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2

2002.07.11

장르 넘나드는 절정의 실력

  • <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 authodox@empal.co.kr

    입력2004-10-18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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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넘나드는 절정의 실력
    월드컵 공식음반은 물론 ‘붉은 악마’의 응원가 음반에도 수록되지 않은 윤도현 밴드의 ‘오~ 필승 코리아’(광고CM)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바람에 정작 월드컵 공식 대표가수 박정현의 위신이 머쓱해졌지만, 절정의 완숙을 향해 달려가는 이 여문 보컬리스트는 월드컵 열풍의 한복판에 자신의 네 번째 앨범 ‘Op.4’를 발표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015B의 음악감독 정석원이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의 흡인력은 한마디로 준결승전까지 한국 축구가 보여준 불타는 기백처럼 엄청나다. 최근 10년 안에 이 앨범의 오른편에 설 수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의 앨범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UCLA에서 컬럼비아대학 영문과로 진학한 이 보컬리스트와 히트곡 메이커인 프로듀서가 이구동성으로 밝히고 있듯, 이 앨범은 ‘리듬 앤드 블루스(R&B)의 여왕’이라는 그간의 왕관을 미련 없이 벗고, 박정현 그 자신의 보컬이 지닌 역량을 표출하는 데 모든 가능성을 집결시킨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장르라는 영토는 박정현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목표가 아닌 것이다.

    과연! ‘상사병’이라는 부제가 붙은 머리곡 ‘Plastic flower’의 웅장한 현악연주와 돌출적인 보컬의 기세 싸움부터 심상치 않다. 뒤이은 프로모션 싱글 ‘꿈에’에 이르러 소리결의 엑스터시는 좀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다이내미즘을 앞세워 기교를 넘어선 기교를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우리 귀에 펼쳐놓는다.

    악절의 구성은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내보이는 만화경처럼 아찔하고,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레이션은 의외로 우리 전통악기인 소금과 친숙한 하모니를 연출해낸다. 프로듀서 정석원이 쏜 비장의 발리슛이다.



    물론 ‘someone’의 R&B적인 그루브 감각은 더욱 물이 올라 있으며 ‘미장원에서’는 이 프로듀서의 전가의 보도나 진배 없는 발라드 서정주의의 극치를 표명하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한국어 발음에서 풍요로운 울림이 모자랐던 전작의 작은 흠집도 이 앨범에 이르러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보컬리스트들은 자신의 노래 속에서 모든 시간과 공간이 증발하는 황홀경을 꿈꾸는 존재다. 그 황홀경의 도취는 그러나 인형들의 가면무도회에 떠밀려 멸종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이 혼탁한 시장의 틈바귀 속에 박정현이 서 있는 것이다.

    동물적인 본능성에 근거한 김추자의 포효에 전율했던 이들은 박정현의 유려하고도 강인한 텍스처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발라드에서 록과 블루스까지 훌륭하게 소화했던 전성시대의 이선희를 기억하는 이들 또한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무대 위의 불꽃 이은미의 주술에 휘말려본 이들 역시 박정현의 스케일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정현의 네 번째 앨범은 이 모든 한국 대중음악의 성과물들이 자리잡은 판테온에 나란히 자리할 권리가 있다.

    정교하게 계산된 사운드 효과라는 새로운 시대의 미학을 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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