부터 몸을 사린다. 올 한 해만 영화판에서 몇 백억원 이상의 손해가 날 거라는 불길한 전망이다.

한국영화 제작비를 부추기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블록버스터의 관건은 곧 스펙터클이라는 도식 속에서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스펙터클에 대한 집착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모델로 삼은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스펙터클로 할리우드와 경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타이타닉’의 2분(分) 제작비로 ‘쉬리’를 만들 수 있고, “단군 이래 최대의 영화제작비”라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최근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비교적 안전한 제작비로 만들었다고 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10분의 1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관객은 늘어도 무한정 늘지 않으므로 무턱대고 제작비를 늘리는 방편은 쓸 수 없다. 지난 월드컵 때 독일과의 경기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길거리 응원단의 규모가 전국 700만이었다. ‘친구’가 이룩한 850만명의 관객 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치인지 느낌이 올 것이다. 따라서 ‘친구’의 성공은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자신은 늘 예외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 투자는 결국 도박이 된다.

할리우드를 모델로 생각할 때 우선 염두에 둘 점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영화시장에 통용되는 보편성을 가진다고 해서 할리우드의 성공 사례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보편성은 미국이라는 특수성에서 도출되기 때문이다. 다인종, 다민족으로 구성된 다양한 관객, 짧은 역사, 외부로부터의 잡다한 문화적 전통의 유입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미국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어 왔다. 특히 블록버스터의 중심인 SF영화는 할리우드와 미국의 문화적 특수성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실패한 대작영화 대부분 SF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펙터클은 동서고금에서 무차별적으로 가져온 이미지에서 만들어졌다. 아서왕의 전설을 묘사한 그림에서 일본의 사무라이 그림까지, 나치의 이미지에서 현대 만화까지, ‘스타워즈’는 할리우드 영화가 잡동사니들의 천국임을 보여준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 편의 영화 속에 들어와 아무런 역사적 맥락도 없이 환상을 만들어내도 미국적인 특수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화된다.

SF영화는 혼합장르의 성격을 가지는데, 할리우드는 일찍이 장르영화의 체계를 갖추고 전통을 만들어온 역사가 있다. 또한 탈역사성과 테크노 키치의 결합이 어우러진 SF영화의 성공은 미국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우주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산업적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그러므로 할리우드만이 스펙터클에 의한, SF의 상상력에 의한 영화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할리우드 영화가 되니까 한국영화도 된다는 발상은 아전인수이거나, 투자자들을 향한 혹세무민이다. 실패한 대작영화의 장르가 주로 SF인 점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제작비 수준을 다시 ‘쉬리’ 이전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번 올라간 제작비를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제작비 상승을 수수방관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벤치마킹하는 전략보다, 할리우드가 블록버스터의 도래 이후 1970년대 말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하이 컨셉’(high concept) 전략을 고려해 볼 만하다. 한국의 영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영화가 하이 컨셉 영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더욱 치밀하고 정교하게 흥행 요소를 고려해 영화를 제작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해 스펙터클 같은 한두 가지 요소만 갖고 흥행에 목을 매는 대신, 영화에 담을 내용과 정서, 스타 이미지, 사운드트랙, 영화에 따른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뿐만 아니라 캐릭터 산업, 게임으로의 전환, 테마파크로의 활용,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흥행의 우산’ 아래 모든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하이 컨셉’의 예를 들자면 멀리는 ‘결혼이야기’가 있고, 가까이는 ‘친구’가 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또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스펙터클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그것은 내러티브와 인물이다. ‘결혼이야기’와 ‘친구’는 내러티브와 인물이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의 현실과 접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비슷한 영화들이 양산되는 현상을 낳았다. ‘결혼이야기’는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유행의 기폭제가 되었고, ‘친구’는 2001년 조폭영화 유행의 출발이 되었다.

물론 성공한 영화들의 아류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벤치마킹하는 틀 속에 생명력 잃은 이야기를 담아낸 결과가 대작영화 실패의 한 원인이라면, 한국 관객이 공유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문화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식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역시 스펙터클에 치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러티브를 소홀히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90년대 후반 할리우드 영화의 부진은 스펙터클만으로 더 이상 관객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증거일 것이다. 할리우드는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공유해도 내러티브를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방향전환했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는 그 반성의 산물이다.

‘해외시장 개척’ 새 돌파구 삼아야

해외시장 개척 또한 대작영화의 돌파구로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국적 영화를 지향할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현재까지 아시아에서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와 그 드라마를 통해서 알려진 스타들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인기를 모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해외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것은 결코 아니다. 나날이 부풀어가는 제작비 규모 때문에 더욱 해외시장을 의식하게 되겠지만, 한국 관객을 향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전 세계적인 배급망을 갖춘 할리우드 영화조차 언제나 자국에서 제작비의 원금을 회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왜냐하면 해외 배급에서의 수익 규모는 항상 불안정하기 때문이다(90년대 내내 해외시장 수익 10위 안에 들어 안정된 시장으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갑자기 지난 3년간 할리우드 영화가 고전한 것은 그 적절한 사례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죽거나 다치거나’
영화 이외의 방송, 음반산업, 게임 등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산업과 서로 연대하는 전략도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판아시아적인 영화 커뮤니티, 배급 시스템의 상호보완, 부산영화제의 활용 등을 통해서 우리도 아시아 영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조건 한국영화를 갖다 팔고 한류에 편승하여 장사할 생각만 한다면, 역시 영화가 문화라는 사실을 또다시 간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흥행성을 고려하는 하이 컨셉 영화는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영화가 매번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원동력은 할리우드 밖에서 활약하는 새로운 젊은 피가 끊임없이 수혈되기 때문이다.

미국영화는 주류 할리우드 영화와 대안영화의 교환을 통해서 미학적으로 다시 새로워지고 풍성해지는 역사적 과정을 밟아왔다. 10여년 전에는 팀 버튼이, 그 다음에는 이안과 오우삼이, 그리고 피터 잭슨이 차례로 할리우드로 불려와 새로운 감각과 감수성으로 할리우드를 새롭게 했다. 그러니까 하이 컨셉의 전략에서 반드시 추가해야 할 요소는 ‘새로운 젊은 피’다. 당신이 진짜 장사꾼이라면 이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영화는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부분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문화다.



주간동아 346호 (p58~60)

< 김경욱/ 영화평론가 > nirvana1895@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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