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2

2002.07.11

“적당한 때 공격, 미국은 안전벨트 매라”

알 카에다 ‘제2 대형테러’ 경고… 7월4일 독립기념일 경계강화 등 ‘초비상’

  •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0-18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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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테러가 일어난 지 10개월이 지났다. 지금 미국은 대형테러설로 술렁이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제2의 테러를 감행할 것이라는 경고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빈 라덴이 서방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은 테러의 상징성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9·11 테러의 공격 대상이었던 워싱턴 펜타곤(국방성 건물)과 뉴욕 세계무역센터는 각각 막강한 미 군사력과 경제력의 상징이다. 90년대 초 소련 해체로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상징들을 과녁으로 삼음으로써 빈 라덴은 자신의 테러공격 효과를 극대화했다.

    7월4일 빈 라덴 세력이 또 다른 대형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불안해하는 까닭도 바로 상징성에 있다. 지난 6월 하순 미 연방수사국(FBI)은 7·4 테러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FBI뿐만 아니라 백악관 국방부 법무부 중앙정보국(CIA)과 9·11 테러공격을 당한 뒤 신설된 국토안전보장국도 9·11 테러에 버금가는 제2의 테러공격 가능성에 대해 미국민의 주의를 당부하면서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중”이란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의 존 케리 의원도 NBC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알 카에다는 아프간 산악 동굴지대 토라보라에 갇혀 있을 때보다 훨씬 위험하다”며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중’

    지금까지 거듭된 대(對)테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2의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테러위협을 볼모로 미국을 긴장 상황으로 몰아 정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그런데도 미 당국자들이 ‘7·4 테러 경계주의보’를 낸 것은 까닭이 있다.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과 늑대’처럼 미 국민들의 테러 경계심이 느슨해졌을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미 당국은 미국 본토와 해외 미국 주요 시설물에 대한 7·4 비상 경계조치를 강화, 미 전역의 핵시설물과 대형 구조물, 경기장, 공항 등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뉴욕 케네디공항의 한 보안담당 관계자는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지금 1급 비상(Treat Level One) 상황 아래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잔존세력들은 미국에 대한 제2의 테러공격이 있을 것임을 거듭 공언하고 있다. 지난 6월23일 알 카에다 대변인 슐레이만 아부 가이트는 카타르 위성방송 ‘알 자지라’를 통해 “미국은 준비를 하고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한다”고 밝혔다. 가이트는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적당한 때 미국을 공격할 것이며 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테러 장소와 시간, 방법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독일인 여행객 14명이 숨진 튀니지 제르바섬 트럭 폭발사건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밝혀, “미국에 대한 테러의 사전 예행연습이 아니냐”는 불안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줬다.

    “며칠 안에 또는 수개월 안에 미국을 공격한다”는 알 카에다 대변인의 위협에 덧붙여 미국인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의 생사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빈 라덴이 살아 있는 한 테러와의 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미국인들은 품고 있다. 미국 CNN방송과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6월 하순 미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8%는 빈 라덴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응답자는 23%에 그쳤다.

    바브 그레이엄 상원 정보위원장(민주당)도 폭스(Fox) 뉴스와의 회견에서 “빈 라덴은 살아 있으며 은신처는 파키스탄 서부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알 카에다 대변인 가이트도 “빈 라덴이 살아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히리(알 카에다의 2인자), 물라 오마르(탈레반 정권 지도자) 등 지도부의 98%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있다”며 “전 세계와 이슬람 세계 전사들은 곧 TV에서 빈 라덴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빈 라덴은 지난해 11월 아프간 토라보라 지역에서 눈보라를 헤치고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필자가 아프간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빈 라덴이 미군 공습에 죽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당수의 탈레반 전사들이 20년 내전을 치르며 익힌 끈질긴 생존의 지혜로 살아남았고, 그 가운데 당연히 빈 라덴도 들어 있을 것이란 얘기들이었다.

    빈 라덴이 살아 있다면 그는 아프간 접경 파키스탄 지역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곳 일대는 탈레반의 지지기반인 파슈툰족이 다수를 이루고 있어 정서적으로 친(親)탈레반, 친 빈 라덴이다. 그곳 부족들의 도움 아래 빈 라덴은 영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 특공대의 ‘소낙비’를 피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면서 은밀히 알 카에다 조직 재건에 나서고 있을 것이다.

    빈 라덴 극적으로 등장 가능성

    그런 빈 라덴을 옆에서 도울 만한 인물은 이집트의대 출신의 알 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다. 그는 98년 빈 라덴이 미국을 향한 지하드를 선언할 때 그 문서에 연대서명한 5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 후 빈 라덴의 오른팔이자 알 카에다 조직의 2인자로서 활동한 그를 CIA는 9·11 테러를 기획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아프간 동부 산악지대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알 카에다 대변인의 주장처럼 그것이 오보라면, 빈 라덴과 함께 잠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자와히리는 올해 영국에서 출판된 ‘예언자의 깃발 아래 모여든 기사들’(Knights Under the Prophet’s Banner)이란 저서에서 “위기상황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조용히 활동에서 손떼고 일시적으로 잠복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지난해 11월 토라보라 미군 공습부터 지금까지가 그런 잠복기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7월4일 제2의 테러를 전환점으로 잠복기간을 끝내고 빈 라덴과 자와히리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 CIA는 현재 알 카에다 조직원들 사이에 인터넷 교신이 증가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의 소재를 알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빈 라덴이 제2의 대형 테러공격을 성공시킨 뒤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미 테러공격이 9·11과 같은 비행기 납치가 될지, 아니면 미 관리들이 주장해 왔듯 방사능 물질을 담은 이른바 ‘더러운 폭탄’(dirty bomb)이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관련 당사국들을 무시하는 일방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특히 중동정책에서 친이스라엘 일변도로 나간다면, 미국민은 테러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빈 라덴의 알 카에다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며, 전 세계에 그물망처럼 퍼져 있다. 미군 6500여명, 영국군 6100여명이 투입된 아프간 전쟁에서 부시나 블레어가 승리를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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