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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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터지는 예선전 ‘공천 경쟁’

13개 지역구 놓고 사활 건 당내 혈투 … 서울 영등포을·종로는 ‘죽음의 조’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10-18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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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터지는 예선전 ‘공천 경쟁’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8월8일 재보선 결과가 나쁘면 후보 사퇴의 위기에 몰릴지 모른다. 반대로 한나라당 역시 패배하면 ‘부잣집의 뒷문’이 활짝 열리는 격이 된다. 한나라당은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일찌감치 ‘압승’ 전략을 세웠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걸었다. 사활을 건 사람들은 또 있다. 재보궐선거 13개 지역구 출마 예상자들이다.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같은 당내에서 출마 예상자들간에 물고 물리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당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도 자주 빚어진다. 개인은 당에 양보하지 않는다. 마산-합포구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한 강원석 미래연대 부산-경남 대표는 “정치에서 거저 주는 것은 없다. 투쟁해서 쟁취해야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자천 타천의 공천 거론자들이 줄줄이 매스컴에 거론되는 가운데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물밑경쟁은 가히 백병전에 가깝다.

    8·8 재보선의 확정된 13개 선거구 중 ‘죽음의 F조’로 꼽히는 곳은 단연 서울 영등포을과 서울 종로 두 곳이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자리여서 예선(정당 공천)과 본선이 모두 가시밭길이다. 한나라당은 ‘여의도 주민’ 심재륜 변호사의 공천을 검토중이다. 당 관계자가 당사자에게 출마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변호사는 일단 고사했다. 6월28일 심변호사에게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그는 “아직은 생각 없다. 그러나 ‘절대로 (출마 안 한다)’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될 사람’ 영입설에 지구당위원장은 초긴장

    박터지는 예선전 ‘공천 경쟁’
    한나라당은 ‘삼고초려’하면 그를 붙잡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접전지역인 영등포을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점, 현철씨를 구속시킨 대쪽검사 이미지가 대선을 앞두고 전개될 한나라당의 권력형 비리 고발 프로그램에 명분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 검찰 내부의 신망을 받고 있다는 점, 개혁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를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점이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은 정병원 현 위원장이다. 김민석 의원이 시장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놓자 내심 ‘환호성’을 부른 그였다. 성향이 같은 당내 민주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천로비를 벌이고 산악회도 만들어 등산도 열심히 해왔다. ‘심재륜 영입설’이 돌면서 한때 번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젠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정위원장은 전화를 걸어와 “나는 그냥 고(go) 한다. 나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며 끝까지 영등포를 지킬 테니 그렇게 써달라”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측은 아직은 답답한 모습이다. 방송인 손석희씨의 영입이 여의치 않다. 양당간 정보전도 치열하다. 최근 민주당 김민석 전 의원은 지구당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확대 당직자 모임을 가졌다. 하루 전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한나라당측은 “김민석씨가 서울시장 낙선에도 불구하고 보궐선거 출마를 원하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세웠다. 실제로 인천서-강화을 지역구에선 인천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민주당 박상은 후보가 고향이라는 근거로 다시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종로에서는 민주당이 갈등 국면이다. 세 갈래 큰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정흥진 구청장은 지방선거에 의도적으로 출마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종로 보선 출마 의지는 결연하다. 종로의 ‘터줏대감’인 이종찬씨는 본인이 출마하지 않는 대신 아들의 친구로 알려진 정은석 변호사를 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노무현 후보측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386세대 이정우 변호사를 고려중이다. 이들 중 공천에 탈락한 사람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공천에 관한 한 일사불란했던 ‘과거의 민주당’이 아니다. 한 종로보선 출마 예상자측의 설명. “공천 탈락자를 달래서 주저앉히려면 당 지도부가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당 지도부가 2004년 17대 총선 때도 공천권을 계속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당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지도부가 원하는 대로 ‘교통정리’하기 어려운 것이다.”

    박터지는 예선전 ‘공천 경쟁’
    장기표 푸른정치연합 대표는 출마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종로지역 한나라당 공천 대상자로 거론되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의 홈페이지엔 ‘재보선 앞두고 장대표 주가 상한가’ 등의 언론 보도가 올라와 있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장대표를 만나 출마 의사를 타진했느냐’는 질문에 “밝히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김의원은 “장대표 같은 분이 한나라당 의원이 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각 정당은 공천자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공천 신청자들은 이러한 단계에서 공천을 결정짓는 힘이 실제로 누구로부터 나오는지 예의주시한다. 예를 들어 특위 실무진 보고서는 공천자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특위 실무진은 대선기획단 실무진과 겹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 공천 희망자는 “당내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서 내가 1위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선거운동의 피곤이 싹 가셨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말. “수도권 한 지역의 공천 희망자는 내게 수억원의 정치자금을 댈 테니 공천해 달라고 말했다. 그의 심정이 절박해 보였으나 돌려보냈다.”

    당내 권력질서가 잡힌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은 좀더 혼란스럽다. 공천권을 쥔 노무현 후보와 김근태 의원은 ‘노후보 측근 공천배제 원칙’을 가장 먼저 천명했다. 광주 북갑 지역을 희망하던 노후보의 ‘입’ 유종필 특보는 실망했을 법하다. “힘이 정말 세다면 스스로 기득권을 내던질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내부 반발이 터졌다. 노후보의 이충렬 전 해외담당 특보는 출마한다는 입장이다.

    공천 탈락 땐 무소속 출마도 배제 못해

    공천을 기대하던 양휘부 박진 등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특보들은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 때문에 덩달아 불리해진 케이스다. 문성근 명계남씨 등 ‘노사모’ 관련 연예인 공천문제 역시 ‘측근배제’ 원칙이 나오면서 더 큰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곤혹스러운 일은 이러한 ‘멸사’(滅私)의 원칙 천명에도 불구하고 다른 비주류 인사들이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상현 고문은 이번이 국회의원 도전 세 번째다. 2000년 총선 때는 민주당에서 공천탈락의 쓴맛을 보았고, 급히 민국당으로 갔으나 역시 비례대표 의원직을 얻지 못했다. 다시 민국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새로 복귀한 그는 이번만큼은 꼭 공천받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지방선거 후 김고문은 노후보와 ‘우연히’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김고문은 “광주 북갑에 내가 한번 나가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후보는 “잘 알겠습니다”라며 확답을 미뤘다.

    노후보는 8·8 보선을 개혁-쇄신 이미지로 끌고 가기를 원한다. 김고문은 노후보 색깔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김고문은 당의 공천자 결정방식을 정면으로 치받고 있다. 김고문은 “민주당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은 광주와 군산만큼은 상향식 공천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륜 변호사를 의식하고 있는 한나라당 정병원 위원장도 상향식 공천 주장을 폈다. 지금 중앙당 결정에 ‘순진하게’ 승복하는 공천후보는 없다. 김고문은 “자꾸 개혁, 개혁 하는데 나야말로 YS, DJ와 사사건건 대립한 개혁의 원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남궁진 문화부 장관 공천문제로 노후보측과 동교동계는 정면대결 양상을 보인다. 노후보측은 ‘DJ 측근’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하는 반면, 동교동계는 경기 광명에서 기반을 오랫동안 다져온 남궁장관의 경쟁력을 평가절하한다고 반발한다. 이러는 사이 남궁장관 공천문제는 양측간 정치노선의 차이를 드러내는 ‘뜨거운 감자’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 금천의 민주당, 마산-합포의 한나라당 지역구에선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이 자기 사람을 심어 당선시킨 뒤 17대 총선에서 다시 의원직을 되찾아오려 한다’는 시나리오가 유포중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한나라당 공천 불가 방침에 이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라는 또 다른 벽을 만났다. 그의 출마선언은 자꾸 미뤄지고 있다. 기세가 꺾이면 대접도 달라진다. 무려 13명이 몰린 마산-합포 지역 한나라당 공천 희망자들은 현철씨는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다.

    경기 안성에서 임창열 전 경기지사의 민주당 공천설이 돌자 다른 출마 예상자 진영에선 “노무현 후보의 ‘경제특보’ 자리가 비었다고 하던데… 임지사는 큰물(대선)에서 기여하시지”라는 말이 나온다.

    경기 하남의 한나라당 한 출마 예상자 A씨는 “다 된 줄 알고 가만히 있으면 반드시 공천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공천장을 받아 쥐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 2년이 안 되는 ‘반쪽 금배지’를 차지하기 위한 피 말리는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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