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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햇볕정책 침몰하나

다음 월드컵 ‘오~ 통일 코리아’로…

北, 한국팀 선전 이례적 TV 편집 방영 … 입소문 충격 ‘바람 빼주기’ 시각이 우세

  •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다음 월드컵 ‘오~ 통일 코리아’로…

다음 월드컵 ‘오~ 통일 코리아’로…
지난 6월23일 북한이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 대 이탈리아 경기를 방영한 것이 화제다. 이날 저녁 10시 북한의 조선중앙TV는 연장전까지 무려 2시간 25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한국이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2대 1로 이긴 경기를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해 송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선중앙TV는 대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한국팀의 ‘오노 세레머니’를 별도로 보도했고, 승부차기까지 간 대 스페인전을 55분으로 편집해 방영하는 등 상당량의 월드컵 경기를 녹화 방영했다.

북한은 한국만큼이나 축구 열기가 강하다. 붉은 악마들이 대 이탈리아전에서 ‘AGAIN 1966’이란 카드섹션을 한 것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16강전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대 0으로 이긴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북한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북한은 1993년 10월28일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열린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전에서 한국에 0대 3으로 패해 탈락한 뒤로는 아예 예선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 예선전에서 한국은, 이라크가 후반전 루스 타임 때 동점골을 넣어 일본과 2대 2로 비기는 바람에 극적으로 미국 월드컵에 진출한 바 있다(도하의 기적).

축구로 먹고사는 프로팀도 있어

다음 월드컵 ‘오~ 통일 코리아’로…
북한에도 프로축구가 있다. ‘북한에 무슨 프로축구?’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지만, 북한은 1950년대 초반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운영해 왔다. 물론 북한의 프로팀은 유니폼을 상품광고로 치장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축구팀과는 다르다. 그러나 축구 하나로 먹고산다는 점에서 이들은 전형적인 프로다. 북한에는 각 시·도별로 최소 한 개 이상의 전문 프로팀이 있다. 이중 10여개 팀으로 1부리그를 구성하고, 30여개 팀으로 2부리그를 편성한다. 한국 프로리그에는 없는 2부리그가 북한 프로축구에는 있는 것이다. 북한 1부리그 선수들의 형편은 꽤 좋은 편이라고 한다.



북한도 정치적으로 축구 열기를 이용할 줄 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북한방송은 대 이탈리아전까지는 방송하지 않았다. 그러나 8강전에서 포르투갈과 맞붙자 북한 최고의 아나운서로 꼽혔던 이상벽씨를 런던으로 급파했다. 당시 남북한을 막론하고 TV는 물론 라디오를 가진 가정이 매우 드물었다. 당시 북한에 살았던 탈북자동지회 홍순경 회장은 “새벽 3시까지 직장 숙소에서 라디오를 통해 숨죽여가며 중계방송을 들었다. 그 때문에 북한이 포르투갈에 3대 5로 졌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렇게 축구 열기가 뜨거운 북한으로서는 한국의 월드컵 개최에 대해 상당한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열패감은 북한이 한·일 월드컵에 맞춰 특별히 아리랑축전을 개최한 데서 간접 확인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도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열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해 개최한 바 있다.

아리랑축전은 한·일 월드컵보다 한 달여 앞선 4월29일 시작돼 두 달 후인 6월29일 폐막되었다. 한·일 월드컵 3·4위전에서 한국은 터키에 2대 3으로 패해 4위에 그쳤지만 붉은 악마들은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며 월드컵 4강을 마음껏 즐겼다. 비슷한 시각 15만여명을 수용한다는 평양의 5·1경기장에서는 또 다른 ‘붉은 세력’들이 운집해, 힘찬 함성과 함께 집단체조를 벌이며 아리랑축전 폐막식을 가졌던 것이다.

대항 행사까지 준비한 ‘은둔의 왕국’이 한국전이 포함된 한·일 월드컵 경기를 녹화 중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전문가의 해설이다.

“탈북자 중 상당수는 상습적으로 조-중(朝中) 국경을 넘나든다. 또 북한에는 중국 국적을 가진 상당수 조선족이 들어가 보따리장수를 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한·일 월드컵 개최와 한국팀의 선전 소식은 북한으로 전파될 것이고 이러한 소문은 북한 정국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므로, 북한은 미리 ‘바람을 빼주기’ 위해서라도 월드컵 한국전 소식을 방영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1993년 도하의 기적이 일어나던 날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은 윤명찬씨였다. 윤씨는 한국에 0대 3으로 지고 귀국한 후 북한 대표팀 감독에서 해임되었다. 윤씨는 1999년 8월 한국으로 귀순했는데, “북한이 두 차례나 월드컵 예선전에 불참한 것은 실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월드컵 한국전을 방영한 데 대해 “북한 사람들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것을 다 아는데 숨겨서 뭐 하겠나. 2년 전에 6·15 정상회담도 있었으니 남북관계를 좋게 하자고, 한국전 경기를 방영했을 것이다. 어쨌든 북한이 한국전 경기를 방영한 것은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지금부터는 한·일 월드컵이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을 하는 이유는 88서울올림픽이 동유럽과 소련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6·25라는 매우 혹독한 전쟁을 치른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은 북한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에 방영되었다. 한국이 번영된 모습으로 올림픽을 개최하는 모습은 동유럽과 구 소련권 국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서울올림픽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에 따라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을 필두로 동유럽 국가의 공산정권이 차례로 무너져내렸다.

1989년 악명 높은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이끌던 루마니아에서는 민중혁명이 일어났다. 민중혁명에 당황한 차우셰스쿠는 황급히 도주하다 주민들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 무렵 북한의 노동신문은 루마니아의 민중혁명을 격렬히 비난했는데, 이는 김일성 정권이 차우셰스쿠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 잡고’(Hand in Hand)는 공산정권에 항거하는 민중세력을 결집시킨 운동가가 되었다. 1989년 동베를린 시민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국민투표를 통해 서독과의 통합을 결의함으로써, 1990년 10월3일 독일은 민주적으로 통일되었다.

1991년 4월1일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고, 1991년 12월 공산 종주국인 소련이 러시아 등 15개 국가로 쪼개지며 무너져내렸다. 이로써 세계 사회주의 경제권이 사라지자 북한은 교역 상대국을 잃어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중국마저 경화(硬貨) 결재를 요구하며 원유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경제난과 에너지난은 가속화되었다. 여기에 풍수해가 빈발해 식량난이 발생함으로써 북한에서는 300여만명이 아사(餓死)하고 수만명이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러한 위기는 체제 위기를 불렀고 체제를 지키기 위해 김일성 정권은 본격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미국과의 대립을 가속화해 북한은 더욱 고립되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자 안팎으로 위기에 봉착한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청년학생축전이 88서울올림픽에 케이오로 나가떨어지면서 시작된 북한의 위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대북문제 전문가들이 ‘한·일 월드컵이 북한에 어떤 충격을 줄 것인가’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입소문으로 한·일 월드컵과 한국팀의 선전 소식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이 월드컵을 방영했지만, 결국 이것이 김정일 정권을 때리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붉은 악마들은 월드컵 막바지에 “오∼ 필승 코리아!”를 “오∼피스(peace·평화) 코리아”로 바꿔 외쳤다. 한 회사는 비무장지대 철책선에서 북쪽으로 축구공을 차내며 “다음엔 꼭 함께 뛰자”고 말하는 병사를 소재로 광고를 만들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통일한국 축구팀은 출현할 수 있을까.

6월29일 남북 해군은 서해 NLL 부근에서 함정이 침몰하고 수병들이 사망하는 격렬한 해전을 벌였다. 그러나 대북문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하나가 돼 독일 월드컵에 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오∼ 피스 코리아”를 “오∼ 통일 코리아”로 바꿔 외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342호 (p16~17)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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