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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의 향기’ 사라지나

5~8호선 경쟁입찰제 도입 ‘도서판매대’ 퇴출 위기 … “수익보다 공익 잣대 적용을”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지하철에서 ‘책의 향기’ 사라지나

지하철에서 ‘책의 향기’ 사라지나
7월26일 오후 6시30분 서울 종로3가 지하철역 도서판매대. 1평 남짓한 공간에 빽빽이 들어선 단행본과 시사지·여성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금요일 퇴근 시간인 터라 책을 고르는 직장인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한 신문사에서 만든 월드컵 관련 서적을 집어든 직장인 반석훈씨(30)는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책을 한 권씩 구입한다고 했다. 반씨는 “동네 서점이 모두 문을 닫은 데다, 대형서점에 가려면 따로 시간을 내야 하는 탓에 지하철 도서판매대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반씨처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지하철 도서판매대는 마음의 소양을 가꿀 수 있는 문화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출판계의 불황이 계속돼 동네 서점이 매년 20~30%씩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책에 목마른 직장인들이 손쉽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오아시스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서판매대는 1기(1~4호선) 지하철 구간 77개 역사에 모두 100곳이 설치돼 있다. 도서판매대를 운영하는 ‘한우리’에 따르면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여성지와 시사주간지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직장인이 주요 고객. 주 5일 근무제, 격주 토요휴무제를 시행하는 회사가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1~4호선도 12월 임대 만료

그런데 이처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하철역 도서판매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기 지하철(5~8호선)구간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가 역내 모든 가판대에 자유경쟁입찰제도를 도입, 마진이 적은 출판유통업이 들어서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 잡지나 책보다 마진이 높은 의류 신발류 식료품 매장을 상대로 높은 임대료로 입찰에 나서 사업권을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올해 12월 임대기간이 끝나는 1기 지하철의 경우도 임대료를 얼마나 올려줘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우리 관계자는 “서울지하철공사마저 도시철도공사 수준의 임대료를 요구한다면 사업 전체를 제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월 2000만~3000만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1기 지하철 구간에서 도서판매대를 운영하고 있는 한우리는 2기 지하철 구간에서는 도서판매대 대신 3~8평 규모의 소형 서점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소형 서점을 통해 도서판매대에서 발생한 적자를 벌충한 뒤, 1기 지하철 구간의 도서판매대도 서점 형태로 바꿔나간다는 것. 도서판매대 운영만으로는 흑자 전환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도시철도공사의 자유경쟁입찰제도 도입으로 물거품이 됐다.



한우리 김광원 대표는 도시철도공사가 시민들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고 수익증대에만 목을 매고 있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규모를 늘려주거나 임대료를 차별화하지 않으면 지하철역 도서판매대를 계속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공익 차원에서 출판업계에 작은 혜택을 주는 것에 딴죽을 칠 사람들이 있을까요? 지하철역마다 작은 서점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절로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지하철역에서 도서판매대가 사라진다면 바쁜 직장인들이 지식과 정보의 보고(寶庫)인 책과 잡지를 접할 기회가 더욱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는 지하철 도서판매대와 서점에 대해 일반업종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점 공간을 따로 마련해 출판유통업체만을 대상으로 입찰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 지하철역마다 작은 서점이 만들어진다면 국가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지지 않을까. 시민들도 음식물 냄새보다는 책의 향기를 원하고 있다.



주간동아 346호 (p48~48)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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